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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해 왕복 로드 싸이클링

서울-미시령-속초, 강릉-대관령-서울


로드에 입문한 지 이제 만 4년이다. 입문과 함께 구입한 삼백여만 원짜리 로드 자전거로 서울-부산 국토 종주 라이딩, 제주도 일주 라이딩,  4대 강 라이딩, 백두대간 라이딩, 틈 나는 대로 이 땅의 여러 곳을 내달렸다. 코로나로 스포츠센터를 이용하지 못하니, 이젠 서울 남산 라이딩쯤은 동네 뒷산에 오르듯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그것들은 로드 싸이클링이라 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고 여겨질 만큼, 이번 서울-동해 왕복 라이딩은 힘찼고, 빨랐으며, 만큼 긴장감 넘치기도 했다. 



첫째 날, 서울에서 속초


글 마지막에 gpx 파일 있습니다.


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양평에 다다른 다음, 그곳부터는 경강로(6번 국도)와 설악로(44번 국도)를 이용, 미시령로(46번 국도)로 바꿔 탄 후, 미시령 옛길을 만나면 그 길을 따라 미시령 정상을 통과하면 된다. 라이더들이 많이 이용한 루트를 스트라바 히트맵을 참조하여 코스 기획을 했지만, 실제 도로에 오르는 즉시 '이곳을 자전거로 달린다고?' 적잖이 놀라게 된다. 경강로다. 특히, 양평 쪽에 가까울수록 차량이 많고, 미시령에 가까울수록 한적해지긴 하지만, 말이 국도이지 중앙분리대가 있는 고속도로에 가깝다. 시속 80에서 100여 킬로미터로 달리는 차량 옆을, 갓길 경계를 알리는 하얀색 선에 의지한 채 달리다 보면 긴장을 늦출 수도 페달링을 게을리할 수도 없게 된다.


라이딩 내내 번짱(리더)이 되어준 친구 덕택에 라이딩이 성공할 수 있었다.


내가 그 도로를 달리는 운전자였다면 '저런 ㅁㅊ...' 이라며 뇌리를 스치는 생각을 감추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꼬불꼬불 안전한 국도를 찾아 라이딩을 하기엔 너무 멀고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되어, 소위 "껌 사러 간다."라고 하는 서울-속초 싸이클링의 색깔은 사라질 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 지형 특성상 쉽게 짐작되지만, 미시령 정상까지 서울-속초 구간 내내 오르막길이다. 미시령로와 평균 경사 8%인 미시령 옛길을 만나게 되면 백두대간을 넘는 본격적인 업힐 라이딩이 시작되는데, 그 직전까지는 간간히 시원한 내리막 도로를 따라 허벅지 근육을 쉬게 할 틈이 없진 않으나, 크고 작은 업힐을 빠르게 달리는 차량의 흐름을 따르기 위해서는 죽어라 페달링을 해야 한다.


이미 대부분의 교통량은 새로 생기고 확장된 고속도로나 고속국도로 옮겨진 때문에, 과거 한 때 여행자들에게 화려한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했을 법한 휴게소들과 주유소들은 이젠 대부분 관리되지 않는 폐허의 모습이다. 편의점이나 시골 슈퍼마켓이 인접해있을 만큼 작은 도로 역시 아니었기에 시내나 마을을 통과할 때가 아니면 보급이 쉽지 않다.



홍천의 화로구이집에서 든든한 점심으로 에너지를 보충한다. 힘이 많이 드는 여행, 아니 스포츠인만큼, 배고픔을 느끼기 전에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몸에 보충해주어야만 이어갈 수 있다. 식사는 물론이고, 수시로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했다.      


미시령 옛길로 접어드니, 지난 장마와 태풍의 상흔이 역력했다. 길 초입부터 한 사람 지나갈 틈 조차도 남기지 않고 무너져 내린 아름다웠던 그 길은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그렇게 있었다.


아름다운 미시령 옛 길에 대한 이미지가 선명했기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어느덧 붉게 물들어가는 늦은 오후 석양빛만 미시령의 상처를 감싸고 있는 모습에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돌아가기엔 너무 먼 길을 왔기에,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클릿슈즈를 신은 발로 아슬아슬한 중심을 잡으며 속이 다 드러나버린 길의 상처를 넘었다.  



미시령 정상이다. 때맞춰 붉게 물든 석양으로 변한 태양빛이 미시령 비석과 함께, 조명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하는 속초시와 그 앞으로 펼쳐진 동해바다의 극적인 장면을 펼쳐 보인다. 지금까지 올라보았던 스물여 곳의 백두대간 고갯길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면 이곳 미시령을 꼽겠다.


이제 곧 해가 진다. 설악산 울산바위의 비경을 끼고 달리는 미시령 옛길의 다운힐이 남았다. 이 여정의 마지막이라면 너무도 아쉬울 만큼, 서울-속초 구간 경치의 절정을 보여줄 코스이고 내겐 212 킬로미터의 구간 중 아름다움으로는 으뜸이다.



둘째 날, 강릉에서 다시 서울로


속초에서 강릉까지는 콜밴을 이용해서 이동했다. 강릉역 근처 깨끗한 모텔을 하나 골라 그날의 땀과 피곤함을 닦아낸 뒤, 고기와 맥주 한 잔. 그리곤, 침대에 머리를 떨어뜨린 기억 밖엔 없다. 하지만, 너무도 피곤한 탓인지, 이른 새벽잠에서 깨어 다시 잠들지 못했다. 멀뚱해진 눈을 껌뻑이며 걱정스러운 오늘을 시뮬레이션해본다. 몸이 회복될 틈도 없이 연이어지는 장거리 라이딩인 데다 어제 보다는 몇 배는 더 힘들 수밖에 없는 서울까지의 복귀 라이딩임은 물론, 처음부터 10여 킬로미터가 넘는 평균 경사도 6~7% 업힐의 대관령이 있는 날이었기에.


