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포 golfo Oct 20. 2019

[그 외 #1] 항공의 보배 동행인들!

항공의 보배 동행인들! - 공너싫 지음

항공의 보배 동행인들! - 공너싫.




  위의 제목은 다름이 아니라 대학교 1학년 시절 들었던 항공우주학개론의 이득순 교수님이 보내신 메일의 일부분이다. 교수님들께 메일로 질문을 하지 않는 편이라 내 메일함에 교수님들의 메일이 있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이득순 교수님의 메일은 꽤 여러 개 있었다.

  이득순 교수님은 강의를 듣는 학생들 전체에게 자주 메일을 보내셨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메일을 정리하지 않고 내버려 둬 메일함 안 어딘가에 파묻혔거나 메일을 읽고 나선 다 지워버렸을 것이다. 나는 다 지워버리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득순 교수님의 메일들은 지우지 않았다.

  이득순 교수님의 메일을 지우지 않았던 건 아마 어린 입장에서 보기에 교수님의 메일 말투가 조금 웃겼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교수님은 항상 메일의 첫 줄에 “항공의 보배 동행인들!”이라는 문구를 쓰셨다. 이 외에도 “항공의 미래, 희망 여러분” 혹은 “동행하는 사람들에게”와 같이 거창한 문구를 쓰셨다. 나는 친구들과 ‘항공의 미래들아, 너네도 메일 봤냐’ 하며 농담을 하곤 했다.


  그 메일들을 다시 본 건 군복학을 한 2학년 1학기 중이었다. 그때의 나는 한참 군대를 다녀왔던 터라 앞부분 내용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아 공부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나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최종 단계인 대학교라는 곳에 와있었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고 외로운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늘 좋은 대우를 받았다. 그때는 선생님들이 우리를 공부시키기 위해 노력하셨고 우리가 무엇을 해도 바른길로 잡아주기 위해 잔소리하고 애썼었다. 그때는 나를 바로잡아주려는 선생님들의 반응 때문에 일부러 말을 안 듣는 척을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커버린 지금의 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선생님들께 그런 좋은 대우를 받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 교수님들도 친구들도 나에게 그리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안다. 물론 충고나 도움은 주겠지만 그 또한 가벼운 선에서다. 기본적으로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계속 도움을 바라면 그 관계는 건전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안다. 내가 또 안 듣는 척을 해버리면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안다.

  게다가 친구들이 좀 늦게 군대에 가버렸기 때문에 아직 복학을 하지 않아 혼자 공부를 해야 했고 물어볼 곳도 도와줄 사람도 없는 그 환경에 나는 자꾸만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는 수많은 경쟁자인 다른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 사이에서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앞으로의 공대의 공부는 혼자 겪어내기엔 너무 높고 무서워만 보였다. 계속 내가 이걸 혼자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떠올랐다.

  그때 듣던 수업 중 팀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 과목이 있었는데 팀원들과 메일을 주고받다가 내 메일이 너무 많이 쌓여있는 것을 보았고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앞에 있던 것들을 전부 지워버리려고 첫 페이지로 넘겼다가 문득, 이득순 교수님이 보내신 메일들을 봤다. ‘아 이거 옛날에 엄청 웃겼던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봐야겠다.’라는 생각에 메일을 클릭한 나는 웃음이 아니라 울컥한 감정을 느꼈다.


  나를 울컥하게 한 것은 동행하는 사람들이라는 문구였다. 1학년 때는 친구들이랑 농담하고 웃었던 그 문구는 사실 이득순 교수님이 우리를 그냥 학생, 그냥 애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교수님과 함께 하는 공동체로 보고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교수님은 우리의 위에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셨다.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으니 나는 혼자다’라는 생각에 빠져있던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은 다들 나와 함께인 것이었다. 우리 학교에 다니면서 항공에 대한 공부를 하는 지금 이 순간 동안은 나는 수많은 우리 학교의 학생들과, 교수님들과 그리고 이득순 교수님과 동행하는 공동체였다.

  교수님은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격려해 주었고 다음 강의 시간에 더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만나자고 우리와의 수업을 기대하는 긍정적인 말씀을 계속해주고 계셨다. 입학 후 처음으로 실시하는 중간고사는 사전에 대강당의 위치를 알아보라는 배려도 묻어있었다.

  그 메일은 나에겐 정말 큰 힘이 되었다. 그냥 저 말이 와닿고 위로가 돼서 힘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저 문구는 내 생각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으며 앞으로의 졸업까지의 과정에 뛰어들어 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저 문구는 나에게 혼자 같아 보여도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옆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다른 학생들이 경쟁자로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나와 한 배를 탄 내 동료였고 내 공동체의 소속원이었다. 우리는 동행인들이었다.

  이젠 메일 정리를 소홀하게 하지 않는다. 두고두고 계속 보고 싶은 메일들을 위하여 필요 없는 메일들은 다 정리한다. 이제는 페이지를 조금만 내려도 이득순 교수님의 메일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난 다시 혼자라는 생각이 들거나 우리는 공동체라는 생각의 힘이 약해질 때면 다시금 이득순 교수님의 메일을 찾아본다.

  이득순 교수님은 나에게 항공우주학개론만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다. 난 이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힘들어하지 않는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는 법을 배웠다.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선 꼭 필요한 부분이다. 이득순 교수님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더라도 상관없다. 내가 그렇게 느꼈고 또 더욱 발전했기에. 나는 나와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의 무언의 격려를 받으며 오늘도 열심히 공부를 한다.

  우리는 모두 항공의 보배, 동행인들이다.


2018.11.03 공너싫.

작가의 이전글 [내생각 #3]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보편적인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