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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치 Apr 20. 2024

지리산에서 첫번째 글을 쓰다

글쓰기수업 첫번째 과제 내가 멋지다고 느꼈던 장면을 글로 그리기(자부심)

지난주 양양에서

  지난 주말 양양에 다녀왔다. 작년에 차를 산 이후로 멀리 운전해서 여행 가본 적이 없어서 당일치기로라도 다녀올 생각이었다. 새벽부터 양양까지 멀리 달려왔고, 시내는 조용했는데 유명한 맛집에 아침을 먹으러 갔더니 온 양양 사람이 이곳에 다 모여 있었다. 지나간 유행가를 클래식 멜로디로 둔갑한 버전의 음악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1 시간쯤 기다려야 하는데 서울에서처럼 조급해지지 않았다. 볕이 충분히 비치고 있었으니까. 차 뒷좌석에 앉아 문을 활짝 열고 가져온 책을 읽었다. 하얀 종이가 햇볕에 반사되어 눈이 따가울 정도로 시렸지만 그래서 활자가 더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멀리 떠나온 여행에서도 일상과 똑같은 행동을 하면 마음이 더욱 안온해진다는 건 재밌는 일이다.


  여행에서는 답도 없는 질문을 동행인에게 하는 걸 좋아한다. 기나긴 운전을 해야 할 때나, 손을 잡고 숲을

걸으면서 남편에게 지치지도 않고 계속 물었다. 어린 시절 좋았던 기억이 뭐야? 제일 먼저 생각나는 기억이 뭐야? 했더니 남편은 아버지가 자전거를 가르쳐줬던 게 클리쉐같지만 영화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고 했다. 나는 뭘까 생각하다가 좋은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아빠랑 단둘이 영화관에 갔던 게 떠올랐다. 보통은 세 가족이 영화관에 다녀버릇해서, 아빠랑 둘이 간 일이 별로 없어서 그랬는지 유독 생생한 기억. 영화 제목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이었고 어두운 내용이었다. 그래서 혼자 그 영화가 <아나스타샤>일지 <이집트 왕자>인지 늘 궁금해했다. 주인공이 주인공이기에 겪어야 했던 고난이 무서웠다. 이집트 왕자였다면 예언자를 찾기 위해 수많은 아들이 죽어야 했던 일이었을 것이고, 아나스타샤였으면 온 가족이 몰살되는 걸 홀로 지켜보고 살아남아야 했던 일이었겠지. 그런 기억을 되짚어 보면서 천고가 높고 멋진 카페로 자리를 옮겨 책을 마저 읽었다.


  읽고 있던 책에서 주인공이 아빠와 대화하다가 “아빠는 언제 외로워?”하고 묻는 문장을 읽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말 이 시간쯤이면 엄마랑 아빠는 영화를 보고 있을 것이다. 죽네 사네 어쩌네 해도 둘은

좋은 여가 생활 파트너이기도 하니까. 엄마랑은 새해 벽두에 크게 말다툼을 한 이후로 얼마간 연락하지 않았고, 아빠랑만 가끔 연락하고 있다. 아빠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창밖에 선선히 시선을 던지니 소나무밭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영화를 보고 있던 아빠는 영화관에서 빠져나오면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에게 외로운

때가 언제냐고 물으려다 그만두고, 아빠는 할머니가 미운 적이 없었어? 라고 물었다. 그럴 때가 왜 없었겠니, 그래도 그걸 다 뛰어넘게 되더라. 그럼 아빠는 나랑 엄마가 이해가 안 가겠네?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아들-엄마랑 딸-엄마 관계는 다르대. 하니까 아빠가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이 그렇다대? 하고 짐짓 아는 척하지만 난 아빠가 영영 이해하지 못할 것을 안다.


  아빠 그래서 우리가 그때 본 영화가 뭐야? 했더니 아빠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함께 고달파 했던

주인공이 왕자님인지, 공주님인지 영영 알 길이 없어졌다. 그 때 영화 분위기가 무서워서 그만 보고 나오자고 했던 것 같은데 도중에 나왔어? 했더니 나왔지, 그런데 너 영화가 무서워서 나온 게 아니야. 여섯 살 때 아직 한글을 다 모르는데 자막 판을 봐서 재미없다고 그런 거였어. 나는 또 내가 어릴 때부터 대단히 감수성과 몰입감이 풍부했다고 과한 기대를 했지 뭐야. 웃기는 일이다. 기억은 이렇게 자의적이다. 엄마가 요즘 내 얘기 좀 해? 했더니 사실 별로 안 하는데 자꾸만 내 이마에 난 흉터가 내내 미안하다 이야기한다고 전해준다. 어린 시절 났던 흉터인데, 엄마는 당신이 잠시 눈을 뗀 사이에 다친 거라며, 여자아이 얼굴에- 라고 시작하는 말로 늘 걱정을 보태며 이 흉터를 영영 미안해한다. 사실 나는 별 신경도 쓰지 않고, 종종 궁금해하는 지인들이 물어보면 해리포터 같지 않으냐고 웃어 보이고 마는 그 흉터를. 평생의 간극을 보여주는 일화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었다. 그러다 문득, 인생은 다 이렇게 오해 속에서만 해석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이 흉터에 대해 사과받고 싶지 않은데 엄마는 늘 흉터에 대해서만 자주 미안해할 것이고, 진짜 아픈 구석은 들여다보지 않을 거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겠지.


