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하고 20년 동안 늘 하던 일이니까요."
"대단하시네요. 다른 일은 생각해 본 적 없어요?"
"뭐, 배운 거니까 생각 없이 하다 보니 20년이네요."
그와 첫 만남에서의 대화였다. 20년이면 그 분야의 전문가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짧은 인사 후 업무 설명을 듣는 그의 눈빛에서 왠지 모르게 집중력을 읽을 수 없었다. 얼마간은 나의 착각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업무 진행이 가능하겠냐는 질문에 대수롭지 않게 받아치던 그의 실체를 발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며칠 후 20년 경력자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질문들을 쏟아냈다. 의아해하며 답을 주던 팀 사람들을 향해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다며 투덜거렸다. 다시 며칠이 지나자 자신의 오류를 발견해 내는 사람들을 향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업무는 진척이 없고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다는 항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채 한 달이 되기도 전에 말이다. 도대체 20년의 경력은 언제즘 보여주려나 의아해하기 시작할 즈음 팀 내 A는 단언했다.
한 달 봅니다.
그는 정확히 한 달 보름 만에 함께 일을 못하겠다는 변명을 내던지며 떠나겠다 선언했다. 하던 일은 마무리되지 않았고 절반의 시간을 출퇴근만으로 때우던 그가 아무런 인사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묘하게 비틀어진 사람. 20년의 경력 속 실력은 찾아볼 수 없고 다른 사람을 비난할 줄만 알던 그를 분류하기 위한 표현이다. 실력은 없지만 나이를 경력으로 인정해달라 소리치는 그의 비틀어진 마음. 함께 일하던 사람과는 적을 뒀지만 다른 파트 사람과는 짧은 시간 친해져 점심을 함께하고 커피를 마시며 어울렸다. 업무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팀 내 소소한 소통의 자리에는 어김없이 그가 있었다. 일에서는 아마추어였지만 사담에서는 프로였던 그가 20년을 버틴 힘이 무엇인지 짐작되었다. 그가 떠나고 A는 소리쳤다.
정말 부럽습니다. 저렇게 한 두 달 쉬면서 20년을 버티다니!
대화의 장벽은 높았고 업무 처리하는 방식 또한 이전에 본 적 없는 창의적인 행태를 보였다. 그는 지금 어디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을지 한 번씩 궁금했는데 우연히 다른팀에 앉아 있는 그를 발견했다. 역시 그의 20년 경력의 힘은 소통의 힘, 사담인가???
누군가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남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 위해 살아갈 필요는 없지만 때론 그런 이유들이 자신을 다잡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다시 그를 발견하고 놀란 나는, 나의 실력은 어디에 있는지 되짚어 보게 됐다.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며 다시 일하고 싶은 사람인지, 나의 실력은 예전의 어느 곳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우리가 만난 곳은 사회, 즉 업무를 보기 위함인데 누구처럼 사담으로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묘하게 비틀어진 사람이 되어있지 않은지 말이다.
그를 다시 발견한 날, 흐르는 시간에 나를 태워가지 말자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다. 오늘도 역지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