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나 안 괜찮아. 상관 있어.
사례 1. 그냥
라오스에서 알게 된 우리나라 친구와 그의 라오스 여자친구와 함께 저녁 식사 약속을 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도 않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이제 슬슬 포기해야 하나, 하고 있었는데 통화가 됐다. 약속 시각을 한 시간 반이나 넘기고 나서 그녀가 한 말은 ‘그냥’이었다. 분명 온다고 했었고 라오스 사람들은 비슷한 대답으로 ‘비가 와서’나 ‘잠들어서’ 등이 있다고 했다.
사례 2. 아니면 말고
전에 태국 여행 중에 현지 친구에게 차를 빌리면 하루에 얼마나 들겠냐고 물었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자동차 딜러가 카탈로그를 들고 나를 찾아왔다. 대여하느니 차를 사서 타고 다니다 돌아갈 때 팔면 되지 않겠냐고 하면서.
오토바이도 같은 일이 있었다. 당분간 타고 다닐 스쿠터 이야기를 하다가 할리 데이비슨은 얼마나 하느냐고 지나가는 소리를 했다. 이들에게 그냥 하는 소리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그래도 ‘아니면 말고’다. 누구에게 할리 데이비슨이 있는데 팔고 싶다더라며 며칠간 다그침을 받았다. 귀찮아.
사례 3. 마이 뺀 라이
태국 사람들은 한 번이라도 보면 친구다. 거기다 페이스북이나 라인 계정이라도 교환하게 되면 현재 진행형 친구가 된다.
딱 한 번 본 페이스북 친구가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와서 나와 함께 여행할 거라며 버스표까지 다 예매해 놓고 내게 연락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내가 치앙마이에 있다는 걸 알고 연락했던 것인데. 함께 치앙마이 근교에 갔다. 그녀는 다른 친구와 함께였고 이미 숙소도 다 예약되어 있어서 나는 따로 숙소를 구하러 돌아다녀야 했다. 숙소를 구한 후에 그녀와 다시 만났는데 그녀는 이미 식사했다고 한다. 혼자 밥 먹고 있는 내게 그녀는 다음 날 새벽 네 시에 다른 곳으로 떠난다고 말했다. 엉뚱하다. 이럴 양이면 나는 왜 데리고 왔나?
이외에도 전날 밤 함께 정을 나누며 놀았던 친구들이 다음 날 일어나보니 나만 빼놓고 다들 며칠씩 놀러 가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남겨진 친구들은 그것에 대해 뭐든 말을 아낀다. 내가 그 친구들 다 어디 갔느냐고 물으면 모른다고 한다(알면서). 어쨌든 그나 나나 친구의 차에 좌석을 얻지 못한 건 매한가지다. 우린 트럭 짐칸에 타도되는데 하는 아쉬움이 분명 이들에게도 있다. 그러면서도 사라진 이들을 궁금해하지 않는(척 한)다.
라오스에서는 ‘뽐삔양(들리는 대로 적어서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이라고 하고, 태국에서는 ‘마이 뻰 라이’라고 한다. 둘 다 ‘괜찮아.’ ‘상관없어’와 같은 말이다. 새벽에 매홍손으로 떠나 버린 그들에게 ‘마이 뻰 라이’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아냐. 나 안 괜찮아. 상관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