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22. 목요일
눈을 뜨니
모든 것이 가루가 되어 있었다
속절없이 지나가는 시간
그 어디에서
나는 태어났다
아무도 슬프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아픔을 토해내던 시대는 막을 내렸고
상처는 깨끗이 봉합됐다
자취방 청소 로봇이 방바닥을 정리한다
노트북에서 재잘되는 연예인의 수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들 수고했고
즐거운 하루 보내라는 인사말처럼
무서운 하루를 보냈다
-
어른이 되면 다 괜찮아 말한다던
목사님의 말이 생각난다.
어느 때에는 아프다고 울었던 것 같고,
힘들다고 역정을 냈던 것 같은데
너 이 새끼 완전 미친 새끼네
야 이 또라이 새끼야
하고 따지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 왠만한 일도 괜찮아라고 웃어넘기고
그럴 수 있지 남에게 안대를 씌워 주는 나를 보면
이제 나도 어른이 되어버린건가 싶다
아플줄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고
아픔에 주목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고,
아픈 시절을 영화로 소비할 뿐
오늘의 상처와 진물에 무관심한 사람들로
채워진 시대가 됐다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의 화려한 가벼움에 환멸과 현기증을 느끼지만
처절함과 비열함을 살아낸 적 없으니
전보다 지금이 지옥이란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분명한 것은 더 괜찮은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시대도 나이를 먹은 탓인지
순식간에 모든 것을 괜찮다 정리해버리고는
아무도 울지 않고, 누구도 따지지 않고, 모두가 평온한 일상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슬프지 않다고 기쁜게 아니라는 걸
분노가 없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됐다
거울을 본다
늙어버린
굳어버린 나에게 인사를 전한다
어르신,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