  이런 생각이 머리에 쏜살같이 스치고 나는 조금은 불완전하게 아빠에게 대답했다. 아빠, 이게 그건가봐

하니까 아빠가 바로 알아듣고 그래, 그런가봐하고 답했다. 주어는 없었지만 둘 다 생이 쥐여주는 필연적인

평행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빠도 나도 서로를 어쩌면 영영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가끔

이렇게 우리는 교차점에서 만난다. 대부분의 관계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눈물이 났는데 울지는 않았다.


이번주 지리산에서

  며칠간 산속에 풍덩 담겨 있었다. 양양 여행 이후로 차를 직접 굴려 멀리 이동하는 기분이 좋았던 건지

꽤나 즉흥적으로 남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산청에서 하동, 구례를 거쳐 완주까지 가는 일정. 한옥 위주로

숙소를 골랐고 평상에 누워 써야 할 글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순간을 생각하면 순식간에 마음이 곤궁해졌다. 어쩐지 거창하고 대단해야만 할 것 같았다. 오랜 시간을 들여 꾸준히 해온 심리 상담, 새롭게 시작한 주짓수 등 여러 가지 소재로 초안을 쓰면서 전속 편집자인 남편에게 이 글 저 글을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이렇게까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어? 남편이 말했다. 단순한 것에서 시작해도 되잖아. 후진 주차를 한 번에 성공하는 모습, 일상을 꾸준히 블로그에 담아내는 것, 가끔 새벽에 한강 다리를 건너 하루를 시작하는 그런 거 말이야. 남편은 글 한 단락을 쓸 때 일주일이나 걸리는 사람이지만 거리의 철학자처럼 말하기도 한다. 거참 웃기는 놈이네.


  산은 너르고 푸르렀다. 어느 순간부터 여행지에서 잠이 오질 않았다. 산청에 지리산 인근 작은 마을에 있는

숙소에서 새벽에 혼자 해가 뜨는 걸 바라보았다. 차를 끓여 마시려고 물을 끓였는데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을 물 끓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섬진강 때문인지, 일교차 때문인지 지리산 근처 동네에는 아침에 먹먹하게 안개가 피어오른다. 이른 시간 산에서 건너오는 아침 공기가 차가웠고 차는 따뜻해서 속에서 열이 피어올랐다. 머릿속에 있는 안개가 한 모금 차로 걷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이렇게 산에 폭닥 싸여 있는 동네에 살고 싶었다.


  아빠와의 전화 이후로 자꾸만 두 개의 문장이 반복해서 떠오른다. 데이비드 화이트의 말(정확히 말하자면

팟캐스트에서의 소개 글)과,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줄리언 반스의 문장. 데이비드 화이트는 그가 출연했던 팟캐스트에서 '인간 경험의 대부분은 상실과 축하 사이의 대화'를 상기시켜주는 시인이라고 소개되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줄리언 반스는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라고 썼다. 두 문장에는 서술의 형태에서만 공통점이 있지만, 나는 대개 무엇인가 중요하고 무거운 것이 예컨대 A 와 B 사이에 있다, 라는 명제와 같은 문장을 좋아한다. 사실 그렇게 납작해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단호하게 그 사이에는 두는 것이니까. 상실과 축하 사이 혹은 부정확한 기억과 불충분한 문서 사이 당신은 어디에 맞추어 인생을 바라보고 있나요? 나는?


  우리는 그냥 서로를 영영 오해하며 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영영 알 수 없듯이 누군가도 나를 영영 알

수 없는 것처럼. 왕자와 공주인 것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채로. 그게 희비극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냥 그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멀리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일종의 깨달음인지, 그저 흘러가는 생각일지 고민하며문장으로 붙잡으려고 애쓰다가 여행이 끝났다. 내 안의 작은 소요도 큰 산이 너르게 감싸 안아주었다. 무의미해 보이지만 자욱이 오래 남는 대화를 가족과 나눌 수 있는 여유, 흘러가는 생각을 붙잡아 글로 단단히 고정해두고 싶은 마음, 지금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그대로 마음에 넣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나조차 무슨 말인지 모를 말들을 길게 써 내려가는 순간, 이런 게 내가 나를 조금은 좋아하는 순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할수록 단순하게 접근하라는 남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마지막까지도 산세가 아름다웠다.


  답답한 마음에 친구에게도 자신이 멋지게 느껴지는 순간에 대해 물었다. “난 지리산에 도착했어. 벌써

마감이야.” “지리산에서 마감하고 있는 네 모습이 제일 멋있는데?” 우문현답이 일상이었던 두 번의 짧은

휴가가 끝났다.







지리산에서 글을 쓰면서 머리를 쥐 뜯으며 괴로워한 순간도 있었지만, 대체로 즐거웠다. 여러 버전의 글을 쓰면서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은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어떤 글에 조금 더 가점을 주는지도. 조금은 가볍고 일상적으로 쓸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게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잘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되도록 다시 한번 나를 가다듬었다.  


글쓰기 수업을 듣는 건 누군가를 상정하고 쉐도우복싱을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더 잘 쓸 필요도, 내 가장 빼어난 글을 쓰는 것도 목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그에 대한 코멘트를 받아보는 것. 그리고 조금 더 나와 읽는 사람들의 거리를 가깝게 하기 위해 조금씩 나아가보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니까 짧게 말하자면 난 할만큼 했다! 이제 수업에 가서 선생님의 평가를 들어봐야지!

글을 쓰면서 나를 감싸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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