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여 전 처음 3백50만 원의 예상치 못한 자전거 가격에 자뭇 놀라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결국 하해와 같은 아내님의 은혜로 내 인생 첫 자전거를 갖게 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전국 도로를 누비며 땀은 몇 리터쯤을 흘렸을까. 이젠 내 삶 깊숙이 쑥! 들어와 버린 로드 자전거.
뱃살, 옆구리살과 함께 스트레스도 훌훌 날아가 버리고 건강도 좋아지니 더할 나위 없지만, 문제는 그 특유의 후유증이 있다는 거다. 솜털처럼 가볍던 그 흑마(슾셜 타막 콤프)의 카본 바디가 살이 찌는 것도 아닐 텐데 이젠 들쳐 메면 어깨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날이 무거워진다. 달릴 땐 그리 조용하더니만, 청력도 좋아진 걸까, 눈치도 챌 수 없었던 미세한 소리가 이젠 자전거 구석구석에서 아우성이다. ㅠㅠ
그뿐이랴~ 내 옆을 치고 지나가는 라이더들 보면, '훈련을 좀 더 해야지~' 하는 건설적인 생각보단, '역시 바꿀 때가 된 것 같애~'라는 참신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때가 되면 슬슬, 평소에 관심도 없던 브랜드들이 발표하는 새 모델들이 그렇게 자주 눈에 띈다. 때 맞춰, 시즌은 끝나가는데 코로나 덕에 수영도 못하게 되니, 겨울철을 별 탈없이 나게 해 줄 만한 변변한 소재조차 없다. 기변 말고는 ㅎ
새 걸 살까, 중고를 구할까?
뭘로 바꾸지? 이미 슾셜에 익숙하기도 하지만, 워낙 국내에서 찐 팬이 많기로 유명한 에스웍(S-Work)부터, 컬러감 쩌는 신모델 에이토스(Aethos), 독일 고유의 군더더기 없는 기능적(Functional) 스타일 라인이 잘 살아있는 캐년(CANYON), 꼭 공예작품처럼 빚어낸 듯 한 BMC의 Masterpiece (이 모델은 이생에선 아닌 걸로 ㅎ).
일천만 원을 훌쩍 넘기는 자전거들에 눈높이가 맞춰져 버리면서, 이번 겨울 기변은 글렀다는 생각에 프리미엄 모델들의 눈요기로 대리 만족하고 있을 즈음, 친한 후배가 비앙키 올트레 xr1 모델을 도싸 중고장터에 내어 놓는단다. 이태리 감성의 에어로 스타일 또한 나름 괜찮다고 느껴오던 터였는데, 파츠(부품) 대부분을 중고로 이미 처분을 하고, 프레임만은 아직 가지고 있다길래 얼른 인수 결정. 그래! 이참에 자전거를 조립해보자. 큰돈 쓰지 말고, 중고 시장에서 이것저것 모아서. 자전거 구조나 구성도 공부할 겸.
이것만은 꼭 알자. 나의 몸과 자전거 지오메트리 Geometry
에어로 자전거의 특징을 완성시키는 첫 번째는, 물론 항속성을 위해 무게 중심이 높은 에어로 프레임이다. 두 번째는 휠셋. 카본 휠셋으로 무게뿐 만이 아니라 주행의 퍼포먼스가 확 달라진다는. 한 번 카본 휠셋으로 옮기면 다시는 알루 휠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그 휠셋. 그리고 세 번째는 핸들바다. 평이한 원형 튜브 모양의 핸들바와 비교하자면, 그 디자인만으로도 에어로 스타일의 라이딩을 완성시켜준다는.
에어로 프레임.
브랜드마다의 지오메트리가 조금씩 다르지만, 비앙키 올트레를 조립 후 첫 번째 약 50킬로미터 라이딩과 두 번째 약 60킬로미터 라이딩에서 뜨악! 하고 말았다. 허리는 끊어질 듯한 통증으로 주행 30분을 채 넘기기가 어려웠고, 그전엔 200킬로미터를 넘게 주행해도 끄떡없던 어깨 부위까지 엄청난 피로감으로 주행이 너무 힘이 드는 것은 물론, 고작 50~60킬로미터 라이딩 후 집으로 돌아오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린다. 기변이라는 일의 의미를 잘 모르시는 아내님 왈, "오빠도 나이 드나 봐~." 뭐 사실 실제로 나이 탓일 수도 ㅠㅠ
예상치 못했던 몸의 반응에 비앙키 올트레와 슾셜 타막의 지오메트리를 세심히 뜯어보게 되었는데, 프레임의 부위별 규격 차이가 크게는 2.5센티에서 작게는 몇 밀리미터까지 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비비의 높이(BB Height), 스택(Stack), 리치(Reach)의 차이.
