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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Dec 09. 2024

베르너 사세

귀 기울일 가치가 있는 조언

한 조간신문에서 독일인 한국학자 베르너 사세 교수의 긴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모처럼 매우 유익하고 인상 깊은 기사를 만나 기뻤다. 살짝 흥분되기까지 했다. 베르너 사세라는 이름은 이미 40년 전부터 들었다. 1941년생인 그는 20대 청년 때인 1960년대 중반에 나주에 와서 일하다 독일로 돌아갔고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한국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보훔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보훔대, 함부르크대에서 교수를 지냈다. 


그는 한국에 지금 '철학'이 없고 '교육'이 없다고 했다. 우선 철학부터 보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회에는 철학이 없다. 역사와 전통에 대한 관심도 없다. 오로지 경쟁만 부추기는 한국의 교육이 돈과 권력만 좇는 지식인, 정치인을 낳았다. 그들이 학벌 좋고 지식은 많은 엘리트인지는 몰라도 타인과 공동체를 생각하는 가슴(마음)은 없다. 나치도 전부 지식인들이었다." 어찌 정곡을 찌르는 지적이 아닌가.


교육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 ‘교육’은 없다. 시험 통과하는 방법만 가르칠 뿐이다. 학문의 기본 태도는 호기심과 의심인데, 한국 학생들은 교수의 주장을 의심하지 않는다. ‘월인천강지곡’이 뭔지는 알지만 세종이 쓴 이 아름다운 시를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다."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지적이다. 그는 한국인의 국수주의적 경향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나는 다음과 같은 그의 발언에 깊이 공감하였다. 



무작정 한국이 최고라고 우기는 성향을 지적하면서 한글이 세계 모든 언어의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한글은 한국어의 발음만 제대로 표기할 수 있다고 했다. 정확히 내 생각과 같다. 그러나 이른바 언어학자, 국어학자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사세 교수처럼 이렇게 명료하게 한글에 대해 말하는 이를 잘 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글은 온 세상 언어를 다 적을 수 있다고 하면서 문자 없는 민족에 한글을 보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지 않나.


한글이 우수한 문자인 것은 맞다. 한글의 기원에 대해 온갖 설이 다 돌아다니지만 발음 기관의 모습을 따서 글자를 만들었다고 해설서인 훈민정음에 밝혀져 있지 않나. 아음, 설음, 순음, 치음, 후음이라는 용어 자체가 발음 기관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이런 문자가 세상에 한글 말고 또 어디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한글이 과학적이고 독창적이며 그래서 우수한 건 틀림없다. 우리가 주장하지 않아도 외국에서 인정한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쳐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세계 모든 언어의 발음을 적을 수 있는 문자라고 하는 데서부터 자기도취와 과장, 뻥튀기가 시작된다. 심지어 문자 없는 민족에게 한글을 보급하자는 운동까지 생긴다. 동남아, 남미 등에서. 


사세 교수의 진단과 비판에 공감하고 깊이 반성하게 된다. 우선 나부터 <월인천강지곡>을 제대로 읽어 보았는지 되돌아본다. 세종대왕이 위대하다면서 그가 남긴 글을 과연 얼마나 읽고 새겨 보았나. 사세 교수는 이번에 이미륵상을 받았다. 이미륵이 누구인가. 1899년생인 그는 20대 초반 독일로 갔다. 그가 쓴 "Der Yalu fliesst(압록강은 흐른다)"를 나는 젊은 시절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의 글이 독일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한다. 독일어를 전혀 모른 채 독일로 간 그가 후일에 독일어로 쓴 산문이 독일 교과서에 실렸다니 놀라운 일이다. 왜 독일인들은 한 동양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교과서에까지 실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미륵이 쓴 독일어 문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 아니겠는가. 지금 한국은 몹시 흔들리고 있다. 어떻게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겠지만 사세 교수의 충고를 깊이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할 때 외부인의 조언에 귀 기울이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세 교수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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