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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라떼샷추가 Sep 20. 2024

나는 잘할 수 있을 줄 알았지

#육아휴직 #홀로서기 #실패

지난 2주간 바쁘게 지냈다.

휴직한 사람이 바쁠 게 뭐 있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겠지만.

나름 새로운 일을 시도해 보느라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바빴다.


육아휴직을 시작함과 동시에

매주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갈 만한 

축제/행사/전시 정보를 엄선하여 소개하는

뉴스레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위 아이템을 떠올리게 된 계기는

매번 한울이와 놀러 갈 곳이 고민되어서

관련 정보들을 한눈에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설문을 했었는데 반응이 괜찮았다.

나 혼자만의 필요는 아닐까 걱정이 되었는데

대부분 비슷한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안 그래도 주말마다 어디 갈지 고민인데

 그런 뉴스레터가 있으면 당연히 좋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니 설레었다.

정보들을 취합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단순 반복에 지루하긴 했지만

대박 날 것 같은 기대감에 흥이 났다.

서울에서 만 3-8세 아이를 키우는 가정수가

약 60만이니까... 조회수가... 구독료가...

상상의 나래는 끝을 모르고 펼쳐져 갔다.


새로운 시도에 한껏 들뜬 마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포기하기로 했다.

2주 동안 나름 열심히 시도해 봤는데

경쟁 측면에서 간과한 부분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서울시에서 자체 블로그를 통해

관련 정보에 대한 소통을 잘하고 있다는 점,

네이버, 인스타에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이 

관련 포스팅을 융단폭격처럼 쏟아낸다는 점,

그리고 블로그나 인스타 등 플랫폼에서

신규 계정인 내 콘텐츠가 노출되기까지는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이라는 점 등이었다.


#아이랑 #서울 #주말 #축제 #행사

치열한 검색 키워드 선점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해 봤지만,

내가 소비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차별화된 콘텐츠 생성은 어려울 것 같았다.

2주 사이에 5개 포스팅을 올렸었는데

조회수가 백 단위에 머무르고 있다.

최소 만 단위는 기대했었는데...

혼자 김칫국 제대로 마시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냥 한번 시도해 봤다고 치부하기에는

마음 한편에 불편한 감정이 남아 있다.

곰곰이 마음을 더듬어 보니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좌절감인 듯하다.

유명 인플루언서 OO맘의 블로그를 뒤져보며

'내가 어느 대학 출신인데!'

'내가 회사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 사람인데!'

'내 연봉이 얼마인데!'

이런 찌질한 자존심을 먼저 내세우는 걸 보니

나는 아직 '실패'라는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일 만큼 성숙하진 못하는가 보다.




돌이켜 보면 실패했던 경험이 많진 않았다.

대학, 직업, 회사, 결혼, 승진, 연봉 등에서

내가 원하는 일들은 대부분 이뤄왔고

경쟁 상황에서도 대부분 승자 쪽에 가까웠다.

그러다 보니 항상 마음속에는

'나는 뭘 해도 잘할 거야'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육아휴직을 결정할 수 있었던 이면에도

1년 휴직한다고 다니던 회사에서

내 입지나 커리어가 불안해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는 더더군다나 

실패를 걱정해 본 적은 없으니까.


짧은 기간이지만 회사 밖에서 혼자 뭘 해보려니 

이건 완전히 다른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회사 밖은 지옥이야"라는

드라마 '미생'의 퇴직 임원의 대사가 와닿았다.

지금 내 상황이 휴직이 아니라 퇴직이었다면

더 이상 직장에서 날 받아주지 않는 나이였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해진다.


윤태호 작가, 미생 中


어쩌면 직장생활 10년 차에 얻은 육아휴직이

정년퇴직 전에 평생 홀로서기를 준비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같아서 기대도 된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남은 휴직 동안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 볼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딱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온갖 실패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면 좋겠다.

언젠가는 회사 밖을 나서야 한다면

지옥불에도 녹지 않을 단단함을 가져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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