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미운 4살을 만만하게 보지 않기를 바란다. 육아 커뮤니티에서 소문으로만 듣던 미운 4살들의 무용담. 지난 1년간 직접 경험해 보니 틀린 말 하나 없었다. 생떼는 기본이고, 바라는 건 많고, 말은 안 듣고, 과격해지고... 내 아들은 다를 거라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아들이 새로 맞춘 안경을 주먹으로 내리쳤을 때에는 순간 '욱'해서 이성을 잃을뻔했다. 아들을 때릴 생각으로 손을 올렸다가 겨우 정신 차렸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평소에 천사 같은 아내마저 4살 아들을 키우는 동안 사나운 공룡처럼 변신한 모습을 몇 번 목격했다. 미운 4살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엄마아빠의 이성을 잃게 만들 수 있는 존재이다.
이 글은 지난 1년간 4살 아들에게 시달렸던 경험을 토대로 대응 전략을 정리한 기록이다. 먼저 4살 아들의 특성을 이해했고, 그에 대한 대응 원칙을 정리했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을 실제 사례에 어떻게 적용했는지, 그 당시 주의했던 사항들은 무엇이었는지를 기록했다. 육아를 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같은 처지의 부모들에 대한 동지애가 생긴다. 이 내용이 오늘도 미운 4살 아이와 한판 전쟁을 치르고 있는 부모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나와 내 아들의 경험을 일반화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된 이름 모를 누군가의 개인적 경험이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아주기도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신기하게도 4살이 되자 아들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졌다. 당시에는 아이의 급격한 변화가 당황스러워서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 정리할 겨를도 없었다. 이제 한숨 돌린 시점에서 돌이켜 보니 아래와 같은 5가지 변화들로 요약할 수 있다.
1) 요구가 많아졌다.
내 아들은 4살이 되면서 말문이 트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거 해줘!" "저거 하자!" "이거 좋아" "저거 싫어" 등 본인이 원하는 요구 사항을 말로 표현하게 되었다. 재밌는 건 자기 말이 엄마아빠를 통해 현실로 이뤄지는 걸 경험하면서 더 많은 요구 사항을 빗발같이 쏟아냈다는 점이다. "빛이 있으라" 명령 하나로 빛을 만든 신이라도 된 것처럼, 엄마아빠에게 무리한 요구도 서슴지 않게 되었다.
2) 변덕스러워졌다.
아들의 요구가 많아진 건 사실이지만,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불과 10분 사이에도 선호가 180도 바뀌기도 했다. 일례로 놀이공원 가고 싶다고 해서 막상 데려다 놨더니, 자기는 축구하고 싶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기도 했다. 아마도 그저 그때그때 기분 내키는 대로 즉흥적으로 요구를 쏟아냈던 것 같다. 아들을 존중해 주기 위해 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항상 물어봐 줬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들어줬다가 낭패를 봤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3) 거짓말을 시작했다.
아들의 인지 능력과 언어 능력이 발달하면서 '거짓말'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은 엄마아빠를 상대로 원하는 걸 얻기 위한 수단이 몇 가지 없었다. 울거나, 웃거나, 화내거나, 떼쓰거나. 이전에는 그래도 순수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게 된 이후부터는 불순한 의도가 느껴졌다. 자기가 원하는 걸 달성하기 위해서는 엄마아빠를 속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도 말이다. 일례로 입가에 초콜릿을 다 묻혀 놓고는 아직 간식 안 먹었다고 우기는 식이다. 물론 아직 거짓말이 상당히 어설퍼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4) 듣고 싶은 말만 들었다.
어떤 얘기를 여러 번 해도 아들한테 무시당하는 경험이 많아졌다. 특히 "손 씻어라" "밥 먹어라" "준비해라" "자러 가자" "정리해야지" 같은 아들이 잔소리로 느낄 만한 행동들을 요구했을 때에 그랬다. 아들이 놀이하는 집중력이 너무 좋아서 그런가 싶다가도, "간식 먹자"라는 말은 귀신처럼 알아듣고 달려오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여러 감정이 교차하곤 했다. 그저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었던 것 같다. 꼭 화를 내야 듣는 시늉을 하는 아들을 대하며, 답답하고 화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게 일상이었다.
5) 폭력적으로 변했다.
