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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Apr 16. 2024

단어를 자의적으로 써도 되나

자괴감? 대통령병?

한 저명한 언론인의 칼럼을 읽었다. 논지에 대체로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로 일부 대목에선 고개가 갸우뚱거려지기도 했다. 특히 단어 사용에 관해 그렇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고 이에 대한 분석을 하면서 쓴 글인데 '자괴감', '대통령병'이란 말이 의아한 느낌을 준다. 




자괴감(自愧感)은 국어사전에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라 뜻풀이되어 있다. 자(自)가 '스스로 자'이고 '괴(愧)'가 '부끄러워할 괴'이니 그런 뜻풀이는 당연하다. 그런데 칼럼니스트는 "그는 지난 2년간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너무 심취했던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도 든다"라고 했다. 대통령이 자리에 너무 심취했던 게 아닌가 하는 게 왜 칼럼니스트의 자괴감인가. 칼럼니스트 본인이 스스로 대통령이라고 느꼈단 말인가. 그럴 리는 없을 테고 그런 대통령을 지지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는 뜻일까.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대통령병이란 말 역시 의아함을 불러일으킨다. 대통령병은 보통 대통령이 되고 싶어 안달하는 마음을 가리켜 그렇게 말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위 칼럼에서는 그게 아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대통령은 왕처럼 뭐든지 할 수 있고 대통령은 뭐든 옳다고 믿는 것을 가리켜 그렇게 말했다. 대통령병을 그런 뜻으로 말하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 하긴 그런 현상도 대통령병이라 할 만도 하다 싶다. 달리 다른 말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빨리 대통령병에 걸렸다는 생각이다'에서 '너무 빨리'는 아무래도 이상하게 느껴진다. 좀 천천히 대통령병에 걸려야 정상이란 말인가. 대통령병에 걸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마치 천천히 대통령병에 걸리는 것은 있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있는 것 같아 뜨악하다. 이른바 '레임덕'은 대개 어떤 대통령에게나 다가오는 것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대통령은 힘이 떨어지는 게 보통일 텐데 '너무 빨리 대통령병에 걸렸다'니 의아하다.


내가 남의 글에 너무 예민한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도 글을 완벽하게 쓰지 못하면서 남의 흠만 눈에 띄니 스스로 못마땅하다. 그렇기는 해도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칼럼이 좀 더 완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버리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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