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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ya Nov 25. 2015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이 24시간도 채 안남았어

#시간여행

첫날 입국심사로 인해 도착시간보다 2시간이나 훨씬 더 넘어버렸다.


아시아와 다른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

입국심사로 자존감은 땅으로 떨어졌고,

무서움과 불안만이 계속해서 커졌다.

6시 이후엔 돌아다니면 안된다고 들어왔기에..


공항버스를 내려 지하철을 타기위해 역에 있는데 거지로 보이는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떨구고 바닥만 쳐다봤다.

무서워서 가라고 하지고 못하고.

시간이 꽤 흐른 뒤 지하철이 도착했고, 배낭을 멘 우리에게 이상한 전단지를 주며 말을 걸어대는 사람, 처음 만난 한국인 아저씨는 술에 잔뜩 취해 우릴 향해 다가오며 내일 오전 7시에 이 역에 내리면 밥 공짜로 주겠다며 소리쳤다. 덕분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수 있었다.

한 외국인은 이상한 신음소리를 꾸준히 반복해서 냈고, 말 거는 모든 이들이 싫었다.

미국이 싫었다. 영어 쥐뿔도 못하는 나도 싫었다.


와이파이 되는 곳을 찾으며

11시가 다되었을 쯤 숙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만난 집주인 로버트는

아마 한국 쌀이랑 비슷할꺼야라며 마트에서

직접 골랐다고 우리에게 밥을 해줬고,

영어 못 알아듣는 우리를 위해 천천히 말해주었다. 대답을 하는건 여전히 어려웠지만

그의 말을 들을 수는 있었다.


숙소에 돌아오면 외국인들이 한국음식을 먹는 유투브를 매일 틀어줬고, 마트구경도 시켜주고, 콜롬비아로 가는 비행기티켓과 라스베가스로 가는 버스표 예매까지 도와줬다. 무섭기만 했던 로스엔젤레스가 궁금해졌다. 다음날에도 다운타운을 구경시켜줬고, 한식이 그립다는 우리와 함께 코리아타운을 갔다. 마지막날 배낭을 메고 다시 볼 것처럼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왔다.


더운 거리를 한참 걷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불러 돌아보니 로버트였다. 손에는 주은이가 숙소에 놓고온 녹차를 우려낸 물이 담긴 통이 있었다. 이거 두고갔다면서 한걸음에 달려온 로버트. 콜롬비아로 떠나기 전까지 메세지로 걱정하며, 이티켓 꼭 뽑아가라고 했다.  로스앤젤레스가 자꾸만 생각날 것 같았다.


7시간을 달려 도착한 라스베가스.

로스앤젤레스의 더위를 뛰어넘는 이곳에서 첫날부터 길을 잃었고, 버스를 3번이나 잘못탔고 택시는 보이지도 않는다.

더위에 얼굴이 터질듯 했지만 계속 걸었다.

2시간이 지나고 발견한 마트에서 만난 사장님이 콜택시를 불러주셨고, 더우니까 안에 들어와서 쉬라며 대학생이냐고 밝게 웃어주셨다. 콜택시가 오자 기사아저씨에게 목적지를 설명해주며 잘가라고 손을 흔들어주셨다. 할 줄 아는 영어인 땡큐를 연발하며 함께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내린 집은 숙소가 아니란다. 분명히 주인이 이 주소로 알려줬는데, 옆 집 분의 도움을 받아 핸드폰을 빌려, 원래 주인의 친구가 우리를 픽업해주러왔다.

운전을 하며 얘기하는데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고 버벅거리자 '와우 영어도 못하는데 아메리카? 하하하 '하며 웃었다.

못하는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지금은 너무 힘드니까 바보처럼 웃어넘겼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술을 권했다. 한끼도 못먹어서 배고파하는 우리에게 계속 술을 권했고, 너무 배고프다고 말하며 빠져나와 음식점을 찾아 길을 나서는데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벌써 저녁이라니.


맨 처음에 라스베가스에 도착했을때 봤던 반짝이던 호텔들은 더이상 보이지 않고

황량하기까지 했다. 딱 하나 있는 호텔에 푸트코트에서 버거를 시켜서 먹는데, 기운이 하나도 없다. 다음날엔 집 문을 2시간동안이나 못열고 씨름했다. 주인에게 메세지를 보내도 답장이 오지 않는다. 낑낑거리며 계속 열어 결국  숙소에서 빠져나와 유일하게 아는 그 곳에서 버거를 또 먹고, 숙소로 돌아가,

내일 갈 그랜드캐년을 생각하며 뒤척였다. 결국 한숨도 못잤지만. 또 금새 좋다고 웃으며 하루에 한끼만 먹어도 잘 곳이 있고, 옆에 너가 있으니 배가 아파도 행복했다. 새벽6시에 투어버스를 타고 그랜드캐년으로 향했다. 달력 표지를 찢고 나온듯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는 버스안에서 면적을 가늠할 수 없는 평야와

하늘을 바라보는데 더불어 흘러나오는 노래까지 있으니 행복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중간지점에서 갑자기 와이파이가 터졌는데, 집주인이 우리보고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메세지가 와있었다. 다시 또 현실로 돌아왔다.

라스베가스의 반짝임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호텔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웃지 않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이다.

당장 내일 아침에 짐싸서 어디로 가야하지.

돈이 없는데.. 호텔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 숙소로 향했고, 도착하자마자 호스텔과 에어비앤비를 계속 검색했다. 제일 값 싼 호스텔에서 묵을 생각이었다. 그래도 비싸서 이것저것 알아보던중.


jo와 연락이 닿았다.

뻔뻔하게 내일 아침 10시에 가도 되겠냐고

묻는 나에게 체크인 체크아웃 시간

모두 상관없으니 오라고했다.

핸드폰을 정지시켜 카드로 결제를 하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키를 밖에 통에 넣어둘테니 이른 아침이어도 좋으니 오라고했다. 반신반의하며 찾아간 곳에서 만난 그는 너무 좋은사람이었다. 미국에서 이렇게 크게 웃어본적이 있었나 싶을정도로

함께 있으면 항상 셋이 크게 웃곤 했다.

쌩얼에 츄리닝인 우리에게 프린세스라니.

한국이었다면 손가락발가락이 꼬불거렸겠지만, 아무렴어때.

전에 있던 집주인이 오히려 고맙다.

jo를 만날 수 있게 해줘서.

그는 우리가 함께할 시간이 24시간도 안남았다고, 드라이브를 시켜주겠다며 어제 버스를 타고 지나왔던 호텔거리로 데려다주었다.


 '이곳이 베가스야.'


반짝거리던 호텔과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거닐고 있었고, 8시에 시작될 분수쇼를 보기 위해 몰려있었다. 분명 어제까지 나는 이곳이 싫었는데.. 반짝거림과 대조되는 상황도, 무서웠던 밤거리도, 집으로 돌아갈 택시비도.

그와 함께 있으면 신경써야될 수많은것들이 사라져버렸다. 베가스는 멋진곳이라며 소개해주는 그가 너무 고마웠다. 만나지 못했더라면 내 기억에 라스베가스는 황량하기만 했을텐데. 머릿속이 텅비어지니 라스베가스가 보였다. 이렇게 예쁜곳이었구나.

가족들이랑 다시 오고싶다. 꼭 함께와야겠다. 29살엔 친구들이랑 마지막을 보내러 또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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