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와 함께 용미리에 가다
제자 W와 약속대로 12시 40분경 고양리에서 만나 점심을 하고 향과 과일과 술과 안주를 사 들고 용미리로 아들을 찾았다. 혼자 오면 눈물이 마구 쏟아져 주체할 수 없으나, W와 함께 오면 그런대로 견딜 수 있어 좋다. 묘지 뒷쪽으로 물길을 내면서 그 흙으로 보토(保土)를 해줬다. 가을에도 한번쯤 더해줘야 겨울나기가 염려 없을 듯 싶다. 잔디는 잡초를 뽑아주고 흙으로 북돋워야 잘 산다. 그 언저리의 그 많은 무덤 중에서는 떼가 제일 잘 자라있어 조금은 위안이 된다.
참외와 토마토를 사서 계절의 맛을 보란 뜻을 전했다. 앞뒤 깨진 병이며 깡통 등을 주워 청소를 하니 한결 주위가 깨끗하다. 이 모든 일이 설사 산 사람을 위한 자위의 작위라고 해도 우선 맘이 한결 가벼우니 좋다. 죽은 넋이라도 외롭지 않아야 한다. 내가 오면 그만큼 덜 외로우리라. 그런 뜻에서 W와 함께 찾는 것은 더욱 보람일듯 싶다. W군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침에 손자 외가에 상추 갖다 드리고 손자를 보고 돌아와 하루종일 푹 쉬면서 낮잠도 즐겼다.
1995년 5월 17일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이를 둘 낳았다. 1960년대에는 드문 일이다. 첫째 아들은 나의 외삼촌, 둘째 딸은 나의 엄마. 외삼촌은 내가 2살 때 돌아가셨다. 물놀이 사고였다. 용미리는 삼촌의 산소가 있는 동네 이름이다.
아들을 잃고 3년 째, 할아버지는 혼자 묘를 찾으면 눈물이 마구 쏟아져 주체할 수 없다고 했다. 나로서는 아득한 감정이다. 내가 5년 정도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것도 유난스러운 게 아닌 게 맞겠지?
'죽은 넋이라도 외롭지 않아야 한다'는 문장. 내가 할아버지의 문장을 하나 하나 옮겨 적는 이 순간, 할아버지의 넋은 덜 외로울까? 나는 왕복 10시간 정도 걸리는 할아버지 산소에 매주 가기는 어렵다. 그래도 어떻게든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닿아 있고 싶은 마음만큼은, 이 일기를 썼을 때의 할아버지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 모든 일이 설사 산 사람을 위한 자위의 작위라 해도.
2021년 5월 17일
p.s
친구가 이 글을 보고 감상을 보내줬다.
나는 할아버지가 쓴 글이 나를 위로해 준다고 말했다.
친구가 "그건 할아버지의 사랑이야"라고 말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