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포 golfo Mar 12. 2020

[성장의 기록] 재수를 한 사람들의 힘.

대학 동기 형 - 그래서 더 진심으로 학교를 대하는 거야.


대학생 새내기였던 15년도의 이야기이다.

당시에 같은 학년 친구들은 놀러 다니느라 바빠서 공부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았었다.

나 또한 성적이 몹시 좋지 않았다.

그 와중에 항상 예습 복습을 꾸준히 하고 거의 모든 과목에서 A+을 받아가는 형이 있었다.

재수해서 우리와 같은 학번으로 들어온 한 살 나이가 더 많은 형이었다.




나는 그 형이 몹시 신기했다.

그래서 애들은 놀러 갈 때 나는 그 형을 쫓아다녔던 적이 있었다.

형에게 공부도 배우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날은 내가 그 형에게 형은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돌아온 형의 대답은 정말 의외였다.

"재수해서 그래."

나는 이 말의 뜻이 재수하면서 공부를 좀 더 다져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형은 뒤에 이어 붙여 말했다.


"대학교에 바로 들어온 사람들은 대학교가 초중고처럼 그냥 당연한 교육의 연장선쯤으로 느껴질 거야.

그런데 재수를 한 사람들은 달라.

재수한 사람들은 대학이라는 게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고 노력해서 힘겹게 얻어낸 성취라는 것을 알아.

그래서 더 진심으로 학교를 대하는 거야."


그 얘기는 아주 충격적이었다.

맞는 말인데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노력하려 해 봐도 좀처럼 학교가 진심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형의 말처럼 그냥 고등학교 다음의 연장선 같았다.

웃긴 얘기지만 사실 형이 좀 부럽기도 했다.

물론 형의 노력을 내가 직접 느껴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일 것이다.




내가 그 말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던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더 지나고 나서였다.

나는 공대에 진학했었지만 나와 맞는 꿈을 찾아 나서기 위해 전공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 그런 선택을 했을 땐 공대에 들였던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아 불안하고 무서웠다.

그러다 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재수한 사람들은 대학이라는 게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고 노력해서 힘겹게 얻어낸 성취라는 것을 알아."


그렇다. 내가 내게 맞는 진로인 줄 알고 선택했던 공대 진학은 실패였다.

그러나 의미 없는 실패는 아니었다.

나는 공대에 한번 들렸다가 다른 진로를 찾았기 때문에,

진로에 있어서 재수생인 것이다.

나는 이후에 내가 고르는 진로들을 정말 진심으로 대할 수 있었다.


내 진로는 또 바뀔지 모른다.

그러나 공대에 진학했던 경험 덕분에,

나는 몇 번이 바뀌더라도 이제 내가 선택하는 모든 방향에

진심과 애정을 갖는다.


나는 공대와 맞지는 않지만, 공대를 사랑하며, 공대에게 감사한다.


20.03.12. 골포.

작가의 이전글 [성장의 기록] 내가 알아야 남도 이해할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