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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효샘 Apr 09. 2018

요르단  중동지역 한글학교 교사연합세미나

중동 지역 한글학교 선생님 그리고 자따리 난민캠프

요르단 암만-자따리 난민캠프


요르단에 다녀왔다. 일요일 밤 11시 55분에 출국해서 요르단 암만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현지 날짜로 다음날 오전 9시 반이었다. 비행시간만 꼬박 13시간 걸린다. 두바이 공항에서 헤매고 대기한 시간까지 보태면 16시간 남짓 걸렸다.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목요일 저녁이었지만 다음 날 바로 출근했다. 피곤해서 거의 기절 상태였지만 출근해서 일하고 주말엔 구미로 강의 다녀왔다. 살인적인 스케줄이지만 감사했다. 할 일이 있고 작은 재능이나마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건 진정 축복이다. 


중동지역 한글학교 연합 교사세미나다. 요르단 도착해서 점심 먹고 강의 시작한 시각이 오후 3시, 여섯시까지 강의하고 한 시간 저녁 먹고 일곱 시에 다시 모여서 9시까지 강의했다. 한글학교 선생님들의 갈급함이 몸으로 눈빛으로 먼저 전해진다. 강사가 쉬는 것보다 강의가 더 귀한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강의하는 일이 다이다. 한국 시각으로는 새벽 세시였다. 눈이 저절로 감기는데 꾹 참고 진로교육을 강의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9시부터 강의 시작, 저녁 7시 반까지 했다. 중간에 점심 1시간 반 빼면 쉼 없이 강의만 한 셈이다. 


강행군이었다. 진로교육, 역사 수업, 학급경영, 수업개선, 한국어 수업, 책 만들기와 프레지 활용수업까지 했다. 가져간 내 책 열다섯 권과 역사수업 학습지까지 모두 나눠드렸다. 강의하는 데 선생님들이 많이 우셨다. 끝나고서는 강의에 영성이 깃들었다는 말도 해주셨다. 내가 들어본 최고의 찬사였다. 


마지막 날, 출국 전까지 정확하게 네 시간 남았다. 멀고 먼 요르단까지 와서 왜 관광을 하지 않냐고 물어본 이들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강의하러 온 거지, 놀러 온 게 아니예요’라고 답했다. ‘공무원은 국민 세금으로 먹고 사는 사람인데, 강의하러 와서 강의 다 했다고 관광하러 다니면 그건 국민에게 죄 짓는 일’이라고 대답했더니 다들 웃었다. 그런 사람이 어딨냐고. 국회의원도 나오면 다들 놀러 다니는데, 라고 입을 모았다.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은 대한민국, 아직 멀었다. 정말로 아직 멀었다. 


출국 전 네 시간 동안 “자따리 시리아 난민캠프”에 다녀왔다.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70km 떨어진 자따리에는 무려 9만 명의 시리아 난민이 모여 산다. 자따리라는 지역 이름을 따서 “자따리 시리아 난민캠프”라고 부른다. 살면서 시리아 난민을 만날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특히나 남의 나라 일에 관심 없는 대한민국 땅에서 난민, 시리아, IS 테러, 국제 전쟁 같은 단어가 그냥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일 아니던가. 작년 봄 독일에선 난민 정책을 놓고 중학생들이 토론하는 수업을 봤다. 우리는 중학생들이 국제 분쟁에 관심을 갖지 않는데 말이다. 그건 아이들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고민해보고 생각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난민캠프에 태권도 아카데미를 꾸린 요르단 한글학교 선생님들을 만났다. 캠프에서 만나니 너무나 새로웠다. 강의할 때는 내가 앞에 섰지만 난민캠프에선 그들이 앞에 섰다. 경외심마저 느꼈다. 그 먼 이국땅에서 난민 아이들에게 가진 모든 것을 나누고 있는 그들이었다. 그 삶이 어떠할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먼 데서 불어오는 모래 먼지가 시야를 자꾸 흐렸다. 척박한 땅에서 휘날리는 태극기를 보니 한국 아이들이 생각났다. 축복받은 땅, 축복받은 아이들, 전쟁, 고아, 난민과 상관없는 우리 아이들. 때가 되면 비가 내리고 꽃이 피고 습한 바람이 불어오는 대한민국이 몹시 그리웠다. 난민아이들을 태운 트럭은 모래 먼지를 휘날리면서 어딘가로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고를 거듭했다. 아이들은 한국말로 기합을 넣고, 한국말로 인사를 하고, 내 손을 잡으면서 한국말로 ‘고맙습니다’ 라고 말했다. 시리아 난민아이들이 조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면서 태권도를 익히고 있었다. 나는 마음으로 말했다. "미안하다. 그동안 나는 너무나 너희들에게 무심했구나."... 라고. 


어느 순간 보았다. 한국에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대한민국 국기 태권도의 푸른 기상을 말이다. 아이들 눈빛이 희망으로 반짝거리는 것도 보았다. 태권도 사범이 되어 시리아에 돌아가 언젠가 꼭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왜 그렇게 찡했는지 모르겠다. 돌아서는데 그냥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가진 것과 그들이 가진 것의 무게를 비교해보았다. 그들이 유일하게 가진 건 희망 하나. 저울에 올려놓으면 내가 누리는 삶의 무게가 과연 그 희망의 무게보다 무거울까, ... 희망은 언제나 가장 무겁고 가장 힘이 세다. 나는 질 게 뻔하다. 


캠프에서 눈물의 벽을 보았다. 우리가 잊은 것들, 너무 오래 아무렇지 않게 스쳐지나온 것들을 생각했다. 전쟁 난민으로 국제구호를 받던 우리 민족은 그 시절 흘리던 눈물을 잊은지 오래다. 가족을 잃고 비통해하던 통곡도 잊었고, 사랑하는 이가 죽고 다치던 아픔도 잊었다. 그리고 이제는 귀한 것이 귀하지 않은 세상이 돼버렸다. 아아,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 오랜 시간 혼자서만 잘 살아온 건 아닐까. 그러나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 가운데 우리와 관련 없는 것이 있던가. 



우리 선생님들이 보아야 하는데, 그래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하는데, 몹시 안타까웠다.  나 혼자 보고 간다는 게 안타깝고, 교사들이 이런 현실을 직접 보지 못 한다는 게 안타까웠다. 물론 잘 안다. 교사들은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 문제만으로도 충분히 버겁다. 학부모와 수업과 온갖 공문에 시달린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이들을 돕고 그들과 함께 하는 귀한 경험을 우리 모두가 함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미 강의에서 해외교육봉사를 하고 싶으면 연락 달라고 했다. 이미 수많은 강의에서 반복해서 말해왔다. 언젠가 뜻 있는 이들과 함께 교육봉사를 다시 갈 날도 올 것이다. 방명록에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사실은 요르단에 가기 전에 하나님이 이 많은 것을 보여주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궁금했다.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몇 번을 물었다. 이제는 알겠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교사들에게 다리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정말 튼튼하고 단단한 큰 다리가 될 것이다. 많은 이가 밟고 지나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큰 다리가 될 것이다. 반드시 성공하겠다.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걸 나눠주기 위해서 꼭 그래야 한다. 


어제 레바논 선생님 한 분이 메일을 보내왔다. 한글학교 선생님들을 위한 책도 써주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한글학교 선생님들에겐 마치 사막에 내리는 단비 같은 책이 될 거라고 했다. 그래, 다음 책은 그 책이구나,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크고 위대한 일이 글을 쓰는 일이기에 오늘도 내 삶에서 가장 멋진 하루를 보낸다. 감사, 평화, 기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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