글 마지막에 gpx파일 공유드립니다.


백두대간 라이딩을 몇 군데 경험해본 적이 있어서 크게 당황스럽지는 않았지만, 꽤 긴 업힐에서 너무 빨리 체력을 소진해버리지 않도록 천천히 올랐다. 어차피 대관령은 시작일 뿐이고 220여 킬로미터를 더 라이딩해야 한다. 정상에 도착하니, 대관령의 찬바람에 윈드재킷을 꺼내 입지 않을 수 없었다. 푸짐하게 먹었던 강릉에서의 아침은 이미 다 소화되어버린 탓에 대관령 휴게소의 빵과 커피로 허기를 다시 채운다.



태양빛이 아침 찬 공기를 데워놓기도 전에 꽤 많은 체력을 소모했다. 횡성에서 점심을 계획했지만, 횡성까지는 40여 킬로미터를 남겨둔 면온에 다다랐을 즈음 이미 힘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어제의 쌓인 근육 피로와 아침부터 오른 대관령 업힐, 속사 터널 속의 길고 긴 업힐로 체력소모가 몇 배는 빨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이곳은 소고기의 고장 아니었던가. 주행코스 위에 놓인 면온의 나름 이름난 집일 듯한 한우마을에 들러 양질의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흡입한다.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한 부담만 아니었다면, 맛난 음식과 강원도 여행이 꽤 즐겁고 여유로왔을 터였겠으나, 에너지 보충이라는 다분히 기능적 목적을 수행하다 보니, 그런 생각도 금세 사라져 버린다.


점심 식사를 앞당긴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청태산을 끼고 달리는 청태산로의 영동 제2터널과 영동 제1터널을 만난다. 특히, 영동 제1터널은 그 고도로만 비교하자면 대관령보다 높은데, 영동 제2터널에서 심상치 않은 청태산의 산세를 느꼈다면, 그다음에 이어지는 영동 제1터널까지의 8킬로미터의 길고 긴 업힐이라는 복병은 이번 라이딩에서 대관령에 가려져 예상치 못한 구간이다. 하지만, 라이딩을 마친 후 생각해보면, 경강로로 이어지는 나머지 장시간의 단조로운 스피드 싸이클링에 앞서, 강릉-서울 구간을 좀 더 알찬 레퍼토리로 만들어 주는 스토리다.   


원래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던 횡성에는 3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도착했다. 횡성군내 적당한 편의점을 골라, 이온음료로 수분을 보충하고, 연양갱과 에너지바를 챙긴다. 이곳에서 서울까지는 경강로를 따라 양평을 거쳐 100여 킬로미터 이상을 주행해야 한다. 지금까지 대관령과 청태산 고갯길에서 고생은 했지만, 긴 내리막길들로 특징 지울 수 있는 강릉-서울 구간이다.


내리막을 만나면, 라이딩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빠른 페달링으로 속도를 더욱 높이고 그 운동에너지를 엔진 삼아 언젠가는 만나게 될 내리막 끝의 업힐 혹은 평지에서 힘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복귀 라이딩을 지탱한다.



횡성에서 양평까지는 50여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지만, 미세 내리막 경강로를 따라 한 달음에 양평에 도착한다. 어제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경강로의 고속국도에서는 속도를 올릴 수밖에 없는 도로 상황의 이유가 있기도 했지만, 해가 떨어지기 전에 양평까지만 도착하면, 양평부터 서울까지는 남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달리는 구간이어서 심리적으로도 승리할 수 있는 이점이 분명했으므로 더욱 힘차게 페달링을 했던 것 같다. 정말 원 없이 달렸다. 이젠 고속 국도 라이딩이 익숙해져서인지, 늦지 않게 서울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어제는 간간히 찾아왔던 주저함도 오늘은 없었다.     


양평에서 다시 한번 소고기로 식사를 마친 후, 서울 탄천 합수부까지 마지막 50여 킬로미터를 마무리할 차례. 당연히 근육 피로도 한 몫했지만 심한 안장통까지 찾아와 계속해서 안장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힘든 허벅지 근육을 깨워 댄싱(안장에서 일어나 페달링)을 섞어가며 겨우겨우 팔당을 지나 서울 한강 야경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때까지도 자전거를 타는 그룹 라이더들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서울 외곽에서의 야라(야간 라이딩)도 한강과 팔당댐 근교의 야경을 벗 삼는 좋은 라이딩 코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면 기어서라도 마무리는 하고 싶다.


사실, 횡성에서 대중교통으로 복귀하는 시나리오도 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점심을 나누며 함께 했던 친구들에게 "힘들면 기어서라도 마무리는 하고 싶다."라고 무심코 말했던 기억이 난다. "집에 도착해서 따뜻한 샤워를 할 때 너무도 행복할 것 같다."며 중간에 포기란 없다고 친구들과 나 스스로에게도 미리 못을 박고 싶었던 듯하다.


시작이 있었으니 끝도 있듯 지금은 따뜻한 물에 샤워 중이다. 식탁에는 시원한 맥주도 한 캔 내어놓았다. 누군가 한 번 더 해보자면, '글쎄...'다. 그러나, 로드바이크 라이더라면 한 번 즈음은 도전해 봄직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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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속초 구간

강릉 서울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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