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가
초등 동창들과 모처럼 나들이에 나섰다. 셋이 모였는데 약수역에서 만나 남산자락숲길로 올라섰고 능선을 따라 참 편안하게 걸었다. 금호산, 매봉산은 남산에서 갈라져 나온 산인데 워낙 산 밑까지 바짝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산 같은 느낌은 별로 나지 않는다. 동네 뒷동산 같은 느낌이랄까. 어떻든 봄을 맞아 친구들과 즐거운 산책을 했다. 매봉산 팔각정에 올라서니 여느 때 같으면 한강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을 텐데 날이 잔뜩 흐려서 거의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매봉산을 내려와 한남테니스장 옆으로 해서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 남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남산은 매봉산보다는 훨씬 높았다. 비교도 안 되게 크다. 계단을 한참 오르니 순환도로에 이르렀고 포장된 도로를 걸어 서울타워 코앞까지 왔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은 필동로를 택했다.
필동 골의 중심 도로인 필동로를 따라서 세 사람이 터덜터덜 걸어 내려오는 중이었다.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어떤 간판을 가리키며 저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가 가리킨 간판은 북엇국이었다. 내가 언어를 전공했고 국어 관련 기관에 오래 근무했음을 잘 아는 친구가 내게 북엇국에 대해 물었던 것이다. 북엇국을 가리키며 그는 왜 내게 뭔가 언급해 달라고 했을까. 그 간판이 아무렇지도 않다면 내게 물을 이유가 있었겠나. 뭔가 이상했기에 묻지 않았겠나. 과연 그는 북엇국이라 적힌 간판을 보고 이상하게 느껴져 내게 물었다고 말했다. 더구나 친구들끼리 하는 밴드에서 내가 사이시옷에 관한 글을 이미 몇 번 올린 적이 있었기에 친구는 내게 물었을 것이다.
늘 하던 이야기를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북어국이 아니고 북엇국인 것은 국어사전에 북엇국이라 돼 있기 때문인데 국어사전에 북어국이 아니고 북엇국이라 돼 있는 이유는 한글 맞춤법에 그렇게 돼 있기 때문이라고. 즉 한글 맞춤법 제30항은 합성어에서 뒷말이 된소리로 나면 앞말의 받침에 사이시옷을 넣는다고 규정해 놓았는데 북어와 국이 합해지면 발음이 북어국으로 나지 않고 북어꾹으로 난다. 국이 아니라 꾹으로 발음된다. 그러니 적을 때 사이시옷을 받쳐서 북엇국으로 적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합성어에서 뒷말이 된소리로 나면 앞말의 받침에 사이시옷을 넣는 것은 시냇가, 제삿밥 같은 말에서는 훌륭하게 잘 맞지만 북어+국, 만두+국, 순대+국 같은 합성어에서는 잘 맞지 않는다. 북어국, 만두국, 순대국이 편안하지 북엇국, 만둣국, 순댓국은 이상하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한글 맞춤법을 만들 때에 합성어에서 뒷말이 된소리로 나면 앞말의 받침에 사이시옷을 넣을 수 있다고 규정했더라면 단어에 따라서 사이시옷을 넣는 게 익숙한 합성어는 사이시옷을 넣고, 사이시옷을 안 넣는 게 자연스러운 합성어는 사이시옷을 넣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합성어에서 뒷말이 된소리로 나면 앞말의 받침에 사이시옷을 넣는다라고 해 놓았으니 뒷말이 된소리로 나면 앞말의 받침에 사이시옷을 무조건 넣어야 하게 되고 말았다. 그 결과 국어사전에 북엇국, 만둣국, 순댓국이 오른 것이다. 북어국, 만두국, 순대국은 맞춤법을 어긴 표기가 됐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수많은 전통시장에 순대국집 간판은 순대국이지 순댓국인 식당을 찾기란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기만큼 어렵다. 필동에서 북엇국이란 식당 간판을 보았지만 친구는 금세 어색함을 느껴 필자에게 저게 왜 저렇냐고 묻지 않았나.
사실 필자는 오늘 친구들과 매봉산과 남산을 산책하면서 매봉산에서도 확인한 게 있다. 매봉산의 남산자락숲길에는 구청에서 심은 것으로 보이는 나무에 그 나무가 식물 분류상 무슨 과에 속하는지를 보여주는 명찰이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명찰에는 은행나무과로 적혀 있었지 은행나뭇과로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국어사전에는 은행나무과는 틀린 표기고 은행나뭇과가 규범에 맞는 표기라 돼 있다. 은행나무과라고 적은 명찰을 나무에 매단 구청에서도 은행나무과가 틀린 표기인 줄을 몰랐을 것이고 산책로를 걸으며 그 명찰을 보는 시민들도 은행나무과가 틀린 표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어사전 편찬하는 사람 말고는 말이다. 이는 전국 어느 식물원에 가도 마찬가지다. 맞춤법, 국어사전이 국어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국어생활을 혼란에 몰아넣고 있다. 그런데도 맞춤법을 손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바람직하지 않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