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짧은 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시 Feb 15. 2020

처음 배운 차(茶)

오후의 티타임 - 백차

오늘 처음으로 취향관 살롱을 다녀왔다.
바로 '오후의 티타임 - 백차편'

두 시간여의 시간 중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인상 깊어서 따로 메모해둔 것만 두서없이 정리해본다.




차를 마신다는 것


영화 <일일시호일>에서는 이런 대사가 있다.

매일 매일 좋은 날이란,


비 오는 날에는 비를 듣는다.
눈이 오는 날에는 눈을 바라본다.
여름에는 더위를, 겨울에는 몸이 갈라질 듯한 추위를 맛본다.
어떤 날이든 그날을 마음껏 즐긴다.


차를 마신다는 것도 비슷하다. 차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이고 찻잔과 숙우를 데우고 찻물을 따르고 마시는 모든 행위를 하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보통 나는 무언갈 하는 순간에도 이다음에는 무얼 해야 하고 오늘 저녁에는 누굴 만나야 하고 내일은 뭘 해야 하는 지등 끊임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차를 마시면 좋은 점이 바로 이렇게 복잡한 일련의 생각을 잠시 멈추고 차를 마시는 그 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얼그레이의 유래


카페에 가서 음료를 주문할 때 커피를 마시기 싫은 날에는 주로 녹차나 허브티를 시킨다.

가장 무난하게 많이 찾는 차 중 하나가 바로 얼그레이.

특유의 화장품 같고 스모키한 향이 매력적인 티(tea)다.

얼그레이라고 하면 '영국에서 많이 먹는 홍차'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오늘 그 유래를 듣고 보니 꽤 재미있었다.

1980년대 중국에 외교 사절단으로 파견된 그레이 백작은 어느 날 중국 우이산에서 생산된 정산소종이라는 차를 맛보게 된다. 맛이 너무 좋아서 제조법을 물었으나 당시 중국의 어떤 법으로 인해 차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영국으로 돌아오는 배 위에서 맛보았던 것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중국 차에 이것저것을 넣으며 테스트를 했다. 그때 우연히 베르가못 향을 첨가하게 되었고 그게 오늘날 얼그레이차가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얼(Earl)’은 백작이라는 뜻.


이렇게 몰랐던 유래를 듣는 것은 사소하지만 참 재밌다.





한·중·일의 차 마시는 법


아쉽게도 현재 우리나라의 차 문화는 없다고 한다.

원래 우리나라에서 차는 신라 시대 때 어린아이들도 즐겨 마실 만큼 대중적이었으나 오랜 세월 수많은 전란을 겪으면서 점차 사라졌다. 특히, 유교가 중시되던 조선 시대 때 차 문화를 대표하는 스님들이 모두 산속으로 쫓겨나게 되었고,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차 문화는 조용히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꽤 아쉬운 일이다.


흔히 들어본 '다도(茶道)'라는 것은 일본식 차 마시는 예절을 뜻한다고 한다.

어렸을 적 학교 도덕 시간인가 기술가정 시간에 배운 다도가 한국 전통 예절이 아닌 것에 조금 놀랐다.

하지만, 한중일 모두 지리적으로 가까우니 비슷한 차 문화가 전해진 것은 맞는 듯하다.

사전을 찾다 보니 일본의 다도를 창시한 센리큐(千利休)가 한국계 사람이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흥미진진.


오늘 체험해본 것은 중국식 차 마시는 방법인 '공부차' 다.

공부차법은 단계가 많아서 굉장히 노력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요약하자면, 자사호 같은 작은 찻주전자에 찻잎을 넣고 물을 가득 따른다. 이때, 뚜껑을 닫을 때 물이 흘러넘치게 해서 그 안을 가득 채우는 게 포인트다. 그렇게 하면 내부에 차 향을 가득 머금을 수 있다고 한다. 향이 강한 녹차 같은 차보다는 향이 덜 강한 차를 우리기 좋은 방식이다.


그리고 처음 우린 물은 다 따라 버린다. 이를, 세차(洗茶)라고 한다.

딱딱히 굳어진 찻잎이 깨우기 위함이기도 하고 찻잎의 먼지나 냉기 같은 안 좋은 성분을 날리는 과정이다.

그다음부터 우려낸 찻물을 숙우에 옮기고 찻잔에 따라 마신다. 이 과정을 반복한다.


정말 복잡하다. 심지어 뭔가 어렵다. 앞에서 내려주시니까 감사히 마시지 매일 직접하기엔 꽤 번거로운 일일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좀 더 쉽게 차를 우릴 수 있는 도구가 있다. 바로, 표일배. (무슨 사람 이름 같다.)

가격이 비싸지도 않으니 한 번 장만해봄 직하다.





잎차의 유통기한


오늘 마신 차는 차차의 백차 3종 세트 '설국'이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까맣고 딱딱한 찻잎과 달리 하얀 솜털이 보이는 길쭉한 형태를 지녔다.


내 취향에는 첫 번째로 마신 백호은침이 가장 맛있었다.

두 번째로 마신 노백차는 15년 숙성한 차로 좀 더 달고 깊은 맛이 느껴졌다.

마지막에 마신 월광백은 녹차 같이 쌉싸름한 맛이 느껴졌고 무려 60년된 차였다.

이렇게 설명을 듣고 보니 이러한 찻잎의 유통기한이 궁금해서 여쭤봤다. 돌아온 대답은 매우 뜻밖이었다.


녹차를 제외한 대부분의 잎차는 따로 유통기한이 없다고 한다.

단지, 식품위생법상 유통기한을 표기할 뿐이라고.


마치 와인이나 술처럼 오랜 시간 숙성할수록 맛이 둥글어지고 그 가치가 올라간다.

그러한 이유로 얼마 전부터 보이차는 유통기한 표기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와 달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허브티 같은 가향차는 설탕 같은 게 포함된 것이라 유통기한을 지켜야 한다고 하니 집에 쌓여있는 유통기한 지난 티백차들을 얼른 내다 버려야겠다.





평소에 차를 좋아하긴 했지만, 차가 뭔지는 잘 몰랐다.

가볍게 설명해주시는 유래나 사례들이 귀에 쏙쏙 들어왔고 권해주시는 차도 너무 맛있었다.

차차의 브랜딩이나 필름도 너무 취향 저격.

사람들이 차를 마시는 이유와 나의 새로운 취향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볼 수 있었고,

오랜만에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은 신선한 감동을 받은 시간이었다.



오늘 먹은 것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