아들이 4살이 되면서 키도 커지고 살도 붙으면서 힘자랑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축구 같은 운동, 태권도 같은 무술, 적을 무찌르는 만화 등을 접하면서 '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나와도 싸움놀이, 전쟁놀이 같이 몸 쓰는 놀이를 주로 하게 되었으며, 힘으로 아빠를 이겼을 때 상당한 기쁨을 표현했다. 문제는 감정이 격양되는 상황에서 몸이 먼저 반응하고, 폭력으로 분풀이를 하려는 경우도 많아졌다는 점이었다. 이전에는 아이 훈육을 위한 체벌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4살 시기를 거치며 그 생각이 180도 바뀌게 되었다.
4살 시절 내가 경험한 아들은 이처럼 5가지 변화를 보였다. ▲ 요구가 많고 ▲ 변덕스럽고 ▲ 거짓말을 하고 ▲ 듣고 싶은 말만 듣고 ▲ 폭력적이기까지 했다. 만약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런 사람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자식인걸. 잘 이해하고 품어줘야지 별 수 있나.
아들의 변화에 맞춰 나 역시 아들을 대하는 방식을 바꿔나갔다. 상대방의 행동에 따라서 최선의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전략의 기본이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당시에는 회사 일과 육아로 정신이 없었을 때라 육아 관련 서적을 찾아볼 생각을 하진 못했다는 점이다. 그저 내가 살아온 경험에 기반해서 원칙을 세우고 행동으로 옮겼었다. 그럼에도 나름 효과를 봤던 5가지 대응 원칙을 소개한다.
1) 최소한의 요구 사항만 들어줬다.
아들이 무차별적인 요구 사항을 쏟아내는 상황에서 나는 정반대 전략을 취했다. 과도하다 생각될 정도로 아들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주지 않았고, 한 가지를 얻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행동한 가장 큰 이유는 '부모가 네 요구를 들어주는 건 당연하게 아니다.'라는 걸 인지시키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자신의 요구가 실현되었을 때 더 기쁨을 느낄 수 있고, 부모에게도 더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아들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줬다면, 이 시기의 아들은 점점 더 많은 비상식적인 요구를 쏟아냈을 게 뻔하다.
2) 컨디션 좋은 상태로 유지했다.
아들이 변덕을 부렸던 상황을 돌이켜 보면 본질적으로 그 원인은 셋 중 하나였다. 배가 고팠거나, 졸렸거나, 흥미를 잃었거나. 셋 중 하나가 충족되지 못하면 아들은 어딘가 불편해했고, 그 불편함이 변덕과 심통으로 이어졌다. 그걸 깨달은 후로는 아들의 컨디션을 늘 괜찮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내 아들은 특히 졸릴 때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재우는 노하우를 터득하기 위해 공을 들였었다. 그 덕분에 아들과 단둘이 며칠간 여행을 다녀와도 무리가 되지 않도록 아들의 컨디션을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3) 잘못된 행동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아들이 폭력을 사용하거나, 억지를 부리거나, 떼를 쓰는 등 행동을 할 때에는 그 어떤 요구도 받아주지 않았다. 내가 그 요구 사항을 들어주게 된다면, 아들 입장에서는 잘못된 행동을 하나의 성공방식처럼 받아들일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인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거짓말도 서슴지 않은 시기라는 점을 생각하면 한 두 번의 타협마저도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아이가 먼저 약속을 하거나, 거래를 제안하거나, 설득을 하려는 등 성숙한 행동을 보인 경우에는 요구한 것 이상으로 보상을 주곤 했다.
4) 경험으로 배우도록 도와줬다.
아들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등 들리지도 않을 말을 하며 감정을 상하기보다는, 엄마아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줬다. 직접 경험해 봐야 더 직관적으로 깨닫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일례로 "계단에서 뛰지 마. 다쳐!"라는 말을 반복하기보다는 계단에서 뛰면서 넘어져 보도록 했고, 또한 "늦기 전에 옷 입어라"라는 말을 반복하기보다는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아들을 두고 집을 나왔다. 그렇게 하니 내가 굳이 말을 반복하는 횟수가 훨씬 줄었다. 물론 이 경우에는 아이가 크게 다치지 않고 혼란스러워하지 않도록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중요했다.
