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아기장수

by 발광머리 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영웅을 만난다. 아이였을 때 아버지는 아이의 영웅이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간 아이에게는 선생님이 영웅이다. 중 고등학생이 되면 선배가 영웅이 되기도 한다. 영웅을 가슴에 지닌 아이는 행복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영웅을 잃는다. 아이 티를 벗으면서 아버지는 더는 아이의 영웅이 되지 못한다. 학생으로 연륜이 쌓이면서 선생님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영웅을 잃을 때마다 아이는 희망을 잃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많은 영웅을 잃었다.


우리는 영웅을 기다리며 산다. 어디선가 영웅이 나타나 우리를 구원하기를 바란다. 아기장수 구전 설화는 바로 영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아기장수 설화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고, 이 이야기를 재화(retelling)한 사람에 따라서도 조금씩 다르다.


아기장수 설화에 기초한 전래 동화로 대표적인 것은 서정오의 ‘아기장수 우투리’와 송언의 ‘아기장수 우뚜리’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송언이 재화 한 ‘아기장수 우뚜리’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가난한 농사꾼이 관아에 끌려가 매를 맞고 죽는다. 그 농사꾼에게는 임신한 아내가 있었다. 농사꾼의 아내는 산비탈에서 일하다가 아기를 낳는다. 탯줄을 자를 칼이 없어 억새로 탯줄을 자른다. 아기는 상반신만 있고 다리가 없는 상태로 태어났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기의 이름을 우뚜리(웃 몸만 있다고)라고 짓는다.

어머니는 다리가 없는 아이를 방안에 혼자 두고 일하러 다닌다. 어느 날 몰래 문틈으로 우뚜리의 행동을 살펴보던 어머니는 우뚜리가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방안에서 날아다니는 것을 본다. 어머니는 이 일을 비밀로 한다.

어머니가 비밀로 하였음에도 아기장수 우뚜리에 대한 소문은 퍼져 나간다. 어느 날 칼잡이가 우뚜리의 집을 알아낸다. 칼잡이가 자신을 잡으러 오는 것을 안 우뚜리는 겨드랑이 날개로 날아서 지붕 위로 피한다. 우뚜리는 죽기 전에 집을 떠나야 한다고 하면서 어머니에게 검은콩 한 말을 한 톨도 빠짐없이 볶아 달라고 한다. 또 팥 한 말과 좁쌀 세 말도 같이 구해 달라고 한다. 그런데 어머니는 콩을 볶다가 무심코 콩 한 알을 먹는다.

우뚜리는 곡식을 지니고 산속의 바위로 들어간다. 우뚜리가 억새로 바위를 가르고 들어가자 어머니는 억새로 바위를 쳐서 다시 닫는다. 우뚜리는 어머니에게 석 달 열흘 동안 바위 속에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뚜리가 죽은 줄 알았던 칼잡이는 우뚜리가 살아 있다는 소문을 듣고 어머니를 잡아간다. 어머니는 칼잡이의 고문에 못 이겨 우뚜리가 있는 장소를 말한다. 사또와 칼잡이는 우연히 억새로 바위를 쳐서 우뚜리가 숨어 있는 바위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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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속에서 팥은 말이 되고, 좁쌀은 군사가 되고, 우뚜리는 검은콩으로 된 갑옷을 입고 있었다. 어느새 우뚜리에게 다리도 자라나 있었다. 그러나 석 달 열흘이 지나지 않은 까닭에 군사들은 햇볕에 스르르 녹아버린다. 하지만, 우뚜리는 칼잡이와 관군에 대항해 싸운다. 그러나 빗발치는 화살 중 하나가 우뚜리의 갑옷 중에서 어머니가 먹어버린 검은콩의 빈자리에 꽂혀 우뚜리는 죽고 만다.


서정오의 ‘아기장수 우투리’도 전체적인 줄거리는 송언의 ‘아기장수 우뚜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기장수 이야기의 공통점은 아기장수가 겨드랑이에 난 날개 때문에 세상을 뒤바꿀 영웅임을 알게 된다는 것과 반란(임금의 처지에서)을 일으키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 영웅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기장수의 어머니가 검은콩을 집어 먹고, 혹은 고문에 못 이겨 아기장수가 숨은 곳을 관군에게 자백함으로써 아기장수가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점도 같다.


송언의 전래 동화에서는 아기장수의 어머니가 콩을 볶다가 '무심코' 콩 한 알을 집어 먹고, 고문에 못 이겨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아기장수가 있는 곳을 실토한다. 반면 서정오의 전래 동화에서는 아기장수의 어머니가 콩을 볶다가 배가 고파서 콩 한 알을 집어 먹고, 남편의 목숨을 위협하는 관군의 협박에 못 이겨 우투리가 있는 곳을 자백한다.


