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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라떼샷추가 Nov 05. 2024

육아휴직의 꽃, 어린이집 등하원

모험과 낭만이 가득

육아휴직을 하면 가장 좋은 점,

한 가지를 꼽으라면 단연코

어린이집 등하원이라 하겠다.


내 아이가 가는 길을

배웅하고 마중 나가는

그 짧은 시간이 주는

어떤 특별함이 존재한다.


곧 헤어져야 한다는 아쉬움과

이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반가움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애틋함것이다.


겨울철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맛있게 익어가는 황태와 같이,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며

정서적 교감이 끈끈해진달까.




# 모험 가득한 등원길


한울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다.

마을버스를 타면 금방 도착하지만

등원할 때는 주로 걷는 편이다.

오늘은 어떤 재미난 에피소드가

생길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초록빛 상수리나뭇잎이 울창하던

여름 어느 날, 한울이는

어린이집에 '날아' 가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슬릭백! 슬릭백!"을 외쳤다.

그러면서 갯벌 위를 옆으로 걷는 게처럼

짧은 다리로 빨간 보도블록 위를 내달렸다.


한울 : "아빠~ 한울이 발에 땅 안 닿지?"

한울 : "아빠~ 한울이 잘하지 않아?"

한울 : "슬릭백! 슬릭백!"

아빠 : "우와... 잘하네..."

한울 : "뭐 해? 아빠도 같이 해야지!"

아빠 : "응? 어.. 어어... 그래"


같이 하자는 한울이의 요구에

나도 같이 "슬릭백! 슬릭백!"을 외쳤다.

그러면서 한 발 또 한 발 내디뎠다.

마음만은 초전도체처럼 떠다녀 보려 했으나

내 몸은 중력의 존재를 증명 뒤뚱거렸다.

동네 사람들 볼까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 엉뚱한 행동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즐거움에서 온몸에 전율이 올랐다.

그렇게 어린이집 앞까지 슬릭백을 이어갔다.

다른 사람 눈에는 바보 같아 보였겠지만

그날은 내게 최고로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이러한 에피소드들이 쌓이다 보니 이젠

한울이와 등원길이 짧은 모험처럼 느껴진다.

어떤 날은 목청껏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요즘은 '질풍가도'와 '독도는우리땅'에 꽂혔다)

다른 날은 구름과 햇빛을 살피기도 했고,

공사 중인 도로 얘기를 하기도 했다.

우연히 예쁜 곤충이나 열매를 만나는 날에는

고이 손으로 감싸 가져가기도 했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어린이집 활동 얘기나

요즘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같은 얘기도

어린이집 등원길에 한울이와 나눌 수 있었다.


한울이를 어린이집 반 앞까지 데려다주면

"서한울!!!!!!!!" 이름을 외치면서

친구들 몇 명이 반 앞까지 달려 나온다.

한울이도 "박상후!!!!!! 이유준!!!!!!" 하면서

친구들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한다.

서로 얼굴을 코 앞까지 가까이 대고

복도에 서서 꺄륵꺄륵 얘기를 나누는데

그 모습이 병아리들 같 꽁냥꽁냥 귀엽다.

한울이를 반가워해주는 아이들이 있으니

마음 놓고 한울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온다.


한울이는 고맙게도 데려다준 아빠에게

매번 창문 너머로 인사를 해준다. 

한울이 교실은 어린이집 건물 2층인데

복도 창문으로 1층 출입문이 내려다 보인다.

내가 1층 출입문으로 내려갈 동안

한울이는 복도 창문에 서서 기다려 준다.

서로 말소리가 들리지 않으므로

손짓발짓으로 서로의 아쉬움을 표현한다.

팔을 쭉 뻗어서 크게 흔들기도 하고

두 팔을 머리 위로 하트도 만들고

빙글빙글 돌면서 가랑이를 벌리는 등

웃긴 자세를 취해 보기도 한다.

1층 출입문을 드나드는 다른 부모들이

이상한 자세를 취하는 나를 쳐다보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내가 바라보는 대상은

저기 창문 너머 있는 한울이뿐이니까.

그리고 그런 우스꽝스러운 아빠를 보며

한울이가 웃고 있으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몸짓으로 인사하며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은 늘 벅찬 감동이 차 오른다.




# 낭만 가득한 하원길


햇빛이 누그러지며 공기가 식어가는 시간

오후 5시 30분, 한울이 하원 시간이다.

그 시간이 되면 어린이집이 북적북적하다.

이제 막 어린이집 문을 나서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데리러 온 엄마아빠들로.


한울이를 만나러 교실로 올라가면

한울이는 아빠를 반가워하면서도

놀이를 미처 끝내지 못해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럴 때마다 한울이는 교실 문에

얼굴을 빼꼼 내밀고는 내게 말한다.


아빠 : (교실 창문 너머 선생님과 눈이 마주친다)

선생님 : "한울아~ 아빠 오셨네~"

한울 : "아~~~ 또~~?"

한울 : "더 놀고 싶은데... 벌써 왔어??"

한울 : (터벅터벅 교실 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한울 : "아빠... 조금만 기다려 줄 수 있어요?"

아빠 : "그럼~ 뭐 하고 노는데?"

한울 : "종이접기 하는데 3개만 더 접으려고"

아빠 : "그래~ 아빠 교실 앞에 앉아 있을게"


한울이 부탁에 반 앞에서 기다린다.