5) 행한 대로 돌려줬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들이 폭력을 쓰면 그에 상응하는 체벌을 했다. 그리고 아들이 폭력을 사용하려고 하면 힘으로 제압했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폭력 만큼은 더 큰 아픔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해야 아들이 힘자랑을 아무 곳에서나 쉽게 하지 않고, 설령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더라도 폭력을 사용하기 조심스러워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체벌을 하거나 힘을 쓸 때에는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이상으로 4살 남자아이를 대하는 부모들의 5가지 원칙을 정리했다. 위 원칙들이 4살 아이와 마주하는 모든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4살 아이를 키운 경험을 가진 아빠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 있게 글로 적을 수 있는 이유는 적어도 내가 경험에서는 위 원칙들이 나름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뒤에서는 실제 사례를 통해 위 원칙들을 어떻게 적용했는지 조금 더 살펴보고자 한다.
4살 아들을 키우면서 떠올리기 싫은 에피소드들이 많았다. 당시에는 심각한 상황들도 많았는데 몇 달 지나고 보니 그 마저도 다 추억처럼 다가온다. 아래 3가지 사례는 많은 부모들이 겪을 만한 상황 중에서 내가 직접 경험한 내용을 각색하여 구성했다. 어떤 원칙들이 어떤 지점에서 영향을 받았는지도 표시해 두었으니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1) 식당에서 수저 던지며 난동을 피우다.
상황 사례
4살 아들 : "그거 내가 먹고 싶었는데 아빠가 먹으면 어떻게 하냐?"
(울음을 터뜨리며 들고 있던 숟가락을 던진다.)
(게다가 분이 안 풀리는지 옆에 있는 엄마를 때린다.)
엄마 : "아앗! 아파~ 그만해!"
(휘두른 주먹에 입술과 어깨를 맞았다.)
4살 아들 : "이거 음식 원래대로 해 놓으란 말이야!"
이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일본 가정식 음식점이었는데 내가 롤초밥 하나 먹었다고 아이가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유는 자기가 먹고 싶었는데 아빠가 먹었다는 것이었다. 아직 롤초밥도 많이 남았었던 터라 어이가 없었지만 4살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난동은 점차 심해졌다. 분을 이기지 못해서 숟가락도 던져버리고 옆에 있는 엄마도 때렸다. 울면서 "초밥 다시 돌려놔"라고 소리 지르는 건 귀여워 보일 정도였으니. 크지 않은 식당이었던지라 옆에서 식사하는 손님들한테도 엄청난 민폐를 끼치고 있었다. 당시 상황은 도저히 대화로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대응 방법
a) 먼저 난동 피우는 아들을 들쳐 엎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아무도 없는 골목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아내한테는 따라 나오지 말라고 했다. 아이를 혼내거나 체벌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이가 아빠 외에 다른 사람에게 기댈 곳이 없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었다.
b) 폭력을 쓰면 체벌을 하겠다며 경고를 했다. 아들을 식당 밖에 내려놓자 내게도 주먹질과 발차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번 맞아주다가 "지금부터 3번만 더 아빠를 때리면, 아빠도 엉덩이 1대를 때릴 거야"라고 경고를 했다. 아들은 그 말에 움찔했지만 폭력을 멈추진 않았다.
c) 경고에도 폭력이 이어지자 체벌을 했다. 아들은 결국 3번을 넘게 나를 때렸다. 나 역시 경고한 대로 아들 엉덩이를 때렸다. 아들은 아프다며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나를 때리려고 하자, 다시 한번 같은 경고를 했다. 그제야 아들은 폭력을 멈췄다. (5번째 원칙 - 행한 대로 돌려줬다.)
d) 이제 아들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아들은 혼자서 진정해 노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내게 안아달라고 했다. 아들은 내 품에 안기자 점차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그사이 아무리 피곤하고 속상해도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는 점을 알려줬다.
e) 잘못한 일에 대해 사과를 하도록 도와줬다. 아들이 울음을 그치자 무릎을 굽히고 아들과 얼굴을 마주 보고 섰다. "엄마한테 사과할 수 있어?"라고 물었다. 다행히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식당으로 돌아간 아들은 엄마에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손님들에게도 '죄송합니다.'라며 사과를 했다.
f) 난동 피운 이유를 굳이 묻지는 않았다. 과거에 비슷한 사례가 몇 번 더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들에게 왜 그랬는지 이유를 물었는데 본인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계속 이유를 묻다 보면 다그치고 혼내는 분위기가 될 것 같았다. 이유는 몰라도 괜찮았다. 일단 아들의 행동을 멈추고 잘못을 바로 잡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뭐 나중에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상황 사례
(아들이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고 있다.)
아빠 : "이제 그만 보자. 시간 다 되었어."
