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 없는 한국시계
풀들은 공터에서 아무렇게나, 제 자라고 싶은 높이만큼 자라곤 했다. 그 속에서 아이들도 제 하고 싶은 놀이를 마음껏 하며 쑥쑥 자랐다. 우린 온갖 놀이를 만들어냈고 언제라도 기꺼이 구르거나 넘어질 준비가 돼 있었지. 여기저기 널린 돌멩이 틈으로 뛰어다니는 운동화 코끝엔 흙먼지가 싱그럽게 피었고.
해가 뉘엿 기울면 공터를 둘러싼 4~5층 빌라들의 외벽을 햇살이 주황색으로 쓰다듬었다. 그때쯤이면 갓 지은 밥 냄새가 났다. 공터는 다시 비었다. 해질녘 썰물처럼 빠져나간 꼬마들은 내일 다시, 중력에 이끌리듯 공터로 돌아와 공터의 오후를 왁자하게 색칠할 것이었다. 흐릿하게 떠오르는 2000년대 초반 경기도 한 동네의 풍경이다.
은행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 입주한 건 2020년 초입이었다. 거의 모든 주민이 젊은 1인가구 직장인인 전형적인 자취촌. 공터는 없다. 10층은 거뜬히 넘기는 키높이 오피스텔들이 출근길 지하철만큼 빼곡하게 부대껴 있다.
전입해올 때만 해도 곳곳에 낡은 건물들이 있었다. 고층 오피스텔 사이 어울리지 않게 낑겨 있던 그 건물들은 몇 개월 차이로 하나씩 헐려나갔다. 건물이 헐린 곳엔 공터가 생겼다. 공터가 공터로 존재하는 시간은 하루를 넘지 않았다. 공터라기보다는 더 높은 빌딩을 위한 중간단계에 가까웠으니까. 새 공터가 생기자마자 건설업체는 마치 번호표를 뽑아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공사용 가림막을 둘렀고 몇 달이면 새 건물, 더 크고 높은 오피스텔이 들어섰다. 쉴 틈도 빈 틈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서울은 허겁지겁 건물을 올렸다.
폭우가 쏟아진 지난 8월의 어느 날, 작업을 멈춘 동네 공사장을 지나가면서 나는 그날 들은 농담 하나를 곱씹고 있었다. “폭우에도 출근 걱정하는 사람은 3류다. 폭우에 출근 못 하는 사람은 2류다. 폭우에 출근하는 사람은 어류다.” 그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출근했다. 배송기사처럼 운수·물류업 종사자들에게 그건 목숨을 건 일이었다고 했다. 무언가를 쉴틈없이 돌리고 조금도 멈추지 않게 하려는 이 사회의 강철같은 의지를 보면서 어린 시절의 공터를 생각했다. 성취도 성과도 쓸모도 없이 존재하면서 꼬마들을 천천히 길러내던 공간을.
공터라는 공간을 시간축으로 바꿔보기도 했다. 우리 한국인들의 시간 전체가 한 뼘의 공터도 허락되지 않는 빼곡한 타임라인 같았다. 폭우 출퇴근은 한 예시였을 것이다. 빈 틈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는 서울의 모습은, 개개인의 하루에 쉴 틈을 허용하지 않는 한국 사회를 닮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쉬면 불안하다’며 손톱 끝을 씹던 친구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뒤처지면 큰일나니까, 투기지역 빈땅에 앞다퉈 건물 세우듯, 자신의 시간을 빈틈없이 척척 개발해나가라던 선생과 멘토들은 또 얼마나 많았나.
‘바빠서 죽는’ 사람들의 소식을 자주 듣는다. 세상이 그들의 삶에 공터를 허락했으면 어땠을까 종종 상상한다. 우리 모두 지금보다 절반만 덜 부지런하고 절반만 여유로우면 어떨까 가끔 생각한다. 그런다고 나라가 망하거나 사회가 도탄에 빠질까 언제나 의문이다.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지구는 시속 1300㎞로 돌고 있는데, 우리는 뭘 그렇게 빨리빨리 돌리고 갈아넣을까. 쉴 틈도 없고 빈 틈도 없이.
이 글은 <주간경향> 1497호(2022.10.10)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