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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Oct 29. 2019

단절되지 않은 '나의 마음과 가치'로 치유되는 우울감

<요한 하리>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세계적인 르포 전문기자 베스트셀러 작가 요한 하리는 10대 시절부터 10여 년 넘게 우울증 약을 먹어온 우울증 환자였다. 아무리 약을 먹어도 우울과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 자신을 보며 도대체 호르몬 균형은 항우울제로 맞춰지는 것일까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저자는 ‘우울증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울은 실제가 아닌 허구이며 사치스러운 감정이자 수치심과 나약함의 표본이라고 생각했다.


항우울제를 복용뿐 아니라 우울감을 느끼는 모든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했던 그가 약은 우울증을 치료할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우울과 불안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세계적인 정신의학자, 심리학자, 사회과학자, 우울과 불안을 겪은 후 회복한 사람들 200명 이상을 인터뷰하고 그 이야기를 책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가 3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전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내린 결론은 결국 ‘단절’이었다. 의미 있는 일로부터의 단절, 타인과의 단절, 자연과의 단절, 가치와의 단절, 지지와 존중으로부터의 단절, 안정된 미래로부터 단절된 혼란스러운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서 우울과 불안을 볼 수 있다 말한다.

<단절>

연구비를 받아내야 하는 의사들은 우울증 약의 효과에 대해 양심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미 세로토닌과 우울증 간의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없다는 것이 발견되었음에도 말이다. 저자는 우울은 뇌의 호르몬 분비나 화학적 불균형이 아닌 생물적, 사회적, 심리적 요인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스트레스나 부정적인 사건, 외로움 등은 경제적 상황과 무관하게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우리 모두는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때 희망을 잃는다. 그러나 스트레스나 나쁜 사건이 장기간 지속되면 당신이 얻게 되는 것은 ‘절망의 일반화’다. 이는 기름막처럼 당신 인생 전반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당신은 포기하고 싶어 진다. -p.93-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사회적인 관계가 회복되며 자신이 지금의 삶에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느낄 때 비로소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그는 역설한다. “당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요?”라고 묻는 대신 “당신에게 무슨 문제가 중요하죠?”하고 묻는다면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정부는 토착 민족을 어린아이처럼 취급했고, 부모처럼 이들의 삶을 통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세월 토착 민족은 이러한 접근법에 맞서 싸웠고 자립적인 삶을 다시 세우려 노력했죠."  ... 어떤 부족은 대대로 살아온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았고 그들만의 언어로 되살렸으며 학교와 보건서비스, 경찰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해 스스로 선거를 치르고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어떤 경우에는 자치정부가 퍼스트 네이션 원주민의 조직에 항복해 일정 부분 자유를 내주기도 했다. ... 캐나다 정부의 결정에 휘둘려 여전히 완전한 통제를 당하는 퍼스트 네이션 원주민, 그리고 문화를 재건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해 이들의 관점에서 세계를 세우려 시도하는 다른 토착 민족 간의 커다란 격차가 있다는 의미였다. ...주도권을 많이 쥐고 있는 부족들은 가장 낮은 자살률을 보이는 반면 주도권이 거의 없는 부족들은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p. 217-218)

우울의 원인이 뇌에 있지 않다는 이야기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뇌의 호르몬 불균형이 우울감을 가져온다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해왔다. 항우울제 10여 가지를 먹어보고 효과를 본 하나를 선택해 꾸준히 복용하지만 결국 막대기 효과일 뿐이었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인간이 갖는 우울의 원인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단 말인가. 저자의 말처럼 명쾌하게 '단절'이라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가치로부터의 단절, 관심과 관계로부터의 단절은 분명 우울감을 가져온다. 동물들이 자연에서 동물원으로 옮겨질 때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느끼는 우울감이 엄청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동물과 다르지 않게 모여서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 혼자가 되었을 때, 누군가에게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살아야 하는 인간이 무시당하고 멸시당하며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현실이 우울감을 가져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것이 단절이며 부정할 수 없는 우울의 원인이다.


지뢰로 다리를 잃은 캄보디아 농부가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좌절감에 스트레스로 삶을 포기하려 했지만 새 의족이나 항우울제 대신 젖소를 키우며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울제란 뇌 속 화학물질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바꾸며 환경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이는 삶으로부터의 단절이 우울의 원인이었고 다시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찾으며 우울에서 벗어났다.


우울감은 단절이라 정의한 작가의 정의가 흥미로웠고 끄덕여졌다. 우울감을 느끼는 자신의 마음이 무엇과 단절되었는지 차분히 생각해 본다면 우울 속에 깊이 빠지지 않고 벗어날 방법을 쉬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우리는 우울과 불안감을 자주 느낀다. 지속적이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는 개인화된 사회, 이기적인 마음, 경쟁구도, 부의 가치를 우선하는 시선이 만드는 마음 이리라. 이 책이 왜, 현대사회의 우울과 소외를 지적하는 책이라는 평을 했는지 충분히 이해된다.


우리에게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마음, 그 누군가는 나의 가치를 진정으로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사회가 주어지기를 원한다. 마음의 방향이 순조롭게 향해지지 않을 때 우울감을 느끼고 불안하다. 단절이 아닌 관계 속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마음을 바라볼 수 있다면 현대사회의 우울에서 쉬이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단절되지 않은 나의 마음과, 나의 가치와, 나의 존재의 이유를 찾아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우울증 치료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책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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