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은 호주여행 : 골드코스트편
골드코스트에는 저녁에 도착했다. 8월이지만 호주는 겨울이기 때문에 이미 골드코스트는 어두워졌고 날씨도 쌀쌀했다. 해변가에 있는 우리 숙소인 QT 호텔은 젊고 힙했다. 다양한 색상을 자유자재로 배치해놓아서 휴양지의 즐거움, 에너제틱함 그리고 경쾌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우리는 늦은 저녁을 먹으러 몇 블록 떨어지지 않는 시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베티스 버거(Betty's Burger)를 먹기로 했는데 베티스는 호주 북쪽 지역에 있는 버거 체인이라고 했다. 미국에는 쉑쉑(Shake Shack)과 인 앤 아웃(In and Out)이 있지만 호주에는 베티스가 있다. 레트로 무드를 자아내는 핑크 컬러의 러블리한 인테리어는 QT 호텔의 인테리어와 묘하게 닮아있었다. 우리는 Betty's Classic과 Pork Belly Burger을 주문했다. 베티스 클래식은 호주 소고기의 육즙이 부드럽고 고소했다. 포크밸리는 바삭하게 구워진 삼겹살 두 덩이가 햄버거 번 사이에 패티로 들어가 있어 맛있게 보였는데 이상하게 한국이 생각나는 맛이었다. 풍부하고 진하고 고소한 맛의 삽겹살 구이를 각종 야채와 함께 먹는 느낌이었는데 안에 무쌈이 들어있어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것이 기가 막혔다. 아니 이맛은 퇴근 후 친구들과 삼겹살에 맥주 먹는 기분이랄까? 분명 베티스 버거 메뉴 개발자가 서울을 방문했었거나 아예 한국인 개발자가 있거나 한 것이 틀림없다.
호주에서의 세 번째 날은 골드코스트의 아름다운 해변을 만끽하자고 서로 다짐한 날이었다. 어젯밤에는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골드코스트 해변이 햇살을 받으며 반짝였다. 겨울이어서 해변은 한산했다. 호주 하늘은 LA 같은 쨍하고 황금빛의 뜨거운 느낌이 아닌 구름이 조금 있고 푸른빛이 느껴져서 제법 신사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골드코스트 해변은 비수기여서 한적했지만 작년에 갔었던 미국 산타모니카 분위기가 생각났다. 산타모니카는 더욱 날것 같은 느낌이라면 여기는 좀 더 정제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각종 비치용품, 스케이트 보드, 서핑 보드 등의 용품들을 구경하고 있으니 나 또한 히피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우리는 언니가 꼭 마시고 싶다던 ESPL의 병 아이스 라테를 사서 서퍼스 파라다이스 비치에 앉았다.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마음속에 이 시간과 기억들을 잘 담아두고 싶었다.
오후에는 서핑 강습이 있었다. 겨울이어서 과연 서핑을 할 수 있을지, 너무 힘들지는 않을지, 다치지는 않을지 각종 걱정 속에서 예약한 서핑 강습이었다. 그래도 서퍼스 파라다이스에서의 서핑을 언제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르기에 나름 결연한 마음으로 결정했는데, 우려와 달리 바다는 따뜻했고 파도 타는 것도 그렇게 무섭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었다. 호주인 코치가 "너는 서핑에 최적화된 몸을 가지고 있어!"라는 격려의 말은 두고두고 날 웃게 만들었지만 그 덕분인지 일어나서 서핑보드를 타는 쾌거를 이루었다. 고마운 코치이다. 파도를 맞이하러 가는 길은 힘들지만 파도에 올라타는 기분은 짜릿하다. 가끔은 높은 파도가 위압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맞서지만 않으면 크게 문제도 없다. 서퍼들의 천국은 그렇게 파도쳤다.
서핑을 한 후 해변에서 시간을 보낸 언니와 조인했다. 어제 봐두었던 QT호텔의 멋진 와인 바 Stingray에 앉아 골드코스트의 밤을 즐기기로 했다.
언니는 의전 생활로 많이 지쳐있어서 서핑 대신 해변과 자연을 그냥 만끽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서핑하러 간 사이 해변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프랑스에서 온 친구들과 합석하게 됐다고 한다. 사실 상호합의된 합석이 아니라 갑자기 그들이 다짜고자 옆에 와서 않아서 언니는 내심 너무 놀랐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니 정말 유쾌한 사람들이어서 좋았다고 했다. 그 무리는 두명이었는데 이들고 사실 각자 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만난 사이라고 했다. 이들은 유럽에서 온 청년들인데 언니는 영어 뿐만 아니라 프랑스어도 할 줄 알아서 이들이 언니에게 더 호기심을 가진 듯했다. 서로의 호주 여행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은 우리가 떠나왔던 브리즈번 쪽으로 우리는 그들이 며칠전까지 돌아다녔던 시드니로 떠날 것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서로의 목적지를 향해가는 묘한 우연에 서로 좋았던 여행지를 추천해주며 아쉬움을 남기면서 헤어졌다는데 영화<비포선라이즈>가 떠올랐다. 서로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무슨 직장을 다니는지 몇 살인지의 소소한 호구 조사 없이 이렇게 이방인과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대화는 늘 설레고 호기심을 자아낸다. 와인은 이야기를 끝없이 이어지게 하지만, 우리는 내일 새벽 시드니로 떠나기 위해 짐을 싸고 부푼마음으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