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보물창고
명절에 할머니네 집에 오면 항상 스테인리스 그릇에 밥을 먹었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네 집에는 도자기 그릇이 없고 스테인리스 그릇만 있는 줄 알았다. 할머니네 집에 오기 전에 할머니네 집에서 쓸 밥공기를 비롯해 국그릇, 찬기, 면기, 접시 등을 사 왔다. 내가 첫날 짐을 푸니 할머니께서 뭘 이렇게 무겁게 다 싸왔냐고 집에 다 있는데라고 하시며 할머니의 그릇장을 보여주셨다.
“뭐야! 할머니네 집에 이런 그릇 있으면서 왜 우리 올 때는 이런 그릇 안 쓴 거예요~”라고 얘기하니 할머니께서는 “나는 생전 저런 그릇은 안 써 스뎅이 가볍고 편하지”라고 하신다.
할머니의 그릇장에는 내가 탐낼만한 빈티지 그릇들이 많았다.
“할머니저 이거 가지고 가도 돼요?”라고 물으니 할머니께서는 “내 가이제 생전 뭐 이걸 쓸 일이 있나~마음에 드는 거 다 가져가라~”라고 하셨다. 마음에 드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 어떤 것부터 챙겨야 할지 벌써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이래서 딸자식들은 도둑이라고 하는 건가… 손녀도 도둑..)
할머니는 이런 오래된 그릇을 가지고 간다는 내가 이해가 안 되셔서 그런 걸 가져가서 어디에 쓰냐고 물으셨다.
시집가면 새로 다 살 텐데 이런 오래된 그릇을 뭐하러 가져가냐고. 할머니께 나는 직업이 이런 그릇이 있어야지 돈 벌어먹고 산다고 말했는데, 할머니는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치시다.
할머니께는 푸드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이 너무 생소해 이해를 잘 못하시지만 나중에 이 그릇들로 작업을 해 결과물로 보여드리면 이해가 조금 쉬우실 듯하다.
이것저것 하나씩 챙기다 보니 생각보다 그릇이 너무 많았다. 내가 가져온 그릇들까지 다 챙겨가려니 그릇만 한 짐이 됐다. 가족이랑 명절에 같이 올 때 차로 가지고 가면 좋지만, 그전에 필요할 수도 있으니깐 이번 기회에 챙겨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할머니께서는 이제 오래돼서 쓰지 않는 그릇들이 나에게는 보물로 느껴진다.
할머니의 그릇장은 나에게는 보물창고이다.
왠지 땡잡은 것 같은 기분이다. 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