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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치 Apr 13. 2024

에세이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한겨레 교육 "일상 속 글쓰기의 시작, 에세이 쓰기 (주말반)"

생각보다 조급하게 강의실에 도착했다. 원래 어딜 가든, 특히 기대되는 일정일수록 미리 가서 기다리는 편인데 하필이면 오늘따라 하지 않는 실수의 연발이었다.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더니 (평소에 버스로 출근한다) 방향을 거꾸로 가다가 한참 있다 깨달아서 다시 돌아와야 했다. 그러던 와중에 허둥지둥한 채로 맥북이 든 가방을 바닥에 떨어뜨리질 않나, 갑자기 날이 더워져서 입고 온 옷이 두껍게 느껴지질 않나. 마음이 초조해졌다.


오늘은 꽤 오래 기다려왔던 에세이 수업의 개강 날이었다. 한겨레 교육에서 양질의 예술 관련 각종 수업을 한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고민만 하다가 불현듯 수강신청을 했다. 꽤 오래전에 신청을 해두어서 개강을 두근거리며 기다렸는데 하루의 시작부터 꼬이니까 마음이 조급해졌다. 봄이 절정인 주말이었고 마침 대학가 주변에 위치한 터라 여유 있게 사뿐사뿐 걸어가며 정취도 느끼고 마음의 준비도 하려고 했는데. 계획했던 게 흐트러지면 나는 많이 당황하는 편이다.


꽉 찬 강의실에 들어가니 이미 수업은 시작해 있었다. 글쓰기 관련 수업이 꽤 많았는데, 사실 오래도록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영화과 전공 시절에도 내 안에 픽션으로 풀어낼만한 서사가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대신 느슨하지만 꽤 꾸준하게 블로그에 일상 기록을 해왔고 간간히 내 글이 좋다고 말해주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에세이 글쓰기 수업 여러 개의 후기를 둘러보고 선택한 강의였다. 선생님이 소위 '빡세다'는 평가가 많은 강의였다. '쉬는 시간도 없이 주어진 시간보다 길게 수업을 해주신다' '꼼꼼하다'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오는데 익숙해져서일까 그런 후기를 몇 개 읽고 바로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수업은 물 흐르듯이 흘러갔는데, 사람은 왜 주어진 시간에는 그 소중함을 깊이 알지 못하는 걸까. 십수 년 전 들은 대학교 강의에서도 이렇게 집중했던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무언가를 '배운다'라고 생각하니까 막 저 밑에서 뜨거운 게 올라오고 달뜨는 기분이었다. 신기하기도 하지. 배울 게 많아서 백세인생인가, 하고 생각했다.


강의 계획표에는 우리가 써야 하는 7개의 과제가 미리 주어졌다. 하나같이 쉽지 않아 보였다. A4용지 한 장에서 한 장 반 정도의 분량으로 매주 목요일 마감이었다. 우리의 수업은 매주 토요일 아침이니, 선생님에게는 거의 만 하루 정도 검토할 시간이 주어지는 일정이었는데 우리도 우리지만 선생님도 정말 힘들겠다 싶었다.


첫 번째 수업은 개괄적이고 개론적인 내용이었다. 문장과 문단, 글을 쓸 때 유의해야 할 것들에 대해 적혀 있었다. 글쓰기의 왕도란 없겠지만 그래도 가장 우리가 중점에 두어야 할 것은 여섯 개의 음절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다. "다상, 다독, 다작" 깊이 오래 생각하고,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하는 것. 그래도.. 지금까지 내가 가까이 해왔던 거 아닐까? 하고 조금은 맘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이외에 또 팁을 주셨던 것은 쓴 글을 소리 내서 읽어 보고, 좋은 글을 필사하고, 시를 자주 읽는 것.


책은 결국 문화 상품이며, 트렌드, 스타일, 시대의 흐름이 중요하다고도 하셨다. 어떤 감각, "당대성"에 대해서도. 이는 첫 번째 과제를 마감하면서도 묘하게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부분이기도 했다. 예전 블로그에서 맘에 들었던 글들을 이리저리 끌어모아 써보려고 해도 그때 품었던 마음은 이제 거리가 느껴져서, 제삼자의 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몇 번의 초안을 쓰면서 지금 가장 현재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느끼는 게 쓰는 사람 나름의 당대성이 아니었을까.


그간 고작 블로그에만 긴 글을 써왔었던 터라, 글 쓰는 방법이라고 하기가 민망할 정도지만. 나에게 블로그에 쓰는 글들은 대개 솟구치는 감정을 토로했던 용도였다. 한 달음에 써내려갔던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원래의 습관도 그랬고 나는 장문을 즐겨 쓰고 퇴고를 잘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인 듯) 선생님이 한 단락을 구성하는 법을 알려주셨는데, 한 단락을 구성할 때, 5-6개의 단문(상황 묘사)으로 구성하고 1개의 장문(심리 묘사)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균형적으로 보기에 좋다,라고 하셔서 무척 인상 깊었다.


