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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떠나는 인생여행 2

전국 자전거 여행


커오면서 자유분방한 그 성격 탓에 제 부모의 속을 그렇게 긁어놓더니, 그리고 제 속은 또 얼마나 탔겠느냐마는, 어느 날 "합격했다"는 소식으로 아내의 그동안 쟁여놓았던 긴장과 서러움을 기쁨의 눈물로 왈칵 쏟아내게 한 것도 그 녀석이다.

 

아들 녀석이 곧 다른 대륙 미국으로 떠난다. 막상 나라를 떠나 시차 조차도 밤낮이 다른 지구 반대편으로 간다고 하니 문득문득 가슴 한 곳이 시려온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서울로 떠난다고 했던 그 날, 녀석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런 맘이셨을까.


한 가지 꾀를 내었다. 그 녀석이 정말 멀리 가버리기 전에 며칠 동안만이라도 꼭 붙어 지낼 방법.
둘이서 국토종주 자전거 여행.



설레는 출발이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갈 길을 재촉할 필요도 없이 남쪽으로 남쪽으로 흘러가면 된다는 "자유"라는 흥분과 둘이서 이렇게 앞으로 짧지 않은 며칠 동안 "함께" 지낸다는 생각에.


걱정했던 장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뜨거운 햇볕에 녀석을 금세 지쳐버리게 만든다. 다행히 몇 해 전 만났던 시골 언덕 할머니는 오늘도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계신다. 아들과 시원한 미숫가루를 한 그릇 씩 나눠마시며 다시 에너지를 불어넣어본다. 할머니께 아는 체를 하고 인사를 드리니, 너무도 반가워하시며 아들과의 여행에 구수한 덕담까지 삼천 원짜리 미숫가루의 시원한 얼음처럼 넉넉하게  띄워주신다.



원래 가보지 않은 오르막을 앞두고서는 긴장과 공포감이 엄습해온다. 너무 겁을 줬는지 이화령을 앞두고 몇 시간 전부터 긴장한 표정을 감추질 못하더니, 5킬로미터 언덕길을 거뜬히 올라와서는 땀을 끼얹은 듯한 초췌한 표정이지만 해냈다는 성취감에 의기양양한 모습이다.


고개 정상 구석에 마련된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부자는 등목을 서로 나눈다. 내 한창 어릴 적 아버지가 부어준 바가지 물에 소스라치게 차가워했던 그 기억은 가가호호 들어선 샤워 시설에 밀려난 후 수십 년 만에 이 곳 이화령에서 2020년에서야 내 아들과 다시 느껴본다.



대학도 입학하기 전인데, 베프랑 사업을 준비하는 얘기. 새로 사귄 여자 친구 이야기. 요즘 심취한 음악 이야기. 다시 한번 요즘 아들의 근황을 상세히 업데이트받는다. 그리고 실제로 느껴보려, 플레이리스트 하나를 공유받아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해 자전거를 타며 감상해본다. 그중에 DPR이라는 아티스트는 천재적인 것 같다. 내 맘에도 쏙 든다.



별거 아니었다며 이화령을 우습게 보던 그 녀석을 이틀 뒤 박진고개에선 정상에서 제법 기다려야 했다. 큰 트럭들 조차도 굉음을 내며 힘겨워하는 그 고갯길에서 뒤따라 오르던 녀석은 안전하기는  것인지, 혹시 포기한 것은 아닌지, 하지만 믿음으로 잠시 기다려 보기로 하니 여지없이 아래 멀리 코너길을 돌아 그 녀석이 한 바퀴씩 한 바퀴씩 힘겨운 페달링으로 나타난다. 다행이고 사랑스럽고 안도의 깊은 한숨이 터져 나온다. 이번엔 얼굴에 바른 선블록 로션과 땀이 범벅이 된 채 그 녀석의 양쪽 볼과 이마를 타고 연이어 흘러내린다. 힘들었을게다. 낙동강의 경치가 궁금하다며 잠시 쉬어가잔다. 그럼~ 얼마든지.



코로나로 오랫동안 뵙지 못했던 외할아버지를 강정고령보 근처에서 뵈었다. 자전거로 이동이 쉽지 않다는 걸 아시고는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시며 1시간 반을 들여 자전거 도로 근처까지 와 주셨다. 서로가 처음 와 보는 그곳에서 시원한 생맥주와 단백질로 꽉 찬 맛난 저녁식사를 나눈다. 코로나로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첫 손주를 오랜만에 만나, 자전거로 국토대장정에 나선 걸 보시며 대견해하시기도 하고 걱정되어 보이시기도 하지만, 너무도 행복해하셔서 그 순간에 감사했다.



많이 먹여야 해서 매 끼니에 꽤 신경을 쓴다. 항상 감정 표현을 아끼지 않는 녀석은 맛있는 음식에 동그랗게 눈을 떴다 지그시 감으며 세상천지에 자기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는 것처럼 표정을 지어 아빠의 맛집 찾기 노력에 화답한다. 그릇에 코를 박은 채 맛있게 먹는 녀석을 바라보자니, 미국에서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닐지 벌써 걱정이다. 그땐 이렇게 쉽게 사 먹이지도 못할 텐데.



낙동강 하굿둑. 긴 자전거 여행 코스의 마지막 종착지이다. 의외로 녀석은 말은 별로 없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자며 까다로운 아빠의 주문에 지쳤지만 멋진 포즈를 취해준다. 부산에 계신 친할아버지 할머니 곁에서 배불리 먹고 휴식을 취한 뒤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자전거를 나눠 싣고 버스에 오른다. 뒤따라오던 녀석의 한마디 "아빠 이번 여행 정말 좋았어. 고마워."


그 녀석의 진심인 것 즈음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한마디에 세상을 얻은 것 같았고 행복했다. 아들에게 배운 게 더 많은 그런 여행이 마무리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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