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만 있던 일요일
숙취도 그렇지만, 무력감은 더 큰 문제다. 과음하고 난 다음 날. 어쩌다 늦은 오후에 깨어나면 그 무력감은 절정에 다다른다. 아침 커피를 못 마시고 점심도 걸렀다. 저녁 먹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럴 때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라도 흘러나오면 미칠 것 같다.
눈은 떴지만,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잠자는 것도 아니다. 숨 쉬는 시체가 되어 어쩔 줄 모르고 있다. 그러다 반쯤 수면 상태가 되면 나쁜 꿈을 꾼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소공포가 심해져서 높은 데 올라갈 수가 없다. 얼마 전 네팔 포카라에서 행글라이딩을 했다. 하지만 내 인생의 희망 사항 중 하나였던 히말라야 산맥을 보며 활공하는 것은 내게는 악몽이었다. 마침 독수리 한 마리가 곁에서 같이 날아서 나와 함께 떠 있던 안내자는 정말 행운이라고 했지만, 그놈의 커다란 새. 저리 가라고 하고 싶었다. 중력은 내게 정말 중요했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꿀 때면 빨리 떨어져서 어서 중력을 느끼고 싶다. 머리가 깨지고 어딘가 분질러지겠지만, 어차피 떨어질 거라면 계속 떨어지는 기분을 느끼는 것보다 빨리 떨어지고 싶다. 여전히 바닥에 닿지 않는 한없이 떨어지는 느낌.
악몽으로 뒤척이다 결국 떨어진다. 침대에서 바닥으로. 바닥은 침대보다 차고 볼에 그 느낌이 오면 아픔보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정말 다행이다. 더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