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는 아닙니다만
"휴직하면 생활은 어떻게 하려고?"
육아휴직 소식에 평소 친한 동료들은
조심스레 향후 나의 대책을 물었다.
웃기게도 이들은 내가 금수저 집안 출신이거나
이미 은퇴할 만큼 돈을 벌었거나
둘 중 하나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평소 행색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텐데
그만큼 육아휴직 소식이 주는 충격이 컸나보다.
"모아둔 돈을 아껴 써야죠"
아쉽게도 동료들의 기대와는 달리
교과서적인 대답을 할수밖에 없었다.
내 답변을 들은 동료들은 '그럴리 없다'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동료들 앞에서는 나름의 대책이 있다는듯
편안한 표정으로 답변을 했지만
속마음은 나 역시 불안함에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해'를 외치고 있었다.
그 사이 금수저 집안 출신이라는 소문은
회사 내로 겉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동료들의 이런 오해도 이해가 간다.
외벌이에다가 아이도 있는 집에서
1년 동안 수입이 없어진다는 건
상당히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그들도 육아휴직을 꿈꾸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용기 내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고.
1년간 수입이 없어지는 상황에서도
육아휴직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만의 '경제적 자유'를 이뤘기 때문이다.
'경제적 자유'는 내 오랜 목표 중 하나였는데
돈을 많이 벌어서 조기에 은퇴하는
파이어족의 개념과는 조금은 결이 다르다.
'돈 때문에 삶의 선택을 강요받고 싶지 않다.'
라는 목적에 더 가까웠다.
평생 일하지 않고 편하게 사는 수준보다는
그저 가족을 위기로 내몰지 않을 수준이면 충분했다.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오랜 소비 습관 덕분이다.
결혼 초부터 불편하게 사는 데에 익숙했다.
아내와 나는 20대 초중반에 결혼했는데
당시 아내는 대학원생, 나는 대학생이었다.
양가 지원 없이 원룸 월세방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수입이라곤 과외비 월 70만 원과
장학금 얼마가 우리 생활비의 전부.
그러다 보니 커피숍 커피는 꿈도 못 꿨고
텀블러 안에 커피가루를 담아 다녔다.
설렁탕 한 그릇을 나눠먹는 일도 많았다.
그렇게 애틋한 신혼 2년을 지냈다.
다행히 아내도 나도 졸업하고 자리를 잡아
적지 않은 월급을 받게 되었지만
짠내 나던 소비 습관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불필요한 소비는 거의 하지 않은 덕에
월급의 상당 부분을 적금으로 모을 수 있었다.
게다가 자동차 같은 고정 자산도 없고
무리해서 집에 욕심을 내지도 않아서
몇 년 전부터는 빚 없는 상태를 유지해 왔다.
경제적 자유를 이루려는 노력이었다기보다는
살다 보니 경제적 자유가 이뤄진 꼴이었다.
만약 매달 갚아야 할 이자만 몇 백만 원이거나,
평소 생활비가 월급에 근접한 수준인 등
우리가 경제적 자유를 이루지 못했으면
육아휴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가족들이 나를 필요했더라도 말이다.
물론 아내도 휴직을 선뜻 생각하지 못했을 테고.
그리고 이번에 내가 육아휴직을 하지 못했으면
아내의 박사 학위와 둘째 임신은 없었을 것이다.
육아휴직으로 포기하게 될
'1년 가계 수입'과 '내 커리어'
그리고 육아휴직으로 얻게 될
'아내의 박사 학위'와 '둘째 임신'
이 둘을 비교한다면
어떤 선택이 더 가치 있을지는 분명했다.
그렇지만 이 가치 있는 선택은 나와 아내가
자유롭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선택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이번 육아휴직처럼 계속해서
삶의 중요한 선택의 기로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가치 있는 선택을 주저하지 않을 수 있도록
경제적 자유를 계속해서 유지해 보려 한다.
(한동안 집 없이 계속 살겠다는 뜻...)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 자유롭기를 응원한다.
살아야 하는 인생 말고
살고 싶은 인생에 더 가까이 가려면
가치 있는 선택을 내릴 수 있어야 하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