BB Height: 지면에서 Bottom bracket 중심까지의 높이 Stack: BB 중심에서 헤드 튜브 탑까지의 수직 높이 Reach: BB 중심에서 헤드 튜브 탑까지의 수평 거리
슾셜 타막의 비비 높이보다 비앙키 올트레는 2.4센티나 높다. 그러다 보니, 안장 높이는 높아지면서, 헤드 튜브 높이는 프레임 사이즈를 52(슾셜 타막)에서 50(비앙키 올트레) 줄이면서 더 낮아져, 허리의 부담이나 페달링 시 허벅지에 오는 부담이 훨씬 커져버린 거다.
안장 높이는 페달링 무릎 각도 허용 범위까지 낮추고, 스템을 뒤집어서 핸들바 높이를 더 높이는 방법(아래 사진 참조)으로 최대한 몸에 맞춰서 허리 통증과 어깨 피로감은 최소화했지만, 시즌 온 이후에 동료들과 팩 라이딩을 해보면서 최종 판단을 해 봐야 할 듯하다. 기변 전엔 새 프레임의 지오메트리가 어떻게 기존 것과 다른지 확인하고, 특히 허리 통증, 어깨 통증이 염려되는 라이더라면 꼭 체크!
에어로 스타일 구성하기.
이번 기변을 위해서는 큰 비용을 쓸 생각은 애초에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원래 가지고 있던, 알루 휠의 끝판왕이라는 샤말 휠. 프런트는 구입한 지 1년이 조금 넘었고, 리어는 이제 몇 개월이 지났을 뿐이라 그대로 가져가기로 하고, 에어로 프레임에 어울리는 에어로 핸들바를 중고로 바꾸기로.
도싸와 바이크셀 중고장터에 하루가 멀다 하고 체크인을 해보지만, 내가 장만하려는 에스웍 에어로 플라이 모델은 물론, 본트래거나 시마노 모두 이미 거래가 끝난 흔적만 있을 뿐 새로이 올라오는 거래량이 없다. 한 개 정도가 어쩌다 눈에 띄는데, 원하는 사이즈와 차이가 있다. ㅠㅠ
자전거 씨가 말랐다고 하더니, 중고장터로 몰려든 겨울철 라이더들로 중고가 조차 끌어올리는 모양이다. 코로나로 자전거가 더 많이 팔린 탓도 있지만, 그 코로나로 대부분 수입산 브랜드에 의존하는 한국시장에로의 자전거 유통이 원활하지 못한 탓도 있단다. 며칠을 더 기다리다 어쩔 수 없이, 국내에 남은 새 제품의 재고를 확인하던 중 (당연히 에스웍은 새 제품도 없다.) 후배로 부터 이른 아침에 온 카톡. 도싸에 원하던 에스웍 핸들바가 떴단다. 거의 새 제품이나 다름없는. 가격도 같은 가격. 에스웍 에어로 플라이 2, 32만 원. 누가 채갈세라 가격 지불하고 구매 확정.
크랭크 셋 업그레이드로 첫 기변 마무리.
도싸 중고장터를 함께 봐주던 후배가 스프라켓도 이참에 듀라에이스(중고 시세 150,000~200,000)로 가면 좋겠다고 중고장터에서 몇 개 찾아줬는데, 처음 해보는 기변에 너무 생각 없이 지르는 건 아닌가 싶어서 주저하긴 했지만, 좀 더 나은 퍼포먼스를 위해 기변에 기대고 싶은 마음을 쉽게 떨치긴 어렵다. ^^
결국, 스프라켓에 크랭크 셋까지 둘 다 듀라에이스로 업그레이드 완료. 여기에 조립하며 케이블도 다이아몬드 슬릭으로 같이 업그레이드.
이렇게 마무리하고 영하 10도 한강 주변 조립 완료 기념 라이딩. ^^
총무게는 850그램 줄어들었다. 처음엔 달라진 프레임 지오메트리 때문에 꽤나 고생을 했지만, 안장 높이를 이리저리 맞춰보고, 핸들바의 각도도 조절해보기도 하면서 새로운 프레임을 통해, 라이딩 자세의 미세한 차이들을 느껴보고 있다. 처음 로드 자전거를 가지게 되었을 때처럼, 첫 기변의 조립이 끝난 자전거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샾에서 받아 들 때와는 달리, 안장 위에 오른 순간부터는 그 밀리미터의 섬세한 차이들이 자전거를 타 보지 않고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그런 변화를 만든다.
밀리미터의 차이.
지금 생각해보면, 자전거 제작의 달인들이 이런 밀리미터, 그램의 차이를 만들며 명품으로 향하는 여정을 수십 년 동안이나 실험과 도전을 끊이지 않는 거겠지. 어쨌든 이번 겨울 시즌은 의미가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