4살 아들 : "이거 영상 한 번만 더 볼래!"
아빠 : "안 돼. 약속은 지켜야지. 휴대폰 줘"
4살 아들 : "한 번만 더 볼게!!!!!!! 제발~~"
(아들은 휴대폰을 뒤로 숨긴다.)
아빠 : "얼른 휴대폰 이리 줘"
4살 아들 : "싫어~~~ 으앙~~~~~"
아들에게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 영상을 보여줬다. 평소에는 TV도 영상도 볼 일이 없어서 휴대폰을 준 채로 내버려 두고 있었는데, 아들은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록 휴대폰을 놓을 생각을 안 했다. 휴대폰을 달라고 하자 "한 번만 더"를 외치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이미 "한 번만 더"라는 약속을 믿고 2번 더 기회를 줬었다. "한 번만 더"라는 아들의 말은 약속이기보다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수사적인 표현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다. 아들이 하고 싶어 하는 건 이해하지만 3번 같은 약속을 어기는 일은 용납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같이 축구를 하러 가기로 약속한 시간도 다가오고 있었다.
대응 방법
a) 떼를 쓰는 아들에게 선택지를 줬다. '3분 영상 한 번 더 보기'와 '밖에서 아빠랑 1시간 동안 축구하기' 중에 선택하는 걸로. 만약 아들이 영상 보기를 선택하면 아들은 아빠와의 축구 놀이를 포기해야 했다. 이 같은 제안을 한 목적은 아이는 생떼를 부리고 부모는 안 된다며 실랑이를 해야 하는 상황을, 아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상황으로 바꾸기 위함이었다. (1번째 원칙 - 최소한의 요구만을 들어줬다.)
b) 미리 시간을 정해두고 아들의 선택을 기다렸다. 내가 원하는 선택이 있었지만 굳이 아들을 설득하거나 회유하지 않았다. 다만 선택을 위해 고민하는 아들의 질문에는 친절하게 답변을 해줬다. 아들은 "진짜 축구 안 해줄 거야?" "영상 한 번 더 보고, 축구하러 가면 안 돼?"와 같이 선택의 프레임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바꾸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c) 대신 아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아들은 고민 끝에 영상 보기 대신에 축구 놀이를 선택했다. 축구 놀이를 준비하면서 아들은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굳이 내가 소리 지르며 아들에게 휴대폰을 뺏을 필요는 없었다. 만약 아들이 영상 보기를 선택했다면 그 선택을 존중했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축구 놀이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4번째 원칙 - 경험으로 배우도록 도와줬다.)
d) 만약 아들이 고집을 피웠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손해를 감당해야 함을 알려주려고 했다. 고집도 나름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아들이 내 바람과는 다르게 휴대폰 영상을 계속 보려고 했으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점점 추가하려고 했다. 축구 외에 다른 놀이 계획도 취소한다든지, 엄마하고 같이 잘 수 없다라든지 등 아이가 기대하는 것들을 말이다.
e) 참고로 화를 내거나 힘으로 해결하지 않으려 했다. 상황을 가장 빠르게 해결하는 방법은 무섭게 화를 내거나 힘으로 휴대폰을 뺏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아들이 바라보는 아빠는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는 사람'으로 각인될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아들이 바라는 걸 못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바라는 걸 같이 찾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상황 사례
아빠 : "어린이집 가야 하니까 옷 입자~"
4살 아들 : "안 입어! 오늘 어린이집 안 갈래!"
아빠 : "오늘 친구들 안 보고 싶어?"
4살 아들 : "응. 안 보고 싶어!"
아빠 : "오늘 태권도하는 날인데?"
4살 아들 : "태권도도 싫어!"
잠을 부족했던 탓일까. 유독 이날은 아들의 기분이 안 좋았다. 어린이집에 갈 준비를 하자고 해도 싫다고 하고, 밥 먹자고 해도 싫다고 하고 뭔가에 심통이 났다. 아들이 좋아하는 활동으로 마음을 움직여보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억지로 옷을 입혀주려고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아쉬운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대응 방법
a) 우선 아들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달달한 간식과 음료를 챙겨줬다. 아들은 모든 걸 싫다고 대답했지만 달달한 주스만은 예외였다. 주스를 받아 마시자 기분이 조금 좋아진 것처럼 보였다. 눈치를 보며 다시 한번 어린이집에 갈 준비를 하자고 권유를 했다. 그렇지만 아들은 다시 정색을 하며 "싫어!"를 외쳤다. 1차 시도 실패. (2번째 원칙 - 컨디션 좋은 상태로 유지했다.)
