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지난가을과 겨울에는 그저 철창이 있는 회색 벽이었는데
봄에 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한 달여 만에 꽃으로 가득 덮였어.
지나가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우와 우와’ 감탄하며 연신 사진을 찍는 통에
평범한 길이 핫한 포토 존이 되었지.
그런데 벌써 바닥에도 가득한 꽃잎을 보니
곧 지는 일만 남았겠더라.
있잖아,
아무것도 없는 회색 벽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여기고 꽃을 피워내는
일에만 집중하지 않았나 싶어.
모두가 그렇게 이야기하지.
나 역시 피는 것만이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고
힘겹게 꽃 피운 만큼 그 상태 그대로 지속되는 줄 알았어.
꽃이 만개하여 공기까지 붉게 물들일 때,
이보다 바랄 것 없을 만큼 아름다운 절정의 순간.
그것을 해피엔딩이라 하고 책을 덮는 것이 삶이라면 어떻게든 피어나기만 하면 될 텐데
그렇지가 않잖아.
이제 보니 지는 일까지 꽃의 역할이더라.
꽃을 피우는 일만큼이나 지는 일도 중요한 것 같아.
오히려 훨씬 힘들겠지.
지는 일을 누구도 축하해주지 않으니까.
한창일 때 몰렸던 관심과 칭찬이 더 이상
자기 것이 아닐뿐더러 그곳에 꽃이 피었었는지
기억도 못 할 회색 벽으로 돌아가는 일은
못내 서글프고 쓸쓸할 테니까.
그런데 지는 일까지 잘 해야
다시 돌아오는 계절에 필 수 있는 거겠지.
싹을 틔우고 꽃봉오리를 피워 만개하고 다시 지는 일.
이렇게 하나의 과정을 인생에 빗대어 축소시켜 표현하는데,
나는 이 과정이 인생 전체의 흐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삶의 마디가 한 달, 일 년, 혹은 5년 10년 등 사람마다 다르게 자잘하게 나눠져 있고
그 안에서 피고 지고, 다시 피고 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건지 몰라.
그러니 한창 피어있다고 지는 것이 남의 일인 듯 자만해서도 안 되고,
갑자기 진다고 모든 게 끝인 것처럼 절망해서도 안 되는 거였어.
그러니까 우리,
꽃 피운 순간을 감사하고 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지는 일까지 잘 해내고 다시 필 계절을 맞이하자.
#11. 열한 번째 번짐.
쓰다듬고 싶은 모든 순간 _ 민미레터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