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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라떼샷추가 Jan 02. 2024

2023년에 기억하고픈 내 삶

# 일


1월부터 본부장 직책을 맡았다. 경영회의 멤버로서 회사 의사결정 과정에 깊이 참여했다. 신생 본부라 리크루팅에도 많은 고민과 시간을 보냈다. 조직 관리 측면에서 아직은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느꼈다. 작년은 책임이 막중한 자리에서 1년간 버텼다는 점에서 만족해야겠다.


작년에도 출장이 많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인도네시아 보건부 장관과 만나 회사와 제품을 소개했던 일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여러 작은 연결고리들이 있었다. 기획 업무를 할 때에는 구조화된 형태로 큰 틀을 구상하는 일이 중요한 반면, 사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작은 기회들을 적극적으로 연결시켜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영어 사용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백 번은 했을 것 같은데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매번 스크립트를 써보고 몇 번씩 연습을 해야 마음의 안정이 된다. 챗GPT가 문법 교정을 해주는 덕분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언제쯤 영어 사용이 편안해질까. 노력하긴 싫은데 잘하고는 싶다. 하하.


# 가정


아버지가 위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다. 현업에서 은퇴 후 캘리그래피 작가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위암 판정을 받았다. 위 절제 수술 이후에 몸무게가 15kg이 빠졌고 기력이 없어 몇 달 동안 누워만 계셨다.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보니 인생을 즐기기 적절한 때가 따로 있진 않는 듯하다. 삶에서 이루고 싶은 일은 더 이상 뒤로 미루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장인어른이 작년 연말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장인어른은 대학교 졸업 이후에 정부출연연구소에서 38년을 일하셨다. 2년 뒤에 은퇴할 예정이니 한 직장에서 한 직무로 40년을 일하시게 된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을 텐데 한 자리에서 묵묵하게 자기 역할을 해내는 모습이 본이 되었다. 장인어른을 보면서 성실함과 꾸준함이 당장에 티는 나지 않지만, 언젠가는 자신을 빛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 4살이 된 한울이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아이가 되었다. 조금 격하게 표현하면 가끔 버릇도 없고 말도 잘 안 듣는다. 평소에는 차분하게 설명하면 한울이는 내 말을 잘 이해하고 따라준다. 그런데 서로 입장 차이가 커서 협상이 결렬되면 생떼를 피우고 나를 때리기도 한다. 다행히 어린이집에서는 지금까지 짜증 한번 낸 적 없는 천사 같은 사랑둥이라고 한다. 아마 한울이가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이제 한울이에게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을 사용할 때가 왔다.


아내는 결혼 생활 11년 동안 한결같이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다. 올해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마음의 동요 없이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온전히 아내 덕분이다. 아내는 내가 출근길에 집 앞까지 나와 내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준다. 엄마를 보고 자란 한울이 역시 출근하는 아빠를 배웅해 준다. 내년 상반기에 아내의 박사논문 제출이 예정되어 있다. 아내가 나를 응원해 준 것처럼 나 역시 아내에게 큰 힘이 되어줘야겠다.


# 신앙


작년까지 4년 동안 교회 소식지를 만드는 봉사팀의 팀장으로 섬겼다. 취재, 글 잡기, 일러스트, 편집디자인, 인쇄, 사진 등 다양한 역할로 구성된 20명 규모의 봉사팀과 함께 매워 소식지를 발행했다. 팀장을 하는 동안 소식지 발행 횟수는 50회, 발행지면은 약 300페이지, 기사와 일러스트는 약 1,000여 개 정도 된다. 교우님들께 전할 교회 소식과 신앙 수기를 꼼꼼하게 확인하면서 오히려 내 신앙이 깊어졌다. 이제 팀장을 내려놓고 예전처럼 교회 행사를 취재하고 기사로 작성하는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어떤 역할이든 내 신앙의 필요에 따라 인도해 주심을 믿는다.


작년부터 한울이는 혼자 유아부 예배를 드렸다. 한울이는 예배 중 가장 크게 찬양을 부르는 아이라고 한다. 한울이 어린이집 친구들 중에는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이 많다. 주말이 지난 월요일에는 친구들과 교회 다녀온 얘기를 나눈다고 한다. 한 번은 어린이집의 한 친구가 다니는 교회 행사에 한울이를 초대해 줘서 같이 다녀오기도 했다. 한울이는 엄마아빠를 떠나 혼자만의 신앙을 키워나가고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신앙의 길잡이가 되어주어야 하는데, 나는 그럴 자신이 없어 늘 걱정이었다. 한울이는 아빠 외에도 신앙을 같이 나눌 사람들이 주변에 많으니 그 점이 참 감사하다.


# 개인


작년에는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보통 출퇴근 길에 책을 읽는데 작년에는 출퇴근 길마저도 일을 해야 할 정도로 바빴다. 그럼에도 인상 깊게 읽은 책 두 권이 기억에 남는다. 한 권은 한병철의 <서사의 위기> 또 한 권은 로버트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이었다. 책을 읽고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면 확실히 내 사고방식과 행동이 달라짐을 느낀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는 기분이랄까. 경험만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는 어렵다. 사유하지 않는 나는 그저 내게 익숙한 대로 편한 대로 행동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작년에는 글도 많이 쓰지 못했다. 앞에 내용과 이어지는데 사유를 하는 시간이 적으니 쓰고 싶은 말도 별로 없었다. 꾸준히 써오던 한울이 관찰일기도 빠진 날이 많았다. 글을 쓰면 내 주변에 막연히 떠다니던 생각의 실체가 분명히 드러난다. 어지럽혀져 있는 퍼즐조각을 하나씩 맞춰나가는 쾌감을 느낀다. 그런 면에서 내게 글 쓰기는 중독적이다. 못하면 하고 싶다. 참고로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대부분 내가 나 자신을 명료하게 이해하기 위한 목적이지, 다른 누군가를 위해 쓰는 건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 올해 목표 한 가지


내 이야기를 담은 책을 1권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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