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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치 Jul 15. 2019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

히피하피소셜클럽 두번째 글쓰기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빙그레 웃음이 걸릴 때가 많다. 볕 좋은 날의 오후, 커다란 창 아래 앉아 마시는 시원한 커피의 첫 모금, 금요일의 밤 공기, 아무 의심 없이 해사한 강아지의 눈, 사랑하는 사람과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조잘대면서 손을 잡고 걷는 길, 흙을 밟고 걷는 기분같은 것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건 1년 전 쯤 가족이 된 히피와 하피다.  


침대에 길게 누우면, 히피가 어느샌가 새초롬히 침대 밑에서 나를 빤히 올려다 본다. 냐아-라고 한번 울고 나면 그 다음은 뛰어 오를 차례다. 내 발 밑에서부터 차근히 올라와서는 배에 자기 손을 큼지막하게 올린다. 만약에 내가 누워있는 모양새가 히피가 원하는 대로면 그대로 지긋이 올라와 앉는다. 한참을 내 배 언저리에 서있을 때도 있다. 앉을 요량으로 간을 보는거다. 자칫하다간 내 명치에 히피 손이 올라와 있는 경우도 있어서 사실 고역이다. 하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저어하는 내색을 비치면 한달음에 내려가버리는터라 나는 7.4키로의 고양이가 명치를 눌러도 얌전히 누워있어야만 한다. 


반대로 하피는 사람 위로 올라가 앉아 있는 일이 통 없다. 하지만 밤잠을 길게 자고 일어나면 우리가 그리웠는지 내 머리맡 위에 웅크려 앉아있곤 한다. 하피는 정말 고양이답게 동그랗게 몸을 말아 자는 편인데 그러면 정말 작고 동그래져서 어찌 할 바를 모를 정도로 귀엽다. 귀엽다고 오백번 말하고, 생각하는데도 질리지 않는 귀여움이란 대체 뭘까, 하피를 보며 생각한다. 


그르렁거리는 소리는 하피가 히피보다 훨씬 작다. 하피는 작게 끓는 소리로 그릉그릉한다면, 히피는 크게 고로랑고로랑하는 소리가 나는 식이다. 히피는 언제나 존재감이 대단한 고양이라서 손님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곤 하지만, 반면에 하피의 작은 그르릉 소리는 모두가 숨죽여 듣게 되서 세상에 꼭 큰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걸 이렇게 또 고양이를 통해 배운다. 


매일 밤 고양이들이 잠을 청하는 장소는 항상 같은 편이다. 히피는 우리의 발냄새가 가득한 화장실 앞 발매트 위에 앉아서 잠을 청했는데, 요새는 새로 생긴 캣휠에서 또아리를 튼다. 하피는 우리가 가장 잘 보이는 소파에 자리 잡아 잠을 잔다. 새벽 즈음에 뭔지 모를 무게감에 잠을 깨면 십중팔구 히피다. 평온한 표정으로 우리 배 위에 올라 앉아 천연덕스럽게 잠을 청한다. 하피는 가벼운 몸을 통통거리면서 우리의 머리 맡 베개를 왔다갔다하다가 내 머리 위 쪽에서 두번째 밤잠을 시작한다. 종종 눈을 뜨면 나와 애인 사이에 어떻게든 끼어서 누워 있는 히피를 발견하곤 한다. 가장 크게 웃으며 아침을 시작하는 법을 고양이가 가르쳐줬다. 


히피 하피와 같이 살기 전에는 고양이들의 눈을 이렇게 가까이 본 적은 없었다. 누군가가 고양이 눈 안에는 우주가 담겨 있다고들 했는데, 정말로 그렇다. 동그란 유리 구슬 같은 행성이 눈 안에 들어 앉아 있는 것만 같다. 일상의 많은 것들이 많이 할퀴고 지나간 날엔 그저 고양이의 눈만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 답이 없는 세상일지라도 마음의 답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매일 요란스럽게 히피가 우리의 아침 잠을 깨우고, 하피가 엉뚱한 표정으로 우리를 웃게 하는 날들이 언젠가는 사라지겠지, 하는 상상을 많이 한다. 애인은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에 ‘그들의 첫번째와 두번째 고양이’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여자 주인공은 고양이의 죽음을 맞이하고 온 몸과 마음으로 격렬하게 그 죽음을 견딘다. 갑자기 떠난 고양이의 빈 자리를 채워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유해가 된 재를 스톤으로 만들어 간직한다. 하지만 사실 그건 쥐고 있던 어떤 것을 마치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이었단 걸 스톤으로 만들자마자 깨닫는다. 남자 주인공은 고양이를 담담히 보내주고 오래 운다. 소설을 읽으며 내내 나와 애인이 각각 딱 이렇게 히피 하피의 부재를 맞이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동물과 같이 살다보면, 곁을 오래 준 사람에게만 내어주는 표정과 몸짓이 있다. 그 순간은 몹시 귀하고 쉬이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고양이 친구들이 언젠가 나의 가장 큰 슬픔이 되리라는 걸 안다. 언젠가, 또 하나 타투를 할 생각이라고 친한 언니에게 얘기하다가, 언니가 “히피 하피로 하면 어때?”라는 질문에 생각도 거치지 않은 말이 툭, 튀어나왔다. “친구들이 별이 되면, 그때 할래요.” 언젠가는 분명하게 슬퍼질 운명에 온 마음을 던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그 마음을 내가 갖고 있다는게 몹시 기쁘고 동시에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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