직업윤리를 지켜야 한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필자는 이미 단수공천이란 말이 국민을 기만하는 정치권의 어처구니없는 조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단수공천은 복수공천의 반대말이지 경선을 통하지 않은 공천이란 뜻이 될 수 없는데 비경선, 무경선이라 하자니 너무 속 보인다 생각한 나머지 턱도 없는 말을 쓴 것이다. 비경선, 무경선이라야 적나라하고 명확하다. 단수공천은 1988년 이전 중선거구제 시절에 한 당에서 한 지역구에 한 명만 후보를 내는 것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자기 당 세력이 센 지역에선 자당 후보를 둘 내서 둘 다 당선되기도 했다. 그걸 복수공천이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소선거구제기 때문에 모든 공천은 단수공천이다.
사실 전략공천이란 말도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데 최근엔 그것마저 우선공천이란 말을 쓰기 시작했다. 도대체 우선공천이란 말이 말이 되기나 하나. 우선공천의 우선은 무슨 뜻인가. 전략공천이란 어떤 지역에 자당 후보를 꼭 당선시키기 위해 그 지역구에 별 연고도 없지만 지명도 높은 인물을 그곳에 내리꽂는 것을 말하는 모양이다. 당연히 경선도 하지 않는다. 어떻든 전략공천이든 우선공천이든 내겐 매우 해괴하게 들린다.
정치권에선 국민을 현혹하기 위해 이렇게 괴상한 말을 만들어 쓰는데 기자들은 여기에 별로 저항하지 않고 그냥 받아쓴다. 그뿐이 아니다. 기사 문장의 문법도 엉망이다. 다음 기사를 보자.
"4년 전에도 두 사람은 경선을 붙었다."라고 했다. 빨리 읽어나가면 무슨 뜻인지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넘어가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경선을 붙었다."가 말인가 방군가. "두 사람은 경선에서 붙었다."라고 하든지 "두 사람은 경선했다." 혹은 "두 사람은 경선에서 겨루었다."라고 하면 얼마나 알기 쉽고 명쾌한가. 왜 "두 사람은 경선을 붙었다."라고 하나. 기자는 혹시 한국사람이 아닌가. 외국인이 기사를 쓰고 있나.
유권자를 존중하는 솔직한 정치인을 보고 싶고 말을 신중하게 쓰는 기자를 만나고 싶다. 하지만 정치인은 국민에게 구린 모습을 자꾸만 감추려 하고 기자는 문장을 아무렇게나 쓰는 데 거리낌이 없다. 어떤 직업이든지 직업윤리가 있다. 그 윤리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