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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안 Mar 27. 2020

덕업 일치의 영원한 딜레마

덕업 일치는 독일까 복일까

*얼렁뚱땅 인턴 생존기로 다시 매일매일 글을 써보기로 합니다. 현직자의 인사이트가 묻어나는 글을 쓰면 참 좋겠지만 일단은 그저 매일 쓰는 데 집중합니다.



어릴 적 내 꿈은 덕업 일치였다.

항상 꿈꾸던 장면이 있다. 내 '최애' 혹은 '본진'을 비즈니스 관계로 만나는 것. 건조하게 미팅을 끝내고 나서 나중에 악수를 할 때쯤, 쿵쾅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 지으며 "팬입니다."라고 가볍게 말하기. 나와 악수를 하는 상대는 아이돌일 때도 있었고, 베이시스트일 때도 있었고, 만화가, 작가가 되기도 했다. 어쨌든 핵심은 나의 최애와 일로 엮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그런 소망이야 아무렴 어떤가 싶다만, 덕질을 오래 해온 사람으로서 콘텐츠와 관련된 업을 하고 싶다는 소망만큼은 끝까지 남아있었다. 공연장에서 알바도 해보고, 콘텐츠 만드는 대외활동도 해보고, 전공도 문화산업을 골라서 공부했다. 콘텐츠라는 말만 들어가면 너무 즐겁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콘텐츠 관련된 일을 어쩌다 하고 있다. 넓은 의미의 덕업 일치인 셈이다. 그럼 나는 일하는 게 너무 즐거울까?


학교 다닐 때 늘 하던 말이 있었다. "모든 공부는 교양까지가 재미있어. 전공 이름 붙으면 하기 싫어."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한 것 같다. "모든 일은 취미까지가 재미있어. 직업 되면 하기 싫어."


지금 내가 제일 많이 해야 하는 업무는 유튜브 보기다. 회사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유튜브를 보고 있다 보면 그 모양새가 스스로 웃기다. 이 일의 장점 중 하나는 내가 업무시간에 유튜브를 봐도 이게 노는 건지 업무인지 알 수 없다는 점 아닐까 생각했다.(하지만 나는 정말로 업무 목적으로 유튜브를 보고 있다 그것만 해도 할 일이 너무 많다)

패션 유튜버 찾기가 미션이 되면 갑자기 그때부터는 전에 쳐다보지도 않았던 브이로그 영상이 너무 재미있다. 영상을 멍 때리고 보다 보면  괜히 책이 더 읽고 싶어 지고, 웹툰 다음 편 전개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아, 나 이거 예전에 경험해봤어. 평소에는 청소 하나도 안 하고 살다가 공부하려고 맘먹으면 대청소하는 거. 엄청 재미있어 보였던 주제도 시험기간 되면 엄청 지루하게 느껴지는 거.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무슨 일을 하든 '일'이라면 이전보다 재미없어하겠지. 지금은 영상을 보면서 소설 잔뜩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막상 억지로 소설을 계속 읽다 보면 소설 그만 보고 드라마 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기겠지.


그럼 덕업 일치는 내 취미를 잃는 거니까 피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오히려 그나마 콘텐츠에 내가 관심이 있는 사람이니 흥미가 덜 줄어들고 대충 더 버티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영원한 딜레마가 되겠지. 나의 취미를 취미로 남겨둔 채 예쁜 모습만 보며 온전히 사랑할 것인가, 직업으로 승화시켜 진절머리 나는 동거를 시작할 것인가. 인턴이 끝날 때 나는 무슨 답을 내리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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