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내가 사랑하는 영화
나는 이 영화를 네 번 이상 보았다. 처음 볼 때와 2회 차 이상의 감상은 크게 달랐다. 왜 개봉 당시 사랑하는 사람과 이 영화를 보라고 했을까? 오히려 <라라 랜드>는 이별에 관한 이야기다.
꿈과 낭만이 가득한 도시 LA에서 우연히, 그리고 악연처럼 만난 세바스찬과 미아. 그들은 달빛 아래에서 '아름다운 밤이 아깝다'며 서로를 힐난하면서도 사랑하게 된다.
빛나는 배우를 꿈꾸던 미아, 그리고 자신만의 재즈 클럽 오픈을 꿈꾸던 세바스찬. 셉은 어떤 기회로 함께 하게 된 밴드가 대성공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그런 셉을 보며 미아는 애인이 점점 변해간다고 느끼는데...
2회 차 관람 때부터는 세바스찬이 밴드 '메신저스'에 함께 한 이후를 집중해서 보았다. 그리고, 그의 꿈이 다른 게 아니라 '미아와 함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더 강렬하게 체감했다.
물론 재즈클럽 오픈도 그의 꿈은 맞지만, 미아를 만난 이후 이루고 싶은 꿈의 우선순위가 바뀐 편에 가까울 테다. 메신저스에 들어간 이유도 미아를 위해서.
하지만 미아는 한 번도 셉에게 고정적인 수입을 갖다 달라 말한 적이 없다. 미아가 엄마와 통화를 할 때 수입 이야기를 굳이 한 이유는 ‘셉은 그럴 수 있다’라는 강한 신뢰의 표현이었다. 오히려 미아가 사랑한 사람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꿈을 지켜나가는 셉이었을 테다. 오랜만에 집에서 만난 월드스타 셉에게 미아는 질문한다. "너는 그 노래가 좋아?" 세바스찬은 여기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한다. 만약 그가 행복하다고 했다면 미아도 수긍하고 넘어갔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 커플은 애초부터 Happily ever after가 불가능했다. 안타깝지만 미아의 꿈에 세바스찬은 없었다.
마지막 오디션 이후 미아는 "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할 거야."라고 말한다. 이는, 사실 너와 함께 했던 그 시간의 기억 속 네 모습을 사랑한다는 의미였을 테다.
"흘러가는 대로 살자"라는 셉의 말은 이미 끝나버린 연인 관계에 조용히 안녕을 고하는 답장이다. 각자의 흐름대로 흘러가다 잠시 물길이 겹쳤을 뿐 그 뒤의 길은 떨어져 있음을 세바스찬도 알았던 셈.
이들의 사랑이 결실을 맺지 못했다 한들, 서로의 인생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끝나지는 않았다. 미아는 셉이 말했던 대로 죽도록 열심히 살았고, 셉은 미아가 준 "Seb's"라는 이름을 재즈클럽에 달았다. 자신의 1순위 꿈인 'With Mia'가 사라진 뒤 다시 떠오른 꿈, 재즈클럽 오픈과 함께.
그래서 세바스찬의 마지막 if 씬은 보는 사람을 더 울컥하게 만든다. 미아를 놓치지 않기 위해선 그 첫 만남 때 쌀쌀맞게 굴지 않았어야 했고, 메신저스를 들어가지 말아야 했고, 연극에 갔어야 했고, 파리에 같이 갔어야 했고, 그러면 결혼했을 텐데, 미아 옆에 이름 모를 부자(같아 보이는 사람) 말고 내가 있을 텐데...
끊임없는 if의 반복 속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다만 눈인사나 가볍게 하고, 연주는 계속된다.
One, two, one two three f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