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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지 Dec 27. 2022

다섯 벌 껴입고 달렸는데

그래도 춥네?

오늘의 날씨는 영하 8도.

나갈지 말지 살짝 고민했다. 며칠 전 받은 대설주의보 재난문자의 여파가 아직 도로 위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미끌미끌한 빙판길로. 한 번쯤 넘어져 본 분들은 아실 것이다. 겨울의 꽈당이 유난히 더 아프고 창피하다는걸. 하지만 이 정도 일로 길게 고민하면 장차 큰일을 할 수 없기에.. 정 안 되면 걷기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다음 고민 스테이지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무엇을 입을까?

패딩이 가장 따뜻하긴 하지만 옷 자체가 무겁고, 매일 빨 수 없어 운동에 적합하지 않다. 대신 1:5의 교환가치로 1패딩에 버금가는 5종의 얇은 옷을 껴입었다. 제일 먼저 목폴라를 입었는데 이는 거의 0.5패딩 급이었다. 목만 따뜻해도 보온의 절반이 완성된 것이다. 다음으로 두꺼운 직조의 긴팔 티, 경량패딩, 플리스, 바람막이 순으로 입었다. 몸이 살짝 두툼해지긴 했지만 둔해지진 않았다.


나는 추위를 참지 못한다.

20대 초반, 방송 일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밤부터 새벽을 거쳐 아침해가 뜰 때까지, 야외에서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은 적이 있다. 롱패딩이 대중화되기 전이라 겨울 외투 하나로만 그 시간을 버텼다. 추운 정도가 아니라 괴로웠다. 그날 이후로 추위가 조금만 느껴져도 장갑을 착용하고 양말은 두 겹을 신으며, 도저히 안 되겠을 땐 군용 핫팩을 사용한다. 겨울 러닝도 이와 비슷한데 대신 장갑을 두 겹 착용한다. 하지만 그때처럼 괴롭진 않다.

정신 단디 잡고 뛰어야 하는 트랙 상태.

다섯 겹을 껴입었으나 춥긴 추웠다.

두꺼운 옷 하나보다 얇은 옷 여러 벌이 더 따뜻하다고 하던데.. 야외로 나가보니 패딩은 패딩이었다. 5종의 얇은 옷은 1패딩에 버금가지 못했다. (한 0.8패딩 정도?) 살짝 으슬으슬한 상태로 공원에 도착했다. 트랙 위에는 녹지 않은 눈들이 드문드문 있었지만 정신만 차리면 넘어지지 않고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구석 자리로 가서 간단히 몸을 풀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 바퀴 뛰고 나니 열이 오르고 몸이 뎁혀지기 시작했다. 0.2패딩의 보온이었다.

 

그렇게 1패딩의 러닝이 완성되었다.

극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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