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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미 Mar 19. 2020

예술가도 생활인이니까요.

Q. 좋아하는 일인데 돈까지 바라면 욕심일까?




그림을 순수하게 그리는 게 아니라 
돈을 벌어야 하는 목적이 되는 거 같아 슬프네요.





취미가 직업이 되면 가장 어려운 건 돈 얘기다.  

좋아하는 일에 돈까지 바라면 탐욕스럽다는 생각이 들고, 혹 상업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눈치 보게 된다. 내 그림을 예쁘다고 해주는 걸로도 충분히 고마운 일이라, 작업에 마진이라는 것을 넣기가 어렵다. 마치 마음을 '계산의 저울대’ 위에 올리듯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창작하고 손을 움직이는 시간과 노동력은 쏙 빼고 재료의 단가만 겨우 붙이는 일이 많다. 


5년간 제작했던 달력을 예로 들자면, 판매 정가는 재료 단가(인쇄비와 포장지)에 마진을 붙여 정한다. 그걸로 보면 나쁘지 않은 계산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달력에 들어가는 그림을 그리는 시간, 열두 달의 날짜를 일일이 쓰는 디자인 편집 시간, 표지와 내지 13장을 한 묶음으로 엮어 포장하는 시간, 포장을 도와준 이들에게 주는 수고비나 식사비, 일일이 주문을 받고 요청을 들어주며 배송을 보내는 시간 중 일부만이 포함된다. 달력이 다 팔려서 마감되어도 남는 게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3년 정도 되었을 때 습관처럼 달력 준비를 하자 남편은 우스갯소리로 ”올해도 자원봉사 하려고?“ 라고 했다. 옆에서 내가 하는 고생을 아니까 더 그렇겠지.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니까. 돈 벌려고 시작한 일은 더욱 아니니까. 난  장사꾼이 아니고 아티스트니까! 내 작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면야 나의 노동은 한시적으로 힘들고 마는 거라 괜찮다고 여긴다. 그래도 달력이야 1년에 한 번이지만 이런 예가 일상이라면? 어느 순간 문득,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며 현실을 돌아볼 때 성취감보다 허무함이 느껴지고 곧이어 의심이 따라온다. 




매일 시간과 마음을 쏟는 일이 
내가 있을 공간과 일상조차 지킬 수 없을 때,
어떤 힘으로 계속 붙잡을 수 있을까.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 수입이 있어야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지속해나갈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이니까' 돈을 생각하면 안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돈까지도 생각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순수하게 그려야 하는 그림이 돈의 목적이 되는 것 같아 슬프다'는 이 질문을 아마 2년 전쯤 받았다면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으니 즐기라고, 나중에 더 큰 보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얘기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취미이거나, 아직 준비 중인 이에게는 해당되는 이야기다. 가장 순수하게 재미있어야 할  시기에, 나중에 고민해도 될 문제가 브레이크가 되면 안되니까.





예술가도 ‘월세를 내고, 공과금을 내고, 
식료품을 사며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 




이라는 글을 봤다. 그러니 어떤 작가의 작업을 좋아한다면, 그가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작품이나 책을 사주는 것이 진정한 응원이라고. 그렇지, 예술가가 요정도 아닌데! 놀라울 것도 없는 당연한 이야기에서 깨달음이 오는 게 더 놀라웠다. 


2년 전이 아닌 현재의 마음으로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림이 돈의 목적이 되는 것보다 슬픈 건, 아무리 그려도 돈이 되지 않는 것' 이다. (경제적인 걱정을 할 필요 없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직업적으로 생각한다면 돈에 대한 고민이 따라오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예술가이기 이전에 생활을 해야 하는 인간이고, 취미와 직업의 차이는 ‘수입의 유무’이기도 하니까. 돈을 떠올린다고 해서  탐욕스럽다고 자책하지 않았으면 한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다만 그림 그리는 순간 하나하나가 돈이란 목적에 귀결되지 않기를 주의하면서, 어느 정도 염두에 둔다면 더 열심히 해야할 자극제가 되어주지 않을까. 예술가와 생활인, 좋아하는 일과 현실의 간극, 그균형을 잘 잡을 수 있길 나 역시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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