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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치 Apr 23. 2020

신년 다짐 (부제: 2020 리부트)

히피하피소셜클럽 다섯번째 글쓰기 



2019년 마지막의 영화로는 미안해요, 리키를 보았다. 켄 로치가 은퇴를 두번째 번복하고 만든 영화. 적절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감독이 만들어내는 영화는 우아했다. 노동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시절이다. 결국 우리 생의 문양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그려나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거대한 시스템에서 기

인한다고 생각하면 울적해진다. 1월 1일이 되자마자는 나다니엘 블레이크를 다시 보고 엉엉 울었다.

2020년이 되었다는데, 쓰면 참 예쁜 숫자인데 2020은 너무나 어색하다. 이렇게 계속 신기하게 여겨지는 숫자들을 계속해서 맞이할 걸 생각하면 좀 아득하다. 크리스마스 무드와 새해를 좋아했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어쩐지 시큰둥하다. 정확히 말하면 시큰둥하려고 노력하는 느낌이랄까. 라마가 매년 새해 해돋이를 보러가는 회사의 어느 분에 대해서 신랄하게 얘기한 적이 있다. "그 해가 그 핸데 뭐" 이런 식으로. 남이 중요하게 여기는 걸 너무 후려치지말라고 짐짓 혼내 듯 얘기했는데 나도 어쩜 다르진 않나 싶기도.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새겨진 다짐하는 버릇은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 것 같다. 익숙한 것처럼 2020년에는 뭘 바라고 있는지 적고 있기도 했으니까.

예전에는 거창하게 새로운 언어도 배워보고 싶고, 새로운 도전도 해보고 싶고, 새로운 운동도 하고 싶고 그런걸 잔뜩 늘어뜨려놓고 나 자신을 괴롭게 했었는데 올해는 나도 모르게 건강만을 적고 오래도록 리스트를 바라봤다. 마음과 몸의 건강과 안녕. 사실 새로운 언어나 도전보다 가장 어려운 것일지도 몰라.

새해가 되어도 똑같은 일상이다. 매일같이 비슷하거나 더 높은 강도로 출근이 하기 싫고, 근무 중엔 종종 머리가 아프고 뒷목이 뻐근하고 퇴근할 때는 잠시 즐겁고. 긴 시간이 걸려 집으로 돌아가 한잠 자고 나면 또 출근이다. 딱 1년 전에 글쓰기 모임을 새로 제안했을 때의 그 마음들이 생각난다. 그 때도 새해 다짐의 결에서 나왔던 충동적인 제안이었는데 그래도 드물지만 꾸준히 이어지는 건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사람과 환경은 많은 걸 가능하게 한다.


2020년에 무엇을 바라볼까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저 무리하지 않고 가볍게 살고 싶어진다. 최근에 상담 선생님과 몇주째 얘기를 나누는 주제가 있다. "전 가볍게 살고 싶지만 단순하게 살고 싶진 않아요" 선생님은 이 주제가 내 상담의 핵심과 통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해선지 계속해서 물으셨다. 가볍게 살고 싶은 것과 단순하게 살고 싶진 않은 것은 언뜻 보면 모순적일 수도 있으니까. 정확히 어떤 부분을 가볍게, 어떤 부분을 단순하게 살고 싶지 않은 것인지 지독하게 캐물으셨는데 (상담이란..) 나도 모르게 '가볍게'는 태도의 문제이고 '단순하게'는 가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가벼운 태도로, 가치를 가벼이 두지 않은 채로 올해도 살고 싶다. 그거면 괜찮지 않을까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새해 목표 중 하나는 솔직하게 꾸준히 일기를 쓸 것. 아직까지는 잘 지키고 있다. 12월이 되어 지난 1년 기록을 훌렁훌렁 보고 있는 기분을 상상해보면 그거 꽤 괜찮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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