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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밭

한글맞춤법을 생각한다

옷에 몸을 맞추려는 건 어리석다

by 김세중

어제 친구들과 매봉산과 남산에 올랐다. 하산 중에 필동 거리를 걷다가 한 친구가 어느 식당의 북엇국 간판을 보더니 필자에게 저게 맞냐고 물었다. 아마 뭔가 이상하게 느껴져서 필자에게 물었을 것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북어국에 익숙하지 북엇국은 낯설기만 하다. 그런데도 국어사전에는 북엇국이라 돼 있지 북어국이 아니다. 한글맞춤법에 따르면 북엇국이 맞기 때문에 국어사전에 북엇국이라 돼 있다. 그 식당은 국어사전을 착실히 따랐던 것이고...


오늘 다시 찾은 매봉산은 묘한 매력이 있다. 길이 참 얼기설기 많이 나 있다. 마치 실핏줄처럼 오솔길이 참 많다. 도중에는 쉼터도 많고 놀이터도 곳곳에 있다. 별로 이름난 산은 아니지만 중구 약수동, 성동구 옥수동, 용산구 한남동에 다 걸쳐 있는 매봉산은 산책을 즐기기에 그저 그만이다 싶다. 남산과 매봉산은 사이에 길 하나를 두고 있을 뿐이지만 참 분위기가 다르다.


어젠 매봉산을 가기 위해 약수역에서 출발했는데 오늘은 청구역에서 걷기 시작했다. 남산자락숲길은 잘 정비돼 있었다. 나무에 중구청에서 걸어둔 명찰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숲길을 걸으며 유심히 명찰을 관찰했다. 다음과 같았다.



매봉산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우측으로는 한남동이다. 그리고 한남동은 용산구다. 용산구에서도 나무에 명찰을 걸어놓았다.




중구든 용산구든 나무에 걸어놓은 명찰에서 나무의 과 이름은 모두 00나였지 00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국어사전은 어떨까. 거꾸로 00나는 하나도 없고 죄다 00나다. ''가 ''로 발음되기 때문에 모조리 사이시옷을 넣은 것이다. 다음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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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한글맞춤법은 1988년에 고시되었다. 당시 한글맞춤법을 만들었던 국어학자들은 그들이 만든 한글맞춤법의 제30항(사이시옷)이 소나뭇과, 은행나뭇과, 물푸레나뭇과, 층층나뭇과, 참나뭇과 같은 어형을 낳을 거라고는 아마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글맞춤법 제30항은 소나뭇과, 은행나뭇과, 물푸레나뭇과, 층층나뭇과, 참나뭇과 같은 말을 낳고야 말았고 국어사전은 꼼짝없이 그렇게 사전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 맞춤법이 고시된 지 30년이 훨씬 넘었건만 식물학자들은 물론이고 공무원, 일반 국민도 소나뭇과, 은행나뭇과, 물푸레나뭇과, 층층나뭇과, 참나뭇과로 적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다. 공원, 등산로, 식물원의 나무에 걸려 있는 명찰이 그걸 생생히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한글맞춤법을 만들 때에 합성어에서 뒷말이 된소리로 나면 앞말의 받침에 사이시옷을 넣을 수 있다고 했어야 했다. 그러지 않고 합성어에서 뒷말이 된소리로 나면 앞말의 받침에 사이시옷을 넣는다고 하는 바람에 소나뭇과, 은행나뭇과, 물푸레나뭇과, 층층나뭇과, 참나뭇과와 같은 어형이 국어사전에 올랐고 지금도 현장에서는 쓰이지 않고 있다. 무시당하고 있다. 아마 북엇국 사례처럼 앞으로 어느 지방자치단체에서 나무에 명찰을 내걸면서 소나뭇과, 은행나뭇과, 물푸레나뭇과, 층층나뭇과, 참나뭇과라고 써붙이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 예상하지만 혹여 생긴다면 그땐 언어 혼란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한글맞춤법을 손봐서 소나뭇과, 은행나뭇과, 물푸레나뭇과, 층층나뭇과, 참나뭇과라고 쓰지 않아도 되게 해야 한다. 소나뭇과, 은행나뭇과, 물푸레나뭇과, 층층나뭇과, 참나뭇과소나무과, 은행나무과, 물푸레나무과, 층층나무과, 참나무과로 바꾸어야 한다. 몸에 맞게 옷을 입어야지 옷에 몸을 맞추려 해서야 되겠는가.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나. 국어사전을 고쳐야지 명찰을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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