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 속에서

변화는 어디서 오는가

by 골드펜

3.


모든 것이 멈춰 버린 것 같은 시간이 있다.
아침에 눈을 떠도 하루가 달라질 것 같지 않고,
저녁이 되어도 특별히 남는 일이 없다.
시계는 움직이지만,
내 삶은 정지해 있는 듯하다.


이런 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큰 프로젝트를 해내고 난 뒤 허탈한 마음처럼 오기도 하고,
그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어느 날 문득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오랜 병상에서,
퇴직 후 텅 빈 하루에서,
소중한 관계가 끊어진 자리에서 만나기도 한다.

아니면 특별한 이유도 없어
더 설명하기 어렵게,
그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력함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멈춰 있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불안하게 바라본다.

이러다 뒤처지는 건 아닐까?
정말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앞에서 스스로를 의심하는 마음이 먼저 올라온다.
멈춤은 실패처럼 느껴지고, 가만히 있는 자신을 견디지 못해 억지로 스스로를 몰아붙여 보기도 한다

하지만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지켜보면 이 시간은 완전히 멈춘 상태가 아니다.

익숙했던 삶의 속도가 달라졌을 뿐이고,
이전의 리듬과 조금 어긋나 있을 뿐이다.
멈춤은 공백이 아니라, 삶이 다른 호흡을 준비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식물이 자라는 과정이 그렇다.
겉으로는 아무 변화가 없는 계절이 있다.
가지는 움츠러들고,
잎은 모두 떨어진다.

하지만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도 뿌리는 더 깊이 땅을 파고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과정이 있기에 다시 꽃을 피울 수 있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취가 없다고 해서 그 시간이 비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멈춘 시간은
우리를 다른 방식으로 다듬어 준다.

그동안 미뤄 두었던 감정들에 집중하게 하고,
외면했던 질문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답답함 속에서 삶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다.
다만 그 변화는 소란스럽지 않게, 아주 느린 속도로 다가온다.

그래서 멈춰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다시 달리기 위해 애쓸 수도 있고, 잠시 그 자리에 머물며 내 안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후자를 택할 때,
멈춤은 더 이상 헛된 시간이 아니라 다시 나아갈 준비를 하는 시간이 된다.


멈춰 있는 동안 스스로가 작아 보일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는 힘은 차곡차곡 쌓여
다시 움직일 힘이 된다.

어쩌면 변화란 언제나 이렇게 보이지 않는 정지 속에서 먼저 준비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자신이 멈춰 있다고 느껴진다면
너무 서두르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고요 속에서 당신의 뿌리는
조금씩 더 깊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멈춤은 끝이 아니다.
다음을 향해 숨을 고르는, 아주 조용한 신호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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