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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한슬 May 18. 2021

2001 05 18

5.18민주화운동기념일

5.18 41주년이라고 국무총리, 김중권 민주당 대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그리고 국회의원 등이 망월동 국립묘지에 모여 분향하고 헌화하고 있다. 그 날 그들은 어디 있었던 사람들인가? 이한동 총리의 기념사가 읽히는 동안, 그대는 그 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고 묻고 싶었다.


불태운 재를 쓸고 마당을 쓸고 현관을 쓸었다. 이제 장미가 모습을 드러낸다. 먼저 넝쿨장미가 소식도 없이 붉은 웃음을 토해내고 다른 장미들도 다투어 피려고 미소를 머금고 있다. 점심을 J원장이 손수 지은 밥으로 함께하다. 습작을 게을리 하지 않는대도 별다른 진전이 없다. 물론 내 생각이지만.


학원에서 조금 일찍 나왔다.


2001년 5월 18일



지난 주부터 골목을 걷다 빨간 넝쿨장미를 여기저기서 만났다. 나는 빨간 넝쿨장미를 보면 그리워진다. 5월이 되면 할아버지 집 담벼락 위에도 활짝 핀 장미가 구불구불 지나갔다.


할아버지는 전라남도 함평 출신이다. 엄마와 외삼촌은 광주, 전주에서 학교를 다녔다. 엄마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어 80학번 신입생이 되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그 해에 5.18민주화항쟁이 일어났다.


가끔 할아버지, 할머니께 그 때 얘기를 들었다. 나는 이름을 잘 모르는 어떤 삼촌이 운동화만 남기고 실종되었다는 이야기. 서울에서는 정말 아무 소식도 알 수 없어서, 광주의 지인들에게 연락이 닿아야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는 이야기. 


TV에 정치인들이 나와 5.18에 대해 한 마디씩 할 때, 주로 할머니가 소리 내어 진정성이 없다든가 님을 위한 행진곡도 무서워서 못 부르는 놈들이 말만 많다는 평가를 하셨고, 할아버지는 별 말씀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셨다. 속으로는 이런 질문을 하고 계셨구나. "그대는 그 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본인 일기인데 '물론 내 생각이지만'이라고 굳이 덧붙이신 게 재미있다. 그야 당연히 할아버지 생각이겠죠... 하긴 갓난아기로 보여도 이상하지 않은 손녀에게 말씀하실 때도 할아버지는 단정적으로 말하거나 자기 의견을 세상의 진리처럼 말한 적이 별로 없었다. "할아버지 생각에는", "내 의견으로는", 자주 덧붙이셨다. 단호하게 말하는 편이라 늘 갈등이 있었던 나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말투. 글을 쓸 때도, 심지어 일기를 쓸 때까지! '습작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부분에 여지를 두신 건지, '별 진전이 없다'는 부분에 다른 가능성을 열어 두신 건지 궁금하다.


2021년 5월 18일


ps.

할아버지가 어떤 학원을 다니셨는지는 모르겠다. 습작이라면 서예일 확률이 높다.


ps2. 

사실 올해가 5.18 41주년이고 저 때는 21주년인데 할아버지가 잘못 쓰신 것 같다. 마치 41주년에 내가 이 일기를 볼 거라는 걸 알 고 있었던 것 같은 우연한 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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