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서 그대로 존재하길
안개가 걷히고 빛이 드리우자, 수평선 끝으로 커다란 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없이 펼쳐진 바다인 줄 알았는데 산에 둘러싸여 메워진 바다 호수였다.
저리 크게 둘러싼 산들이 어떻게 한꺼번에 가려질 수 있었을까.
마치 수평선 너머로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것들이 이렇게나 광활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놓인다.
가려진 곳에서도 숨 쉬고, 반짝이고, 흐르고 있다는 것이.
그것은 내게서 사라진 것들이 없어져버린 게 아니라
어딘가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듯했다.
그러면 앞으로도 잃어가는 것들이
다만 내 시야를 벗어난 것뿐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여전히 어딘가에서 반짝거리며 숨 쉬고 있다고.
그런 생각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열여섯번째 번짐
쓰다듬고 싶은 모든 순간 _ 민미레터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