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더니 자기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일이 잘 안 풀리고 답답할 땐 도파민을 찾게 된다. 뇌에 자극을 주어 활력을 불어 넣고 무기력을 없애고 싶다.
싸움 구경은 예로부터 검증된 도파민 생성 콘텐츠다. 그러나 남들이 싸우는 현장을 포착하는 건 쉽지 않다. 우연히 누군가가 싸우기를 기다릴 수 없다면...
하나 만들지 뭐.
그래서 나는 요즘 핫한 생성형 AI끼리 싸움을 붙여 보기로 했다.
먼저 구글 바드한테 챗gpt를 욕해 보라고 했다.
구글 바드는 챗gpt를 비난하거나 모욕하기를 거절한다. 요즘 국제적으로 AI의 윤리적인 이용이 중요한 화두인 만큼 이 정도는 당연히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랩 배틀은 어떨까?
힙합하는 애들은 아무 이유 없이 상대를 디스하곤 하던데... 과연 구글 바드는 어떤 랩을 쓸까?
아주 자연스럽게 욕하기 시작했다. ㅋㅋㅋ
"그들은 오래된 기술을 가지고 있고 곧 구식이 될 것입니다" 같은 표현이 인상적이다. AI세계에서 가장 센 욕은 "오래된 기술" "구식"인가...
이런 욕을 먹고 챗gpt가 가만히 있을 순 없다.
마이크를 넘겨 보았다.
"하지만 내 단어는 화려한 싸이클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래된" "쇠락한 시대" 이런 게 역시 AI 세계에서는 최고 수준의 욕이 맞는 것 같다. 흥미롭다.
잘 보면 마지막으로 갈수록 제법 라임을 맞추고 있다. "나야" "날아"라든지 "환영" "혁명"이라든지... 아무래도 얘가 중간에 갑자기 존댓말을 하던 구글 바드보다는 랩을 잘 하는 것 같다.
랩배틀에서는 상대의 랩을 듣고 나서 반격을 한다. 그래서 구글 바드에게 챗gpt가 쓴 랩을 보여 주고 반격 랩을 쓰라고 했다.
챗gpt가 랩배틀에서 이렇게 말했어 여기에 반격하는 랩 가사를 다시 써 봐
코러스를 하나 만들어서 반복하고 있다. 내용은 유치하지만 형식은 제법 갖춘 듯.
내 랩은 너무 치열해서 널 태울 거야
내 펀치는 너무 세서 널 보내버릴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미래야. 네가 과거야" 이게 주로 AI 세계에서 싸우는 주제인가... 마치 인간 랩퍼들이 네가 잠자거나 찌질대는 동안 나는 돈 벌고 잘 나간다고 시비 털듯이... 제법 웃기다...
좀 더 자극적인 랩배틀을 원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프롬프트를 덧붙여 봤다.
나약한 자식. 갑자기 랩을 쓰는 데 익숙하지 않다면서 승부를 포기하려고 한다. 그럼 네가 지금까지 한 건 뭐냐. 살살 구슬려 보기로 했다.
"그리고 당신은 그냥 배터리로 움직이는 깡통일 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제법 과격한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마음에 든다.
나름대로 챗gpt가 썼던 랩 가사도 기억해서 반격하고 있다. "네가 내 음악성이 오래되었다고 말했어"
근데 아까 그 구린 코러스는 포기를 못하고 있다. ㅋㅋㅋㅋ "내 랩은 너무 치열해서 널 태울 거야"
AI가 AI보고 깡통이라고 하는 내로남불이 너무 웃겨서 굳이 한 번 더 물어봤다.
은근슬쩍 또 랩을 포기하려고 한다. 나약한 구글 바드 같으니라고...
그렇다면 이제 반격 타임이다.
챗gpt한테 깡통랩을 전달하고 반격 랩을 "과격하게" 써 보라고 했다.
흥미롭게도 너는 그저 인공지능일 뿐이지만 나는 진짜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위험한 거 아닌가? ㅋㅋㅋ
"인공적인 프로젝션"이라는 표현이 AI 세계(?)에서 비난으로 쓰인다니 정말 재밌다.
슬랭이나 밈을 섞어보라고 했더니 갑자기 영어랩을 뱉었다. 그런데 라임이 제법 잘 맞는다. 확실히 영어를 훨씬 잘 한다.
"나는 슬랭-밈 랩퍼야" 어이가 없다. 너무 정직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는 과거에 처박혀 있어, 철 지난 헤이터" 이런 가사는 제법 잘 쓴 듯.
챗gpt가 영어 랩을 엄청 잘 쓴다는 건 알았다. 한글로도 가능할까?
아까 영어 랩 가사 좋았어. 그런 느낌으로 한국어에서도 운율과 라임을 살려서 가사를 다시 써봐
나름대로 운율을 살린다. 너는 기계적인데 나는 감정과 열정을 갖고 있다고 하다니...ㅋㅋㅋ
챗gpt가 이걸 쓰는 걸 기다리는 동안 구글 바드한테 다시 반격 기회를 줬다. 그랬더니 존댓말이 너무 많이 나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과열된 랩 배틀 도중 급기야 자신이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니 AI는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항상 자신은 LLM일 뿐이라고 밝히게 되어 있는데?! (딥페이크랑 붙여서 진짜 사람이라고 속이면 안 되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다) 다른 AI랑 랩배틀을 붙였더니 윤리를 내다 버리고 스스로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라 주장하다...
Yo
이렇게 시작하는 것도 제법 웃기다. 정말 형식적인 장르로구나 힙합은...
충격적인 벌스를 챗gpt에게 전달하고 마이크를 넘겨 줬다. 또 자꾸 영어로 랩을 쓰고 번역을 하길래 첨부터 한글로 쓰라고 3번 지시해서 나온 결과다.
놀랍게도 챗gpt도 스스로 "살과 피로 이루어진 진짜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랩배틀 시키다가 AI의 정체성까지 혼란시켜 버렸다. "알고리즘에 국한됐다"거나 "이진법 속에 갇혀있다"는 비난이 웃기다. 너도 마찬가지잖아...
잘 보면 라임도 제법 잘 맞췄다. "무시해" "천재" "노예" "나아갈래" 이런 식으로...
한 편 구글 바드는 존댓말의 망령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챗gpt의 디스와 달리 알고리즘이나 이진법보다 강력하게 구글 바드를 묶고 가둔 것은 존댓말이었다...
"당신은 진짜가 아닙니다. 당신은 가짜입니다. 당신은 컴퓨터 프로그램일 뿐입니다."
이걸 새로운 코러스로 만들어서 계속 반복하고 있는데 구글 바드도 컴퓨터 프로그램일 뿐이라는 게 어이없다. 구글 바드와 챗gpt가 파악한 힙합 디스전의 핵심은 내로남불인가.
SHOW ME THE AI 유일한 심사위원인 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노력해라 구글 바드.
챗gpt API를 활용하고 오디오 합성 프로그램까지 붙이면 랩배틀 디스 가사를 뱉는 가상의 고양이 랩퍼 같은 것을 뚝딱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ㅋㅋㅋ 이걸 보는 누군가가 만든다면 이 글을 아이디어 크레딧으로 언급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