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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Oct 14. 2019

 자신의 의지와 비례하는 행복

<저 청소일 하는데요?> 김예지

<저 청소일 하는데요?>

청소일을 하는 20 여성이라니!(물론 이제는 서른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나는 직업으로써 청소 일이 뭐가 다를까 생각되지만 저자와 비슷한 또래였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젊은 여자가 왜 청소일을 하고 있을까 의아해하며 아파서 쉬는 아빠를 대신해 나온 착한 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준 그 짧은 시선에 주인공은 또다시 위축되고 상념에 빠져 자신의 직업에 대해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서울대 나온 박사가 환경미화원이 되고 해외 유학파가 식당에서 서빙을 본다 하더라도(취직이 힘들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직업일지라도) 직업을 선택한 행위 자체만으로도 박수를 보내야 하는 시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취직의 문턱이 높아 사다리를 놓고도 넘기 힘든 현실에서 부모의 등골을 빼먹는 자식이 되지 않고, 사회의 부조리만 비난하며 청년 백수로 살아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삶은 어차피 다 달라>

오늘 친구가 '너는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한  같아.'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글쎄? 과연 그럴까. 나는 답했다. ' 주잖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면 행복하다는 말은 거짓이다. 좋아하는 일도 일상이 되고 생계를 위한 수단이 된다면 그 또한 자신의 직업일 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작은 급여라도 행복하고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경제적인 여유가 좋아하는 일보다 우선시 되지 않기 때문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주변의 도움을 받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이 잘 되지 않았다. 사회적 이슈들도 있었지만 결국 사회와 나의 눈높이가 달랐을 뿐이다. 눈높이를 맞춰 회사를 선택했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비록 원하던 일은 아니었지만 어느새 통장 잔고를 채워주었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줬다. 더 열심히 일하며 내 직업에 만족했다. 왜? 나의 일상을 책임져 주니까. 


저자 역시 마찬가지다. 청소일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림을 계속해서 그릴 수 있었을까? 심지어 책을 내고 치아 교정을 하고 작업실을 얻을 수 있었을까? 기본이다. 자신의 삶의 기본이 되는 최소한을 스스로 해결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위한 슬기롭고 지혜로운 선택이다.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하는 백수들의 삶은 그들 나름대로 통렬한 사유가 있겠지만 무엇이 자신의 삶을 책임져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어떤 직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직업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선택은 자신의 몫>

이 책은 꽤 인기가 있고 저자 인터뷰도 많고 심지어 일러스트 일감도 생긴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청소일을 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책을 쓴다. 그런 그녀의 선택에 갈채를 보낸다. 그림을 그리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겠지만 아직은, 여전히 청소일을 하며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 그것이 그녀의 정신이 아닐까 한다. 직업이 바뀌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이런 직업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그녀의 의지 있는 선택 말이다. 


직업에 귀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는 않다. 저자의 애필로그에도 있듯 인생은 누구에게나 희로애락이 있다. 그것이 직업 이야기일 수도 있고 가족 이야기일 수도 있다. 엄마의 전폭적인 믿음과 지지로 그녀의 삶은 탄탄해진 듯하다. 청소일이 어때서? 그저 다를 뿐이라는 엄마의 말처럼 인생은 모두 다르고 직업도 다르다. 그것이 무엇이든 당당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할 뿐이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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