두 편의 아기장수 전래 동화에 나타나는 어머니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 같은 다른 전래 동화에 나오는 희생적인 어머니와 다르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혀 가며 오누이에게 돌아가려고 한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엄마는 고문에 못 이겨 아들이 숨은 곳을 실토한 ‘아기장수 우뚜리’의 엄마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두 이야기 모두에서 아기장수를 죽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은 바로 어머니이다. 무심코 그랬든, 고문에 못 이겨 그랬든 어머니는 아기장수를 죽음으로 이끈다.


세상에 자기 자식을 죽음으로 내모는 엄마가 어디 있을까? 아기장수 우뚜리가 죽고 나서 그 엄마는 어떻게 살았을까? 엄마인 나에게 송언의 전래 동화와 서정오의 전래 동화 중에서 한 편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송언의 전래 동화를 선택할 것이다. 최소한 모르고 그랬으니까….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어머니의 무지(無知)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흔히 어머니의 자녀에 대한 사랑을 맹목적인 사랑이라고 한다. 맹목(盲目)이란 눈이 멀었다는 뜻이다. 나는 어머니의 무지가 어머니의 맹목적인 사랑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자녀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아이의 어떤 점을 가로막는다. 어머니는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두려움을 느낀다. 걷다가 다칠까 봐…. 그러나 그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아이를 걷지 못하게 한다면 아이는 영원히 걷지 못할 것이다. 나는 실제로 아이가 뛰다가 다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앉아서 하는 놀이인 고스톱을 하도록 한 어머니를 안다.


아이가 처음 학교에 입학하면 기대도 있지만 두려움을 느낀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지는 않을지, 신문기사에서나 보던 나쁜 선생님을 만나면 어쩔지 두려워한다. 그렇다고 아이를 영원히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안에 둘 수는 없다. 아이가 커서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고 하면 그 친구가 혹시 내 아이한테 나쁜 물을 들이지 않을까 두렵다. 언젠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아들 둘을 왕따 당한다고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게임만 하게 하는 엄마를 본 적이 있다. 이처럼 변화를 두려워하는 어머니가 날개 달린 아기장수를 집안에 가둬두는 어머니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날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 아이들은 창의적인 존재로 태어난다. 모든 아이는 그 안에 아기장수를 지니고 있다. 분석심리학자인 이부영은 아기장수가 ‘기존 질서를 새롭게 할 안트로 포스(Anthropos), 영웅 원형의 상’이라고 했다. 기존의 질서를 새롭게 하는 것이 바로 창의성이다. 부모라면 아이가 가진 본래의 힘을 잃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전래 동화 안에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맞닥뜨리는 심리적 갈등에 맞서고 그것과 싸워 이겨나가게 하는 힘이 있다. 서양의 전래 동화인 ‘빨간 모자 이야기’를 읽은 아이가 있었다. 자신과 같은 여자 아이를 잡아먹은 늑대를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딸을 위해서 딸의 그림책에 있는 늑대란 늑대는 다 오려버리고, 늑대인형도 다 치워버렸다. 비로소 어머니는 딸이 늑대를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다. 한참 지난 어느 날 아빠와 산책하러 나가는 아이에게 이웃집 할머니가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활짝 웃으며 ‘숲 속의 늑대를 만나러 가요.’라고 대답했다. ‘빨간 모자 이야기’에서 심리적 공포를 느낀 아이는 그동안 늑대를 맞닥뜨릴 힘을 기른 것이다. 어머니의 딸을 위한 노력은 사실 필요 없었다.


우리나라 전래 동화인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는 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분리불안을 다루고 있다. ‘흥부 놀부’, ‘반쪽이’에서는 형제간의 우애와 경쟁을 다룬다. ‘재주 많은 다섯 친구’는 부모를 떠나 펼치는 모험과 성장을 다루고, ‘콩쥐 팥쥐’, ‘장화 홍련’은 부모 자녀 간의 갈등 양상을 다룬다. 전래 동화를 통해서 우리는 아이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심리적인 힘과 용기를 준다. 아이 안의 아기장수를 자라나게 한다.


아이 안의 영웅을 나도 모르게 죽음으로 이끌지 말고, 영웅으로 자라게 해야 한다. 아이 안의 영웅을 온전히 키워내려면 아이 안의 창의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려면 전래 동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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