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무게를 재보니 4kg이 빠졌다.
"엥? 왜 빠졌지? 2주 만에?"
의아하면서도 놀랐다.
어쩐지 요즘 몸이 가볍더라니...
빠진 이유는 모르겠지만
줄어든 몸무게를 보고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살 빼기는 현대인들의 평생 숙제 아닌가.
나 역시 회사를 다니는 동안 살이 꾸준히 쪄왔다.
늘어나는 연차만큼 몸무게와 뱃살도 늘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사람들은 "살쪘네?"라는 말을
반가운 인사처럼 할 정도였으니.
한 달 만에 만난 사람에게도
같은 인사를 받았던 건 충격이었지만.
회사 다니면서 살이 찐 이유가 있었다.
회의하다 당 떨어져서 초콜릿 한 입,
화창한 날씨에 매콤한 쭈꾸미 볶음 한 그릇,
나른한 오후에 최애 음료 녹차라떼 한 잔,
축하할 날에는 동료들과 소고기 회식,
지친 날에는 혼자 순댓국에 소주 한 잔.
업무 스트레스는 곧 음식으로 연결되었다.
아기가 귀여움의 상징처럼 젖살을 품듯이
스트레스받은 직장인의 상징처럼 살이 올랐다.
이걸 원한 건 아니었어
휴직하고 빠진 건 스트레스살이었나 보다.
휴직을 하니 먹는 음식이 좀 단순해졌다.
점심은 간단한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저녁은 집에서 가족들과 먹고 있다.
하루 중 크게 감정 동요할 일이 없으니
간식도 술도 먹을 일이 거의 없게 되었다.
요즘 날씨도 좋아서 자전거도 타고
먼 거리를 산책 삼아 걷고 오기도 한다.
한울이와 같이 축구도 자주 하고.
휴직하고 건강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불과 2주 만에 달라진 내 모습.
요즘 거울을 볼 때마다 나도 깜짝 놀란다.
배가 많이 들어가서 옷맵시가 살아나고
숨어 있던 턱뼈의 위치가 보이고 있다.
장난꾸러기 아내도 살 빠진 나를 놀린다.
"어? 여기 있던 배 어디 갔어?"
"조심해~ 턱선에 베어서 상처 나겠어"
그런 장난에 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살 빠진 것 그 자체로 좋기보다는
조금씩 건강해지는 것 같아서 좋다.
아내는 입버릇처럼 "건강해야 해!"
"우리 오래오래 같이 살자!"라며
항상 내 건강을 걱정해 줬었다.
회사 다닐 때에는 몰랐지만 돌이켜 보면
스트레스 높은 환경에서 지냈던 것 같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일을 할 정도로 몰입했고
매년 해외출장도 8~10개국씩 돌아다녔다.
직장에 다니면서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스트레스로 큰 병을 얻은 선배들이 여럿 봤었다.
안타까웠던 건 회사는 물론 다른 누구도
그 선배의 병을 책임져 주지 않았다는 점.
병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그 선배들의 몫이었다.
직장 생활에서 스트레스는 당연하지만
건강을 해칠 정도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육아휴직이 내 삶의 중요한 쉼표가 되어 주었다.
일을 쉬지 않았다면 나도 건강을 해쳤을 것 같다.
그랬으면 아내가 가장 많이 슬퍼했겠지.
나 역시 좌절과 후회의 삶을 보냈을 테고.
육아휴직 이유는 아내의 건강 때문이었지만,
지나쳤던 삶의 의미들을 마주치고 있다.
이러다가 행복해질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가『수사학』에서 언급한
행복한 삶을 위한 8가지 항목이 있다.
'건강한 신체' '안정된 마음' '뛰어난 능력'
'풍족한 재산' '화목한 가정' '절친한 친구'
'따뜻한 배려' '사회적 명성'
휴직 전후로 나 자신을 비교해 보면
이전에 소홀했던 부분이 상당 부분 채워졌다.
행복의 구성요소와 휴직 전후에 대한 내 상태 비교 (왼쪽: 휴직 전 -> 오른쪽: 휴직 후)
열심히 살아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달리기 때문은 아닐까?
많은 사람들에게 열심히 사는 이유를 물으면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답변할 것 같다.
그렇지만 정작 행복한 사람은 찾기 어렵다.
게다가 오히려 열심히 사는 사람일수록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은 특정 목표를 위해서
행복의 다른 요소들을 소홀하기 때문이겠지.
예를 들어 돈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든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무엇을 더 가질까?'보다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다.
행복은 삶의 중요한 요소들에서
결핍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렇다.
내게 육아휴직은 놓치고 있던 삶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 준 기회이자 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