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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Nov 05. 2020

5살, 유튜브로 동물원에 처음 가 보는 아이들

내 허벅지까지 오는 낮은 책상에 옹기종기 둘러앉은 다섯 살 아이들의 수업을 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제주도 다녀온 얘길 했다. 비행기 탔던 경험을 말하니 다른 아이가 부럽다는 듯 '난 내년에 탄댔는데..' 한다.

'선생님은 스무 살에 처음 비행기를 타 봤어' 한 게 위로가 됐을는지 모르겠다.


들판의 풀을 붓이 아닌 스펀지로 표현해 보고 들판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그려보자고 하니 알아서 손가락으로도 풀을 그리고 꽃과 집, 토토로까지 결국 자신이 그리고 싶은 걸 그리고 있었다. 이 아이들은 아직 토끼의 발 개수를 고민한다. 두 개를 자신 있게 그려낸다. 네 개라고는 생각 못한다. 말해줘도 믿지 않는 눈치다. 그러다 한 아이가 교실 벽에 붙은 동물 사진을 보고 코끼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코끼리를 본 건 언제였을까. 티비를 통해서였을 거고 그다음은 당연히 동물원에 가서였을거다. 다섯 살 아이가


 '저 동물원 가 봤어요! '유튜브에서요'

그럴 수도 있는 거구나. 이 아이는 동물원 영상을 시청한 게 아니라 분명 유튜브를 통해, 유튜브 안에 있는 동물원에 갔다고 말했다. 곧이어 3D 고글을 끼고 동물을 만지는 느낌마저 난다면 아프리카 사파리까지 이동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세상이 열릴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더 가까이에서, 털 한가닥까지 볼 수 있고 유순하기까지 할 테니 더 낫을는지도.


문득 내 나이쯤 북한에서 남한까지 자신의 두 발로 산을 넘고 강을 건너온 외할아버지 일화가 생각났다. 나는 그보다는 훨씬 더 멀리, 비행기를, 기차를, 배를 타고 대륙을 이동했다. 시대에 뒤쳐지는 사람이 돼가는 건지 코로나 시대의 랜선 여행이 그렇게 와 닿지 않는다. 물론 예전 여행 영상이나 사진을 보며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추억에 잠기기도 하지만 그뿐이지 정말 여행을 하는 기분은 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요즘 아이들은 매체를 통해 나보다 훨씬 멀리 가고 그것이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나보다 많이 아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아이가 뭔가를 물어봤을 때 내가 글쎄..라고만 운을 떼도 아이는 바로 '인터넷 검색해 보세요' 한다. 과연 요즘 아이들은 지식 양이 늘었을까. 정보의 양이 늘은 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 정보가 내 몸에 기입돼 언제든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이 되는 건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그래서 동물원이 어땠냐 물으니 아이는 별다른 대답이 없다. 나도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 가는 걸 좋아했지만 그 동물들도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발걸음을 하지 않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동물원을 유튜브로 가보면 그저 '여러 동물들이 함께 사는 곳'으로만 인식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직접 가 보면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우리에 맹수들이 갇혀 있거나 열악한 경우 벽에 머리를 찧는 이상행동을 보기라도 한다면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경험하고 생각해 볼 수 있게 될 거다.


최근 회사 다니면서 소설도 내고 상도 받은 정영수 소설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스스로를 좋은 환경에 노출시키는 중요성에 대해 말한 부분에 무척 공감했다. 그러니까 유튜버가 소개하고 리뷰까지 하는 10분짜리 책이나 영화를 보고 그것에 대해 백 번 남들에게 알은체 하는 것과 모든 사람이 극찬한 작품을 내가 직접 보고 감탄 혹은 실망하는 경험은 분명 다르다. 몸에 남는 쪽이고 거기에 취향이 더해진다.

종일 핸드폰을 놓지 못하는 와중에 친구들의 혹은 지구 반대편에서 감탄할만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며 좋은 에너지와 영감을 얻는다. 손 뻗으면 닿을 곳곳에 책을 놔두기도 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한 번 손을 뻗는다는 게 현실이긴 하지만.. 정말 감탄할만한 것을 직접 접하고 그 전율에 휩싸이는 경험이 점점 더 귀해지고 있는 시대이다. 또 아이들이 세상과 경험을 인식함에 있어서도 전혀 새로운 방법론이 등장하고 있다. 무조건 예전 것, 새로운 것이 좋다기보다 어떻게 적절히 아이들 세계의 지평을 넓혀줄지는 고민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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