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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기자의 긁적끄적 Nov 19. 2023

챕터를 넘기다가, 끄적끄적

2023년 말엽 일기

1.

책에는 대개 챕터가 있다. 책은 삶을 닮았으니, 삶에도 일종의 챕터가 있는 법이다. 삶이라는 책의 목차를 꼼꼼히 챙겨읽지 않고 설렁설렁 넘겨가며 사는 나 같은 사람에게 새로운 챕터는 종종 예고없이 닥쳐오곤 한다. 요즘 나는 삶의 챕터가 변하는 순간을 살고 있다. 한 챕터의 끝페이지는 대체로 꽉 차있지 않다. 활자가 3분의 1 정도만 차있거나, 절반까지만 적혀 있거나, 때로는 단어 몇 개만 적혀있고, 나머지는 백지다. 우리는 그 백지의 공간을 어떻게 대할까. 나는? '어째야 한다'는 결론은 꺼내지도 생각하지도 않으려 한다. 그런 말은 어쩌면 백지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실례일지도 모른다. 나는 도무지 남들에게 교훈 같은 것이나 주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내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글도 그렇게 쓰지 않으려고 해.


다만 난기류에 대해서는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삶의 챕터와 챕터 사이 그 빈공간이 비행의 난기류와 닮았다는 느낌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필연적으로 흔들리게 되는 구간. 나는 무식해서 난기류가 왜 생기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난기류가 세상 모르고 쿨쿨 자던 아저씨도 번뜩 깨운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아주 뜬구름 같으니 바다 속으로.


가재나 게 같은 갑각류들은 딱딱한 껍데기를 벗으면서 살아간다고 한다. 허물벗기인데, 껍데기를 갓 벗은 그때가 가장 취약하다고 한다. 그때를 잘 견디면 더 단단한 껍데기가 새로 난다고 한다. 어떤 종은 그 과정을 통해 아주 오랜 세월을 산다고 한다. 바다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거기에다가 '천년만년'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된다면,


나는 천년만년 살고 싶다. 오래 전부터 그랬다. 행복할 때는 행복해서, 불행할 때는 행복을 기다려야 해서. 행복할 때도 불행할 때도 끝을 상상해야 한다니 얼마나 천형같은 일인가. 나는 허물을 벗겠지만 더 단단한 껍데기를 갖추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시간을 밀도있게 쓰고 싶다. 계획과 목표로 꽉 채운 삶이 아니라, 온갖 우연과 신비로 빼곡히 채운 삶을. 지금까지 생각한 건 일단 그 정도다.


다시 나는 난기류 속에서 두근거릴 것이다.



2.

기자의 글쓰기란 뭘까. 그건 글이 할 수 있는 100가지의 가능성 중 딱 1개, 그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1개를 억지로 골라야 하는 일 같다. 이런 말을 하면 대개 오해를 부르는데, 추상적인 단어나 형용사나 게으른 은유 같은 것들은 나도 쓰기 싫다. 그런 차원의 걱정은 아니다. 다만 말과 말이 살아있어서 한 문장 위에서도 서로 만나고 스쳐가고 대들고 싸우고 동맹을 맺고 용서하고 마찰하고 하는 그런 일들이 여기서는 영 쉽지 않은 듯싶다. 요컨대 우리는 적확한 단어를 쓰는 일에는 도사여도 적확한 언어를 쓰는 일에는 영 게으름뱅이다.


다행히 지금 다니는 회사는 원한다면(그리고 충분히 설득한다면) 그런 글을 써볼 수는 있는 구조다. 작년에는 기회가 되면 그런 글을 몇 개 시도했다. 올해는 그러지 못했다. 다른 이유는 없고 오직 내가 그런 시도를 할 대상을 1년 동안 만나지 못해서다. 후회는 없다. 형식을 만들려고 내용을 찾아다니는 짓은 하고 싶지가 않다. 기자가 아니었다 해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글은 기획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사실 요즘은 기자가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지도 잘 모르겠다. 모르고 시작했고 최근 몇 년까지는 그걸 안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다시 모르겠다. 무엇이 기사가 되는 것이고 무엇이 안 되는 것일까. 실무적인 차원에서 보면 답은 명확하지만 내 의문은 그보다는 조금 더 애매한 곳에 있는 것 같다. '이건 써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에너지가 고갈된 것만큼은 확실해보인다. 장기 번아웃이랄까 아무튼 좀 됐다. 취재원이나 여러 사람을 만나 물어보면, 어느 직업이든 이 정도 연차라면 그런 상태를 겪는다고 한다. 최근에는 한 12시간에서 15시간 정도 PC방에서 시간을 마구 방류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안식월에 연차까지 다 붙여서 아주 오래 쉬어야지. 솔직히는 이유없는 휴직을 때리고 싶다. 그렇게 쉬면서 감각을 깨우고 숨통을 열면, 시간과 공간과 사물의 베일 듯한 현실성이 면도날 같은 서슬을 세우고 내게 달려드는 경험을 하게 될까. 오늘 나는 너무너무 벅차도록 좋은 책을 다 읽었는데, 그 책은 그래봐야 덧없다고 쓰고 있었다. 덧없음... 그것이야말로 글쓰기라는 미지의 행위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발견한 무엇일지도 모르겠다.


3.

3번은 그냥 썼다. 1번과 2번만 있으면 둘 중 하나는 무슨 중요한 이야기 같아 보이니까. 그런 건 싫다. 나는 참 싫은 것도 많지.


가을이 말라붙는 소리가 들린다. 오후가 다 돼도 제법 소슬하다. 가을의 어떤 순간들에 어떤 글을 쓰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계절이 낙엽처럼 툭 하고 휘리릭 하면서 가버렸다. 그래도 내게는 겨울이 위안이다. 겨울에 태어났고 겨울에는 대체로 좋은 일이 많았다. 발발 떨면서 행복해하거나 눈 위에서 기뻐하거나 했던 기억들. 내가 언제 그 이야기들을 썼던가?


눈사람에 관한 어떤 시인의 기가 막힌 시구(詩句)를 들었는데 시집에서는 빠졌다고 한다. 오마이갓 나는 그 멋진 말을 아는 정말로 몇 안 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언젠가 시인이 그 말을 쓸 때까지 나도 몰래 간직하고 아껴 떠올려야지. 이번 겨울에는 조금 자주 떠올려봐도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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