그때는 한울이가 교실에서 무슨 놀이를 하는지

멀리 떨어져서 엿볼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다.

한 번은 선생님과 초성퀴즈를 하는데

20분이 넘도록 나올 생각을 안 했다.

그날은 기다리기 심심해서 책을 펴고 앉았다.

그 사이 같이 놀던 친구들 모두 하원을 했지만

한울이는 마지막까지 선생님과 놀이를 했다.

오래 기다려야 했지만 재촉하진 않았다.

나야 휴직한 사람이니 급할 일도 없으니까.


한울이가 놀이를 마치고 교실을 나올 때면

양말 신은 발이 바닥에 미끌할 정도로

내게 전속력으로 달려온다.

"아빠~!!!!"라고 부르면서.

그런 한울이를 받아 주기 위해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린다.

"한울아!!!!!"라고 답하면서.

한울이가 내 품에 쿵~하고 도착하면

한 손으로는 엉덩이, 또 한 손으로는 허리를

잽싸게 감싸 안고 들어 올린다.

그리고 꼬옥 껴안으며 볼에 뽀뽀를 해준다.

누가 그렇게 하자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반가움을 표현하는 것이

한울이와 나의 인사법처럼 되어 버렸다.

누군가 나의 마중을 고마워하며

전속력으로 달려와 주는 그 모습.

한울이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면서

가장 기대하고 또 기쁜 순간이기도 하다.


내가 복도에 있는 가방장에서

가방과 옷을 주섬주섬 챙기는 동안

한울이는 '작품 자랑'을 시작한다.

색종이로 만든 팽이 뭉텅이,

거북선으로 추정되는 거친 그림,

엄마 사랑해요! 라고 쓴 글씨,

영어 알파벳 따라 쓴 종이 등등

온갖 작품을 복도에 흩뿌려 놓고는

하나씩 집어 들고 내게 설명을 한다.

어쩌면 "오늘도 재밌었어"라는

말 한마디에 숨어 사라졌을

한울이의 다양한 감정과 흔적들이

그 순간만큼은 쏟아져 나온다.


하원을 했다고 바로 집에 가진 않는다.

어린이집 건물을 나온 한울이는

"아빠~ 우리 축구해야지!"라며

운동장 축구골대 앞으로 먼저 달려간다.

요즘 한울이는 축구에 재미 들려서

아빠한테 1:1 대결을 신청한다.

그렇게 축구를 하고 있으면

하원하는 한울이 친구들이 한 명씩 모여든다.

"한울이 아빠다!"

"나도 축구 같이 할래!"라면서.

어쩌다 보니 한울이와 1:1 대결은

한울이 친구들과 나의 3:1 혹은 4:1 대결이 된다.

이렇게 많이 모이면 나도 좀 무서워지는데

한울이와 친구들은 나를 무슨 물리쳐야 할

악당처럼 대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내가 골을 넣으려고 하면 아이들은

"한울이 아빠 잡아라!!!"라고 외치면서

우르르 달라붙어 옷을 당기고 다리도 잡는다.

그 모습을 본 아이 부모들은 (주로 엄마들)

"아이고~ 한울이 아빠가 고생하네" 혹은

"한울이 아빠가 아이들과 잘 놀아주네"라며

흐뭇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봐 준다.

분명 나는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마치 놀아주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게 된다.


아이들과 놀아주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렇게 몸으로 놀아주다 보니

어느새 한울이 반 친구들과도

막역한 사이가 되어 가고 있다.

서로 인사도 하고 수다 떠는 일도 많아서

이제는 한울이 친구들이

내 친구처럼 친근해졌다.


그렇게 한바탕 놀고 나면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구름이 붉고 보랗게 물들기 시작한다.

이때가 되면 한울이는 짜증을 부리곤 하는데

배는 고프고 체력은 바닥났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짜증을 받아주기보다는

그냥 번쩍 들어서 안아준다.

"오늘 하루도 힘들었지?"라고 말하며

한울이 등을 토닥여 준다.

그러면 한울이는 짜증을 멈추고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얌전히 안겨 있는다.

그렇게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나도 걸어올 힘이 없어서

올 때는 마을버스를 타고 온다.

활기찬 등원길과는 다르게

하원길은 평온하고 조용하다.

소리 없이 넘어가는 노을처럼




# 마음가짐의 차이


육아휴직 전에도 가끔씩

어린이집 등하원을 맡았었다.

그렇지만 별다른 추억남아 있지 않다.

그저 귀찮고 힘들었다는 감정 밖에는...

아침에 등원을 시켜줄 때에는

회의 시간에 늦을까 봐 노심초사했었고

저녁에 하원을 시켜줄 때에는

집에 가서 마저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그저 한울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집에 데려다주는 그 목적에만 충실했었다.

당연히 등원하면서 나누는 몸짓인사나

하원하면서 듣는 작품 설명 시간도 없었다.


좋은 아빠가 되는 길은 참으로 멀다.

그렇지만 아이의 등하원 시간만이라도

아이한테 온전히 집중하고

또 같이 즐거워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아이와의 관계는

더 끈끈해질 수 있는 것 같다.


육아휴직을 하며 얻은 건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보다는

이 세상에 우리 둘만 존재하는 것처럼

또한 하루의 시간이 무한한 것처럼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유였다.

그 여유 하나 덕분에

아이와 함께하는 등하원 길 15분이

이렇게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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