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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용신 Feb 14. 2024

외국회사가 아닙니다.일본회사에 다닙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스타트업 경력을 바탕으로 일본계 회사에 입사했다. 분명 경력직을 뽑는다고 했고 해당 면접과정을 통해 입사했지만, 입사 첫날 스타트업 경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나에게 신입연봉을 제시했다. 최저시급과 거진 차이 없는 월급이었다. 그리고 1년이라는 수습기간. 1년을 열심히 일하고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퇴사. 하지만 백수생활이 너무나도 무기력했던 그러면 안되었는데 한마디 항의도 하지 못하고 싸인하게 되었다. 


매일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회사. 일본회사 특유의 위계질서. 무거운 분위기. 


처음 입사하고 일주일 뒤에 일본인 부장이 나를 불렀다. 회사 생활에 예의가 없다며 기본적인 회사예절을 아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내가 무어라 굉장히 큰 잘 못은 지은 건가 싶어 지난 일주일의 하루하루를 되짚어 보았지만,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부장은 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서류 도장을 찍을 때 상사 쪽으로 기울여 찍어야 하는 걸 모르나요?"

3초간 정적

"어..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본식 회사 예절 교육이 시작되었다. 

명함을 교환 할때 순서 (부장←→담당자의 상사 >  부장←→담당자 >  나 ←→ 담당자의 상사 나←→담당자) 라던가 두손을 가슴위치까지 올리지만 상대방의 명함보다는 낮은 위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던가, 

택시를 탈 때 상석의 위치가 달라지는 부분 (이때 상석은 사고가 났을 때 가장 먼저 탈출 할 수 있는 곳이 상석..)


일보다 내가 하는 인사각도와 자세에 대한 부담감으로 신입사원 월급을 받으며 아무런 교육없이 경력직의 업무를 부여받았다. 일본인인 부장은 나보다 7년차 높은 선배와 비교하며 내 능력을 나무라기 시작했고, 왕복 4시간 30분이 걸리는 출퇴근 시간과 상사의 가스라이팅에 나는 점점 우울해하고 지쳐갔다. 너무 힘든날은 가족들에게 감정을 괜스레 분출하기도 하고, 바로 자괴감이 드는 하루가 반복 되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굉장히 소극적으로 변한 나를 보고 무슨 일이 있냐며 묻기도 했다. 그래도 큰 문제없이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정사원이 되었다. 하지만 업무도, 대우도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 이게 맞는 걸까 생각하는 찰나


코로나가 터졌다.


아버지는 그냥 회사에 붙어있으라고만 했다. 그래도 조금씩 적응하고 있는거 아니냐고.

그런가? 적응한건가? 조금씩 잘 하고 있는건가. 끝날 듯 끝나지 않은 코로나가 계속되는 중에 갑자기 팀 이동을 발령.. 아니 통보받았다. 어안이 벙벙했고, 왜 내가 이동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중에야 회사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의 대안으로 나의 인사이동이 결정된 것을 알았다. 


내가 해왔던 업무와 능력과 전혀 상관없이.
그냥 말 잘 듣는 사람이라서
누가 뭐라해도 아무 말 없이 시키는대로 하니까. 

적응했다 생각했는데, 결국 난 편한 부품이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이게 맞을까? 


그리고 시작한 이직 준비. 내가 좋아하는 일과 관련된 회사로. 좀 더 크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회사였다. 나를 뽑아줄지,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몰랐다. 서류 탈락하진 않을까? 1차는? 2차는? 최종..?까지 올라가니 욕심이 생겼고, 자신 있었는데 결국 탈락. 


하지만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이 보였다. 나는 꼭 이곳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니구나. 마음을 먹으면 더 좋은 곳으로 언제든지 갈 수 있구나. 지금 내가 더 노력한다면 그 이상의 다른 곳으로도 갈 수 있겠다. 떨어졌지만, 오히려 최종 면접까지 올라갈 때 들었던 질문들을 차근차근 곱씹으면서 나의 가치를 더 인정받기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게 무엇일지 생각했다. 누군가가 시킨 일이 아니라,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서 일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내가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일거리를 찾아 움직이기로 했다. 그리고 곽용신은 하는 일이 다시 즐거워졌다.


그렇게 재밌게 일을 시작하고 2년이라는 시간이 다시 지나갔다. 거의 4년간 근무하면서 내가 닯고자 했던 모습의 선배분들도 많이 따라보게 되었고, 반대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는 모습의 직원들도 많이 보게되었다. 특히 퇴사전에 너무 티나게, 그리고 엉성하게 마무리하는 모습은 아름답지 못한 엔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일하는, 시간을 보내는 이 순간만큼은 계속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그런 모습이 내가 나중에 더 하고 싶은 일을 만났을 때 내 모습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열심히 하루하루를 달리던 어느날, 2년전 떨어졌던 그곳의 모집 공고를 다시 보게되었다. 서류에서 탈락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지원하였지만,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과정까지 다시 오르게 되었다. 마지막 3차 면접을 앞두고는 너무 심한 장염에 걸려서 면접 전날까지 병원에 누워있었고 오히려 . 누구나 하는 일을 관두게 되면 마지막엔 티가 났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다르고 싶었다. 퇴사발표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열심히 하고 싶었다. 퇴사 발표가 나는 그 오전까지도 평소와 다름없이 일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어진 월간조례시간 퇴사발표. 이번달 퇴사자 명단 PPT가 화면에 올라왔을 때 사람들이 웅성였다. 나는 스스로가 매 순간 열심히 즐겁게 일했다는 것에 또 다시 인정받는 느낌이 들어 즐거웠다. 왜 이야기 하지 않았냐고, 안 좋은 일 있는거냐고 다들 다가와 걱정해주었다. 정말 좋아하는 분야로 이직하는 걸 알았을때, 다들 아쉽지만 축하해 주었다. 


이직 후 가장 놀랐던 사실은, 나는 여전히 부족했고 새로운 곳에서도 배울점이 더 많았다는 점이 다. 이직한지 2년이 조금 안되는 시간, 나는 계속 성장하고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세상을 잘 몰랐고 겁이 없던 20대의 나는 막연히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이 최고인 줄 알았다. 그걸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현실을 깨닫는데 30살이 되었다. 그리고 30대의 절반이라는 시간을 통해 내가 일을 통해 얼마나 성장하고 즐거울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어떤 회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어떻게 일하느냐가 중요하더라.

내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곳이 나에게 맞는 회사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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