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투쟁 #승리
"엄마보다 아빠가 더 좋아!"
한울이한테 이 말을 한 번 들어보고 싶었다.
한울이를 만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아빠로서 아이한테 잘해 준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엄마가 쌓아 놓은 사랑은 견고했다.
'이 생명을 사랑하겠구나'
한울이를 처음 만났을 때
사랑에 빠진 걸 직감했다.
한울이가 태어나고 몇 달 동안은
길에서 만나는 어떤 사람을 봐도
한울이 얼굴이 보일 정도였으니까.
콩깍지가 씌워도 단단히 씌었던 거지.
아내를 한창 쫓아다닐 때도
이 정도로 빠지진 않았었는데...
나는 아직도 한울이를 사랑한다.
(아내 다음으로)
한울이와 나의 관계를 가로막는
강력한 경쟁자는 아내이자 한울이 엄마다.
아내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맞지만
한울이가 태어나면서 한울이의 애정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내는 한울이에게 헌신적이다. 나와 다르게.
나는 잠잘 때 추우면 한울이 이불도 뺏어 덮는다.
반면 아내는 밤새 떠는 한이 있더라도
한울이에게 자기 이불마저도 내어준다.
하긴 10달 동안 한 몸처럼 키웠으니까...
하긴 18개월이 되도록 젖을 먹여 키웠으니까...
아이를 대하는 애틋함이 나와는 다르겠지.
이런 게 바로 모성애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내가 부럽다.
한울이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으니까.
한울이는 나랑 한참 재밌게 놀다가도
서럽거나, 기쁘거나, 졸리거나, 슬프거나 하면
옆에 있는 내가 아니라 엄마를 찾는다.
엄마가 올 수 없는 상황이라
내가 옆에서 좀 있어 주려고 하면
갑자기 정색하며 날 째려보기도 한다.
'엄마 보고 싶어서 부르는 건데
눈치 없이 왜 아빠가 끼어들어?'
라는 표정이었달까.
잠잘 때도 엄마하고만 자려고 하고.
엄마하고만 팔베개하고... 손 잡고...
말은 안 했지만 그런 행동에 내심 서운했다.
나 혼자만 가슴 아픈 사랑을 하는 것 같아서.
요즘은 한울이와 부쩍 친해졌다.
한울이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늘은 덕분이다.
아내가 이번에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어서
도서관에 갔다가 밤 11시나 되어야 집에 온다.
그 사이 나는 한울이를 어린이집에서 하원시키고
같이 저녁 먹고 놀이하고 샤워하고 재운다.
예전에는 놀이 친구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생활 공동체가 된 느낌이랄까.
아내가 하던 일을 이제 내가 받아서 하고 있다.
한울이도 엄마가 눈앞에 자주 없으니
점점 아빠인 나를 의지하는 게 느껴진다.
"아빠~ 이리 와줘. 코가 간지러워"
그저께 늦은 밤, 거실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한울이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던 걸 멈추고 서둘러 방에 들어가 보니
한울이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날이 건조해서 코가 좀 불편했던 것 같은데
아마 잠꼬대를 한 것 같기도 했다.
한울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방에서 공부하던 아내도 달려왔다.
달려온 아내를 보며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나 봐"
"이제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부르잖아!"
"하하하하하하"라며 말했다.
내 말에 아내는 "아니거든!"
"한울이는 날 더 좋아하거든!"이라며
내 주장을 애써 부정하려 했다.
그럴수록 한울이를 둘러싼 애정 투쟁에서
내가 한 발 앞서 나가는 것 같았다.
한울이 애정을 독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경쟁자인 아내는 박사논문 쓰느라 정신없고
나는 육아휴직을 하고 있으니
이제 누가 봐도 한울이 주양육자는 나였다.
공부하는 아내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한울이와 둘만의 여행도 다녀와야겠다.
10월에 일본 도쿄부터 시작해 볼까?
"엄마보다 아빠가 더 좋아!"라는 말을
휴직 기간 중에는 들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자신감 뿜뿜.
육아휴직 만세다!
한울이와 쌓아 갈 추억이 기대가 된다.
그리고 그동안 고생한 아내에게
마음껏 공부하고 사람들을 만나도록
시간을 줄 수 있게 된 것도 물론 기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시기를
한울이와 아내와 잘 만들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