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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Gray Dec 18. 2022

질적연구의 가치 (feat. 라이트 밀스)

요새 쏟아져 나오는 사회과학 논문들을 보다보면, 정치학, 사회학, 심리학, 교육학 할 거 없이 질적연구 논문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구글 스칼라에서 최근 5년간의 논문 중 인용지수가 높은 논문들을 보면 대부분이 양적연구다. 그러다보니 특이할 만한 ‘새로운' 문제의식이나 이슈가 도통 보이지가 않는다. 죄다 비슷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기계적으로 논문을 찍어낸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사실 사회과학 뿐만 아니고 이공계에서도 자주 보이는 현상인데,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니라 기술적인 정교함에 중점을 두는 경향을 말한다. 그러니까 과학(Science)이 아니라 엔지니어링(Engineering)을 하는 거다. 


요즘의 사회학도 마찬가지다. 과학이 아니라 엔지니어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가끔 가다 보면, 도대체가 이 논문이 사회학 논문인지 수학 논문인지 컴퓨터 사이언스 논문인지 헷갈릴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요즘 빅데이터니 머신러닝이니 하는 새로운 기술 틀로 인해 문제가 더 심각(?)해진 것 같다.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많다, 아무튼). 수학이나 통계전공자가 아니면 알아보기도 힘든 (아마 해당 전공자들이 보면 수식적으로 뻥뻥 뚫린 구멍에 통탄을 금치 못할 지도 모르는) 방법론을 가지고 연구를 했다고 자부하는데, 문제는 그런 논문들이 추구하는 주제의식이 굉장히 천편일률적일 뿐더러 제대로 된 디스커션이 거의 없다. 방법론적으로는 화려하지만, 논문을 다 읽고 나면 저절로 ‘So what?’ 이라는 질문이 나온다. 물론 이 질문에 대답은 낸다. ‘따라서, 000분야에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또는 ‘따라서 000을 고려한 정책이 요구된다' 등등. 근데 그런 결론으로 가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부실하다. 





통계학의 역사를 다진 Alain Desrosières는 “문제의 해결책을 발견하기 전에, 문제를 발견해야 한다” 라는 말로 통계학의 가치를 설명한다. 양적연구의 가치는 사실상 현실 세계를 묘사하는 데에 그 의의를 둔다. 이것이 사회과학이 이공계와 차이가 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는 늘 변화한다. 그러니 과학적 엄밀성이 아무리 뛰어나다한들, 변화하는 사회를 반영하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 틀은 늘 구식(outdated)일 수 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바로 질적연구가 추구하는 사회학적 상상력이 요구된다. 새로운 주제의식을 발굴하는 역할 말이다.  “The sociological imagination” 이라는 유명한 저서를 발간한 라이트 밀스의 이론을 내 나름대로 간단하게 설명해보자면,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연결될 것 같지 않던 현상들을 서로 연결하는 능력을 의미한다고 본다. 


사회학적 뉴런이라고 봐도 되겠다. 


이게 이거랑 연결이 된다고? 하는 상상력 말이다. 이런 사회학적 뉴런이 아직까지는 지능지수로 측정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직관'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만, 앞으로는 이런 사회학적 상상력 역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정신지수 중에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사회학적 상상력을 발휘하려면, 양적연구로는 택도 없다. 양적연구는 앞서 말했다시피 기존의 사회현상을 일정한 지표에 맞게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 과정에서 현실은 한참 찌그러지고 왜곡된다. 이 찌그러진 부분을 바이어스(Bias)라고 표현하는데, 파이낸싱이나 경제학 분야에서 이런 찌그러진 부분을 수리적으로 해결하는 수식을 만들기도 한다. 근데 애초에 그 수식조차도 데이터 수집과정에서 바이어스가 들어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건데 뭔 의미가 있나 싶긴 하다 (물론 인과관계정립이 아니라 단순추론을 위한거라면 이런 수식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렇게 양적연구는 본인의 방법론적 역할에 있어서 분명한 한계를 갖는다. 물론 가끔 양적연구만으로도 새로운 문제의식을 발견할 수도 있다. 전혀 생각지도 부분에서 특정한 ‘경향성'이 발견되는 경우 말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의 목적은 ‘경향성'을 발견하는 데에 있지 않다. 사회과학의 목적은 그 경향성을 설명하는 데에 있다. 그래서 불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현상 간의 ‘인과관계'에 관해 양적 사회과학이 늘 집착하는거다. 사회과학에서 추구하는 인과관계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연결고리, 즉 내러티브(narrative)가 필요하다. 왜 A라는 현상이 B라는 현상으로 연결되었을까에 대한 시간적, 역사적, 정치적, 맥락적 설명 말이다.


“60명, 70명 인터뷰 하는 게 도대체 무슨 과학적 설명력을 갖는가? 그건 과학이 아니고 주장이다.” 라는 나의 지난 의견에 반박하여, 특정 수치로 단순화된 양적연구로는 결코 밝혀낼 수 없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발견하려면 3000건의 양적데이터보다도 단 20명과의 인터뷰 데이터가 더 적절할 수도 있다고 설명하고 싶다. 


새로운 문제의식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 양적연구가 적절하지 않은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 내러티브에 대한 데이터 수집이 어렵다. 앞서 설명했듯, 양적연구는 단순지표에 현실을 끼워맞추는 과정에서 왜곡이 심하게 발생한다. 그래서 현상을 둘러싼 장기간 또는 다중적인 내러티브를 포착하기가 어렵다. 둘째, 표본 자체가 극소수일때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연구표본이 동성애자이면서 약물중독자인 부모에게 입양된 자녀라고 했을 때, 이같은 조건에 부합하는 연구대상자 자체가 소수이기 때문에 대규모의 데이터셋을 구축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양적연구로 포착되지는 않으나 분명히 실제하는 현상 또는 집단에 대해 새로운 문제의식을 제시하기 위해 질적연구가 사용된다.





과학을 설명할 때, 사과파이 이야기를 자주한다.

엔지니어링은 존재하는 사과파이를 많이 차지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학문이라면, 과학은 그 사과파이 자체를 키우는 방법을 개발하는 학문이다.


사회학도 과학과 마찬가지로, 사과유통을 둘러싼 가격경쟁, 사과의 성장에 기후변화가 미치는 영향, 사과 소비에 대한 비건의 영향, 사과농장에 대한 정부의 정책 등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분야를 연결해서 사과파이를 키우는 방식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질적연구야말로 사회학의 꽃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그야말로 사회학의 가치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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