b) 이어서 아들의 흥미를 돋우는 게임을 제안했다. 시간이 지연되자 나도 마음이 급해졌다. 아들이 옷 입고 준비하는 일에 흥미를 돋우기 위해 '옷 빨리 입기 시합'을 제안했다. 아들의 경쟁심을 자극하기 위해 입으로 '슉슉' '아이코 양말만 심으면 되네' '오늘도 내가 일등인가?'라는 말을 하며 일부러 빠르게 움직이는 척을 했다. 평소라면 이 게임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참여했을 아들인데, 당시에는 뭔가 심통이 단단히 났던 모양이었다. 나갈 준비는커녕 책만 읽고 있었다. 2차 시도 역시 실패.
c) 마지막으로 심통을 부린 결과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지게 될지를 설명해 줬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아들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아빠 준비 다 하면 바로 나갈 거야. 그러면 너는 혼자 어린이집에 가야 해!" 집에 있던 엄마에게도 눈빛으로 협조를 요청했다. 엄마는 "맞아. 오늘 엄마는 도서관 갈 거라 어린이집에 못 데려다줘"라며 분위기를 몰아갔다. 아들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듯 "헉!" 소리를 내면서 옷을 찾기 시작했다.
d) 그리고 설명한 대로 실행에 옮겼다. 아들이 허둥지둥 대는 사이 나는 나갈 채비를 완료했고, 아들에게 최후통첩을 보낸 것처럼 먼저 집을 나갔다. 1분 정도 문 앞에 있다가 다시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아들에게는 '진짜로 아빠가 나를 두고 혼자 나가는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줄 목적이었다. 아들은 아직 엄마아빠와 떨어져 있는 걸 두려워하는 걸 알고 있었다.
e) 아들이 당황한 사이에 주도권을 뺏어 왔다. 집 문이 닫히자 집에 혼자 남게 된 아들은 당황해했다. 아들은 서둘러 옷을 마저 입고 울먹이며 밖으로 뛰어나왔다. 티셔츠와 바지는 앞뒤를 거꾸로 입었고 양말과 신발도 안 신은 상태였다. 이 정도면 됐다 싶어 다시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 옷을 제대로 입혔다. 아들은 이제 심통을 부리기보다는 아빠 품에 안겨 있고 싶어 했다. 그렇게 아들을 데리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4번째 원칙 - 경험으로 배우도록 도와줬다.)
사실 4살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4살 된 아이들이 부모들을 고생시킨다고 해서 '밉다'라는 꼬리표가 붙었지만, 아이들은 그저 발달 단계대로 잘 크고 있을 뿐이다. 나 역시 통제불능 아들이 미울 때가 있었다. 돌이켜 보면 아빠인 내가 아들의 발달 속도에 맞춰 양육 방식을 적절히 바꾸지 못했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일 뿐이었다. 아들에게 미운 4살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 전에, 아들에게 일어난 변화들을 적극적으로 이해해 줬다면 더 좋은 아빠가 되어줬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기특한 4살,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전략적으로 대응하자. 육아를 하면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육아는 10년 이상 지속되는 장기전인 동시에, 어느 한순간도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없다. 아이 행동에 대한 나름의 원칙을 세워두지 않으면 아무래도 즉흥적이고 감정적으로 아이의 행동에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한 순간의 실수로 아이가 부모에 대한 신뢰를 잃거나 불필요한 마음의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느 부모가 아이 마음에 상처 주고 싶겠는가. 오히려 사랑하는 만큼 더 잘해주고 싶지.
아이의 변화를 이해하고 원칙을 세우는 시간을 가져보자. 4살부터는 부모도 아이들도 바빠지는 시기이다. 한글/영어 가르치랴, 운동시키랴, 미술 배우랴, 놀러 다니랴. 어른들은 그대로지만 아이들은 시시각각 성장하는 존재이다. 가끔씩은 엄마아빠들이 일상에서 한발 물러나서 아이가 겪는 변화를 확인하고 정리해 볼 필요도 있다. 유아 발달 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와 정보들도 물론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내 아이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주가 아닌가. 내 아이가 겪는 변화는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엄마아빠만이 알아봐 줄 수 있다.
이 글이 육아 동지들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오늘도 소중한 생명을 키우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든 엄마아빠들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