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광머리 앤 Feb 14. 2023

임윤찬 보러 로마 간 이야기


1월 어느날이었다.

윤니버스 카페에서 배회하다가 우연히 로마 공연에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해 보니 심지어 양도표까지 나와 있다.

아직 예매처에 남은 표가 있지만 자리가 더 좋다.


갑자기 코로나로 대학교 3년을 날린 딸래미가 불쌍해졌다.

대학생이라면 모름지기 유럽여행인데..


딸아이한테 전화해서 억지로 31일 로마 공연에 맞춰 시간을 짜냈다.

딸아이는 시큰둥하고, 윤찬림 공연은

"관심이 없으시단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만 보면 된다!


급하게 비행기표 두장을 예약하고 로마숙소를 정했다.

윤찬림 보러 가는거니 여기저기 돌아다닐 것도 없이

로마랑 피렌체


알프스를 넘어가는 비행기

알프스를 대낮에 넘어가기는 처음이다.



옛날에 로마군이나 프랑스 군인들은 저 산맥을 어떻게 넘어가 전쟁을 했을까?

내가 로마군이 되어 길을 찾아본다.




로마에 왔으면 콜로세움을 봐 줘야지.

딸아이가 투어를 하는동안 로마시내를 배회하다가 아이스크림 아니 젤라또를 먹었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다.


딸아이 투어가이드에게 윤찬림 공연을 볼 예정이라고 했더니

자기도 갈거란다.

아마 로마에 사는 한국인은 거의 다 올거라고 하면서


몇년전 있었던 조성진공연에서도 한국인 로마 향우회를 했다고 한다.

그 동네가 무서운동네 아니냐고 했더니

다 사람사는 곳이라고 해서 조금 안심했다.




공연 당일날 숙소에서 공연장 가는 길이 떼르미니 역 근처라 조금 무서울 듯 하여 일찍 나섰다.

학교는 잘 찾았는데 건물을 찾을 수가 없다. 대충 불이 켜져 있는 건물을 배회하였으나

다 아니다.


수위아저씨한테 물으니 건물의 위치를 가르쳐 준다.

도저히 여기는 아닐듯한 건물을 조심스레 올라가는데

2층 발코니에서 이태리 대학생들이 떠들고 있다.


다가가 물어보니 여기에서 오늘 공연이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고

이 건물은 맞단다.


다시 건물안으로 들어갔는데

어디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아직 여섯시쯤인데

홀린듯 피아노 소리를 따라가보니 강당같은 문이 나오고

그 안에서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오는데


몰래 들여다 보니


"윤찬림이 호올로 무대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


가슴이 벌렁거린다.

정식 연주가 아니라 자유롭게 멜로디를 타고 있어서

더 좋다.


귀를 대고 들어보다

난간에 앉아 들어보다

녹화를 해 보다

너무너무 행복했다!!


어느덧 피아노 소리가 그치는 듯 해서

강당을 들여다 보는데

아까 길을 물었던 이태리 여대생이 올라왔다.


이 건물을 잠글거니까 나가란다.

난 호옥시 윤찬림이 연습을 더 하실까 싶어

안나가고 여기서 계속 있겠다고 했으나


불쌍한 동양여인이 건물에 갇힐까 걱정하는

착한 이태리 여대생이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그래서 여대생의 뒤를 따라가 건물 메인홀로 갔다




여기가 메인홀

수위아저씨도 오늘 공연에 대해서 별 아는 바가 없고

거기서 한국여성 둘을 만났는데

한 분은 위그모어 공연에서부터 토리노 로마 심지어 파리까지 따라다니는 중이고

(일년 휴가를 다 당겨썼단다)


한분은 로마 혹은 이태리에서 음악관련 공부를 하시는 분이라고 했다.

그 중 한 분과 바깥 마당에 앉아 윤찬림에 관한 대화를 한시간 넘게 나누었더니

들어갈 시간



공연장도 한장 찍어보고



이태리 사람들도 많이와서

객석이 꽉 찼다.

신포니아 앞부분쯤 된

윤찬림이 이미 물아일체의 경지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통영에서는 너무 멀리 윤찬림이 앉아 있었고

그리고 아주 포멀한 피아노 공연이었는데

로마에서는 조명이나 공연장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내 옆에는 이태리 중년 부부가 앉았는데

인터미션까지 남편은 박수도 한 번 안치고 있다.

허나 인터미션 후 연주가 끝났을 때 우레같은 박수를 친다


나는 낮에 좀 무리해서 다닌 관계로 인터미션 후 졸음이 왔다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며 바가텔과 에로이카를 듣는데

절대 끝나지 않는 피아노 소리와 절대 물러가지 않는 졸음

이 내적인 사투를 어찌 설명할까


앵콜이 시작되자 잠이 달아나고

두번째 앵콜이 내 최애곡인 시칠리아노였다.


통영후기에서 쓴 것처럼

시칠리아노 중간에 저음이 쾅쾅쾅쾅 할 때

내 영혼을 쿵쿵쿵쿵 두드리는 것 같았고

그걸 과장해서 수백수천번들 듣고

다른 연주가와 비교해서도 들었는데


이번 앵콜곡에는 쾅쾅쾅쾅이 없다!

어!

하고 있는데 거의 마지막 즈음에

쾅쾅 콰앙쾅 으로 변주한다.

물론 이 시칠리아노도 좋다.

여기에 대해 아시는 분 누가 말씀해주세요.




소렌토 포지타노 남부일정과 기타 로마 구경을 며칠 마치고

피렌체로 갔다.

나한테 애를 데리고 딱 한군데 해외여행을 하라고 하면 로마고

나한테 애 없이 나만을 위해서 딱 한군데를 가라고 하면 피렌체다.


7년전 이태리 여행(그때는 볼로냐 국제도서전을 보러 왔다가 그 핑계로

한달을 돌아다녔었다)에 묵었던 숙소에 갔더니

이제는 그 맛있던 조식을 안 한다. 코로나 때문이란다.


아침마다 식당에 앉아 중정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며

윤찬림 피아노를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행복한 순간을 꼽으라면

이 식당에서 아침도 그 중 하나이다.



윤찬림을 보러간 여행이라 더 특별했던

여행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