글을 쓸 때 나는 무엇을 중심으로 생각해 왔을까? 그간 내 글이 조금은 매력적이라고 보인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뭐였을까. 더욱 더 궁금해졌다. 선생님이 말한 방법대로 써온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서 더욱 그랬다 ㅎㅎ  


그리고 몇 가지 주안점을 두고 설명해 주신 부분은 되도록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말하듯이 일상어를 중심으로 쓰는 것. 글이라는 것은 대개 말할 때보다 2배~4배 정도로 구체적으로 써야 의사소통이 된다고 한다. 맥락을 글로 표현해야 하고, "예를 들면"과 익숙해지자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가장 주눅 들었던 것은 수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스티븐 킹이 버거킹에서 오래 일을 하다 등단했는데, 초안의 30%을 날리고 나서야 등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수정의 원칙은 30%를 날리고, 70%만 남긴다는 것. 퇴고의 과정을 (누구나 그러하듯이) 번거로워하는 나에게는 주눅이 드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또 바꾸어 생각하면 든든하기도 했다. 나는 말도 많고 글도 길게 쓰니까! 초고란 주저리주저리 쓰는 거라고 생각해야 하고, 아니 뭐 이렇게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해야 해? 이 정도로 해야 해? 느낌이 들 정도로 쓰고, 수정을 해야 한다고. 초고의 핵심은 '주절주절'!


아무튼 길게 길게 털어놓고 그 후의 일은 그때의 나에게 맡기자! 하는 이상한 기대가 있었달까. 하지만 수정을 하지 않는 건 작가가 아니라고 하셨으니까... 앞으로의 과제를 마감하며 이 부분에 중점적으로 신경 써야지 하고 생각했다.


정말로 선생님은 쉬는 시간도 없이 내달리셨다. 강의 내용의 중간중간에는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좋은 수필인 박지원의 <열하일기>, 피천득의 <시골한약방>, 그리고 유소림의 <세상에서 가장 끈질긴 것>이었다. 좋은 글이라는 건 주관적인 영역이긴 하겠지만 읽으면서 그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솔직히 들었다. 수강생 한 분 한 분이 낭독을 하고 나서 선생님이 "어때요?"라고 물어보자 강의실에 있는 모두가 그렇게 느꼈는지 첫 수업의 어색함인지 모두가 조용하자 선생님이 웃음을 터뜨리며 "별로면 별로라고 얘기해도 돼요. 글은 주관적인 거니까."라고 덧붙이신 풍경이 좋았다.


어휘력을 늘리려면 시를 많이 읽으라는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8주 동안 수강생 모두와 선생님이 있는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매일 아침 시를 한 편씩 보내주시겠다고 했다. 이렇게 낭만적인 커리큘럼이라니. 그 이외에도 사전을 가까이 둘 것, 클리쉐를 쓰지 않을 것, 한 문장에 정보는 하나 일 것, 글은 에너지 싸움이니 에너지로 독자를 압도시킬 것(수동태는 에너지가 없고 잘못된 표현이니 최대한 쓰지 않을 것) 등등


느끼게 할 것을 충분히 느끼게 하고, 그러면서도 흘러가야 한다 - 여기에 글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하는데... 과연 내가 가능할까? 첫 번째 과제는 '내가 가장 멋지다고 느꼈던 장면을 글로 그리기(자부심)'이었는데 이 과제에서 주어진 문장 자체가 나랑 굉장히 멀다고 느껴졌다. 글쓰기 수업을 듣기 전에 길고 어두운 겨울을 막 지나온 참이어서 더욱 그랬다. 아득해졌지만.. 시간의 흐름에 맡기면 내 안에서 해석된 글이 두 달간 우야든동 나오겠지. 다음 수업부터는 매주 마감한 수강생들이 각자의 글을 소리 내어 읽고 선생님이 피드백을 주는 위주의 수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아침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가 정해진 강의 시간이었지만, 선생님은 다음 주부터는 세 시간이 될 거라고, 밥을 든든히 먹고 오라고 하셨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남편과 지리산으로 떠나기로 했는데, 이번 여행에서 나는 산을 바라보며 마감을 하겠구나. 어리둥절하고 깊이 빠져드는 하루의 시작이었지만 근처에 방앗간이 될만한 카페에서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며 데리러 오는 남편을 기다렸다. 기대되는 강의의 시작, 그리고 산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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