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서 어슬렁 거리다
동물원에는 동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물원에는 행복한 아이들과 단란한 가족도 있고 혼자 간 내게는 다정한지 안 다정한지 전혀 신경 안 쓰이는 연인들도 있다. 여행지에 동물원이 있으면 가는 편이다. 신기한 동물을 보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동물원에 있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고 그런 모습에서 현지의 표정을 볼 수 있어서이다.
섬에서 나고 자라서 기차나 육교, 동물원이 없었다. 처음 동물원에 갔을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세상은 온갖 신기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림책에서나 보던 것들은 모두 사실이었다. 동물 학대를 이유로 동물원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개선해야 할 문제이지 아예 없애서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해경을 해체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 것이랑 비슷하지 않나.
태국 사람들도 허풍이 있어서 표지판에는 동물원까지 500m라고 써 두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뙤약볕 아래를 걸으며 되새겼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도착한 치앙마이 동물원 후문에는 두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땀에 흠뻑 젖어 혼자 걸어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놀란 표정이었다. 입장권을 사고 동물원 전기 버스는 어디에서 타느냐고 물었더니 1㎞ 더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다시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 오르내리며 걸었는데 이것 역시 1㎞는 훨씬 넘었다. 태국에서 걸어 다니는 건 역시 좀 미친 짓이다.
동물원은 어느 서양인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의 사후에 태국 정부에 양도되어 확장되고 관리되고 있다. 치앙마이 동물원은 내가 갔던 다른 곳에 비해 사육사가 넓어 좋아 보인다. 대신에 아주 가까이서 자세히 볼 생각은 안 하는 게 좋다. 공작새들은 풀어 두어서 관람로를 따라 일렬로 걷는데 다른 나라에서도 풀어 키우는 것을 자주 봤다. 마치 닭이나 오리처럼 돌아다니는데 어째서 걸을 때는 일렬로 가는지 궁금하다.
치앙마이 동물원은 벌써 네 번째인데 전체적인 모습은 변하지 않았지만, 놀라운 것은 문제의 판다였다. 판다는 따로 특별히 관리되고 있었고 입장권도 따로 사야 했다. 길게 늘어선 중국 관광객들의 대기 줄을 보고 판다를 보는 것은 포기했다. 아마도 중국인들은 판다를 보면 볼수록 행운이 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본 횟수만큼 말이다. 그리고 펭귄 사육사는 처참할 정도로 허름했었는데 더위에 지쳐 기진맥진한 펭귄들이 불쌍했었다. 그런데 새로 만든 사육사는 건물 전체가 냉방시설이 되어 있어서 아주 시원했고 펭귄들도 신나게 헤엄치고 있었다. 황제펭귄과 젠투펭귄 두 종류만 있는데 젠투펭귄은 펭귄 중에서 가장 빠르다. 뒤뚱거리는 펭귄의 이미지와 잘 맞지 않지만, 젠투는 정말 빠르다. 수족관 위에서 내려다 볼 수도 있고 아래로 내려가 볼 수도 있는데 물속에서 젠투펭귄은 마치 총알처럼 휙 하고 지나갔다. 또 다른 큰 변화는 아쿠아리움이 생겼다는 것이다. 여기도 역시 입장권을 다시 사야 하는데 450밧(15,000원)으로 아주 비쌌다. 망설이다 들어갔지만, 역시 다른 아쿠아리움에 비해 볼 수 있는 동물들은 별로 없고 수중 터널은 짧았다. 그래도 가오리나 상어를 보는 태국인들의 모습은 내가 처음 동물원에 갔을 때처럼 놀라는 표정이었다. 어른들도 다들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바다가 없는 태국 북부에서 가오리나 상어를 처음 본다면 정말 놀라울 것 같다.
데이트 중인 연인들이 있었고 나이 차가 꽤 있어 보이는 서양 남자와 태국 여자는 어쩐 일인지 사내는 계속 실실거리며 웃고 여자는 뿌루퉁해 보였다. 저 사내도 나처럼 동물원을 좋아하는 것이고 여자는 어째서 이런 곳에 오는 것인지 불만 투성이었을 것이다. 짜증 부리는 여자를 두고 남자와 내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눈가에 웃음이 가득한 채로 입술을 내밀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냈다. 동물원에 혼자 다니는 사람을 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닌데 이번에는 두 명이나 봤다. 둘 다 동양인이었는데 더운 날씨에 청바지를 입은 남자와 원피스에 챙 넓은 모자를 쓴 여자였다. 커다란 망원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고 있었으니 동물 사진을 찍으러 온 걸까? 대낮에 동물원을 혼자 어슬렁거리는 사람과 얘기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